불교를 왜 공부해야 할까요?

불교에서 수행하는 명상에 대해 좀더 심도 있게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다양한 상황에서 ‘명상’이라는 단어를 듣습니다. 대체로 명상이라는 단어는 사람들에게 좋은 의미로 받아들여지는데, 많은 이들이 명상을 마음의 휴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명상을 하려고 정작 자리에 앉아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잘 모릅니다. 단순히 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이 명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 자리에 앉았다면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할 건가요? 호흡에 집중하고 선한 마음을 일으키는 것만이 명상일까요? 

산스크리트어로 “명상”이라는 단어는 “현실로 구현해내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티베트인들은 “명상”이라는 단어를 “습관화 하다, 길들이다”는 의미로 번역했습니다. 습관을 들이는 것은 무언가를 자신의 일부로 만들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고자 하는 명상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내면에 유익한 변화가 생겨나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에게 왜 변화가 필요한지를 물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삶이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 다른 이들과의 관계 그리고 직장에서 우리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문제를 외면하는 대신 대처하기 

내가 처한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변하고 발전하고 싶어합니다. 명상을 통해 환상의 땅으로 탈출하는 것을 꿈꾸지 않습니다. 약물을 투여하고, 술에 취해 내가 처한 문제들을 잊는 방법도 있습니다. 하루 종일 음악을 들으며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방법도 있습니다. 종종 이렇게 하면 문제가 그다지 심각한 것 같지 않게 느껴지기도 하고 현실로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문제를 극복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이같은 문제들은 언제나 다시 발생합니다. 많은 이들이 명상을 약물과 같이 반복해보지만 오래동안 애써도 큰 효과를 보지 못합니다. 불국토에 있는 것처럼 관상하고 행동하려고 애써보지만 현실적으로 우리의 내면에 어떠한 변화도 생겨나지 않습니다. 문제를 제거하려고 하지 않고 외면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불교의 전통에 따라 명상을 수련한다면 우리는 더이상 우리가 처한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문제를 직시하고 극복할 것입니다. 수행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강한 용기와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수행이 언제나 즐겁고 기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각오를 해야 합니다. 육체적 훈련은 심한 근육통을 앓게 합니다. 좀더 강하고 건강한 육체를 위해 사람들은 몸이 아픔을 기꺼이 감수합니다. 

명상도 그렇습니다. 몸이 아닌 마음을 다루는 것입니다. 무술과 같은 동작을 수행에 접목시키는 수행법도 있지만 티베트 전통의 불교에는 그와 같은 것은 없습니다. 육신을 단련시키는 것에는 아무런 허물이 없습니다. 되려 아주 유익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설명할 수행의 본질은 우리의 마음에 달려있습니다. 인간의 지성이 아닌 감정과 마음입니다. 불교의 대학자들과 스승들은 수행의 핵심이자 근본이 마음을 길들이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행동과 말하는 태도는 마음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정직하게 자신을 살펴보기 

우리는 우리의 삶이 힘들고 괴롭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근원이 내면의 불만족임을 알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 정직하게 자신을 관찰하고 탐구한다면 분노, 탐욕, 이기심, 질투, 애착, 교만, 어리석음 등 많은 부정적인 감정이 내면에 존재함을 알게 될 것입니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의 삶에 불안과 혼란이 만연해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부정적인 감정들은 우리의 내면을 지배합니다. 다른 이들과 함께 있을 때는 자신의 행동과 말을 좌지우지하여 온갖 문제를 유발합니다. 또 혼자 있을 때는 마음은 불편해져 온갖 혼란스러운 감정들이 일어나게 합니다. 요약하면 우리는 진정으로 행복하지 않습니다.   

명상은 이러한 나를 변화시킵니다. 약물에 취한 것처럼 마음에 어떠한 상념도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명상을 이런 식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결코 해결책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그저 앉아서 마음에 일어나는 상념을 떨쳐내면 모든 문제가 사라질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문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진정한 적을 찾아내기

불교 서적에서 번뇌가 우리의 진정한 적이라고 묘사하는 문장을 자주 발견합니다. 그러나 번뇌는 우리를 두렵게 하는 괴물이 아닙니다. 번뇌는 우리가 넘어서야 할 문제라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불교 경전에 따르면 ‘번뇌는 내게 온갖 문제를 일으켰지만 나는 더이상 현혹되지 않을 것이다. 번뇌여, 너의 시간은 끝났다.’고 지적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자리에 앉아 마음을 바꾸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마음의 변화, 이것이 명상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명상은 몸과 말과 마음에 좋은 습관을 들이고 나쁜 습관을 제거하는 훈련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고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습관들입니다. 운동을 하거나 악기를 연주하거나 춤을 추는 것처럼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아 인위적인 느낌마저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차츰 익숙해지면 어색했던 행동들이 매우 자연스러워질 것입니다. 마음과 감정과 느낌으로 하는 일도 그럴 것입니다. 

우리는 변할 수 있을까?  

이제 의문이 생깁니다. 정말로 우리는 변할 수 있을까요? 변화하기 위해 노력하기 전에 실제로 변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겨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이게 내 방식이고 나는 이런 사람이야. 나는 변하지 않아. 그냥 수긍하고 살아야 해.’라고 고집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또 ‘나는 화를 잘 내는 사람이야. 난 성미가 급한 사람이야. 그리고 이게 나야.’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자신의 주장만을 고집한다면 변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봐야 합니다. 왜 특정 성격만을 고집하나요? 만일 화를 잘 내는 사람이라면 항상 화를 내고 있어야 하나요?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로 인해 이렇게 화를 잘 내게 되었다며 다른 이들을 탓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남을 탓하는 것도 유익하지 않습니다. 좀더 자신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나의 이 감정이 어디에서 발생하는지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매번 자기 자신에게 ‘타인에게 화내기 말고, 욕심부리지 말며, 이기적이지 말라!’라고 타이르지만 사실 화를 멈추기가 너무 어렵지 않나요? 그래서 우리가 감정적으로 느끼는 것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마음가짐은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칩니다 

불교에서 ‘마음가짐’은 모든 감정의 근본 바탕입니다. 마음가짐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직장을 잃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청천벽력같은 소식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화가 나고 우울합니다. 왜냐하면 이 상황이 내가 속한 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직장을 잃었다’ – 현실입니다. 나는 이 사실을 바꿀 수 없습니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직장을 잃었다는 현실을 바라보는 마음입니다. 이것이 마음가짐입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자기 자신이 처한 상황을 다르게 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어쩌면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다른 직업을 구하는 계기로 시각을 달리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경제적인 어려움은 있겠지만 적어도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좌절하지 않습니다. 명상을 하면 이러한 상황을 보다 긍정적으로 대처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명상을 통해 마음이 감정에 휘둘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친한 친구가 지난 주에 사망했습니다. 너무 슬펐습니다. 슬퍼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물론, 친구의 죽음으로 인해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요? 친구가 사망하기 일주일 전부터 전화를 해 봐야한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정작 전화하지 못했습니다. 평소 친구의 건강 상태는 양호했고, 사망 당일에도 샤워를 하러 욕실에 들어갔습니다. 샤워를 하던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습니다. 너무 갑작스러웠습니다. 일주일 전에 친구가 생각났을 때 전화를 하지 못한 자신의 행동에 큰 자책하면서 진작 알았더라면 이런저런 말을 했을 것이라고 자기 자신을 원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들은 저의 기분을 더더욱 괴롭게 할 것입니다. 

저는 35년간 그와 친구로 지내면서 함께 보낸 행복한 시간들을 떠올렸습니다. 이런 훌륭한 사람을 아주 가까이 친구로 둔 것이 얼마나 영광인지를 생각했습니다. 그는 제가 아는 서양인 수행자 중 가장 진지하고 성실한 수행자였습니다. 제가 보다 성실한 자세로 수행에 임할 수 있도록 큰 영감을 준 친구입니다. 그는 살아생전 남게 될 부인을 걱정했고, 현재 제가 그의 부인을 도와주는 것을 안다면 무척 위안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긍정적인 사고 역시 명상의 결과입니다. 명상을 통해 초자연적인 힘이나 신비한 힘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명상을 하면 어려운 상황에 맞닥뜨릴 때 자신의 부정적인 마음가짐이 그 상황을 더 악화시킬 것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됩니다. 또한 이러한 어려운 상황을 이해하고, 충분한 수련을 통해 상황을 바라보는 방식을 완전히 바꿀 수 있습니다. 친구가 세상을 떠나 슬프기는 하지만 비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슬픔을 완화시키고 긍정적인 사고를 할 것입니다.   

자신의 잠재력을 믿어라

그래서 우리는 사물을 보는 방식을 바꿀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어렸을 적에 아주 흥미롭고 놀라워했던 일들이 나이가 들어 다시 보면 지루하고 우습기도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많이 변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앞으로도 더 변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을 변화시키는 방법에 대해 배워야합니다. 세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 정확한 지식을 습득하기 – 마음에 유익한 습관을 들이기 위해 법을 듣고, 읽고, 공부합니다. 정확한 정보를 습득한다는 것은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불법을 듣고 읽고 공부하는 것이 불교의 기본 수행이라는 것 정도는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 의미를 사유하기 – 자신이 얻은 정보를 여러 각도에서 생각하고 분석해서 이해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배운 것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유하는 이 법이 내게 유익하며, 이 법이 나의 삶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서야 합니다. 
  • 명상하기 – 우리가 배우고 이해한 것을 토대로 마음에 유익한 습관을 들이는 것입니다. 자, 우리는 명상을 할 준비를 갖췄습니다. 

올바른 지식과 명상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올바른 지식을 습득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된 불교 수행법을 가르쳐주겠다고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수행에 관한 책을 쓰고 출판하게 되었다고 그 책의 내용이 항상 정확하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가르치는 스승이 유명하고 카리스마가 있다고 해서 그의 설명이 전부 옳은 것도 아닙니다. 히틀러 역시도 강렬한 카리스마와 대중의 크나큰 지지가 있었지만 그의 말은 사실 옳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우리의 지성을 활용할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동물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동물도 인간과 같이 여러 많은 일들을 하기 위해 훈련을 받습니다. 우리 인간이 동물보다 나은 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지성입니다. 인간은 유익한 것과 유익하지 않은 것을 구별합니다.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해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성을 사용해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갑니다. 이것이 우리가 법을 듣고 읽을 때 사용해야 할 능력입니다.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모든 가르침은 전부 다른 이들을 유익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처님께서 가르친 말씀이 유익한 것인지 아닌지를 스스로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단기적으로 다소 힘들어도 장기적인 효과를 살펴봐야 합니다. 항암치료를 받는 것은 고통스러운 과정이지만 암을 치료할 수 있다는 장기적인 유익함이 있습니다. 

만일 부처님의 말씀을 조사하고, 삶에 적용해 수행하지 않는다면 부처님의 말씀을 진심으로 명상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마치 어떤 물건이 좋은 물건이고 아닌지,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필요로 하고 원하는 것인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아무거나 막 사는 것과 같습니다. 

공식적인 명상

불법을 사유하는 과정은 매우 유익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법을 사유하는 것이 명상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명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사유를 통해 마음을 긍정적으로 단련하고 일상 생활과 하나가 되도록 적용하는 과정입니다. 명상은 두 가지 단계를 수반합니다. 

  • 분석명상 – 첫 번째는 “분석명상”입니다. 향상된 마음으로 집중대상에 집중하고, 모든 세부적인 요소를 면밀히 분석합니다. 
  • 집중명상 – 두 번째는 “집중명상”입니다. 대상을 세세하게 분석하지 않습니다. 마음은 앞서 분석한 바를 요약한 뒤 그대로 집중합니다. 

많은 이들이 명상을 시작하게 되면 호흡에 집중할 것을 지도 받습니다. 마음을 고요히 하고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에 집중합니다. 단순한 방법 같지만 매우 어렵습니다. 호흡에 집중하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선, 머리 속에서 들리는 온갖 잡념들이 고요해지도록 노력합니다. 이런 소리들은 번뇌를 일으킵니다. 주위에서 들리는 잡음을 제거하는 것과 같습니다. 머리 속에서 울리는 온갖 잡음을 제거하면서 듣고, 사유하고, 명상한 것에 관해 이해하면서 호흡에 집중합니다. 이렇게 할 때 “집중명상”과 “분석명상”을 하게 됩니다. 또한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면서 무상을 관상할 수 있습니다. 호흡은 매순간 변하기 때문입니다. 또는 호흡과 분리된 “나”는 없다는 사실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누가 숨을 쉬고 있는가! 그러나 이런 탐구는 처음 명상을 시작한 사람들에게 너무 어려울 수 있습니다. 

명상을 할 때 가장 좋은 대상은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직장, 가족, 사회에서 강한 압박을 받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항상 걱정과 근심에 시달립니다. 긴장을 풀 수가 없습니다! 자기 자신을 바라보면 좀더 편안하고 현실적인 감각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만으로 내가 처한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지만 첫 단계로 내딛을 수 있습니다. 호흡에 집중함으로써 몸의 실체를 바라보게 됩니다. ‘나는 살아있다!’ 호흡은 죽기 전까지 지속되므로 살아있음의 좋은 예시이기도 합니다.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호흡은 항상 그 자리에 있습니다. 호흡을 이해할 수록 삶이 지속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건 삶은 이어집니다. 친구가 죽었을 때처럼 삶이 계속 이어진다는 것을 아는 것은 무척 유익합니다. 

우리는 이 실상을 알고 있고, 생각하고 이해했으며 타당하다고 확신합니다. 삶은 지속될 것임을 알고, 육신과 깊은 관계가 있으며, 두려움에 떨거나 우울증에 빠지지 않는 것이 유익할까요? 그렇습니다. 나는 집중할 수 있고 자신의 호흡을 알아차릴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심지어 다른 일에 열중한 나머지 1-2초 정도 숨을 멈출 수도 있겠지만 호흡은 늘 그 자리에 있습니다. 호흡에 관해 너무 깊고 세밀한 수준의 이해가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물론 깊이 아는 것이 더 좋지만 처음 시작하는 것이라면 이 정도만 아는 것으로도 충분합니다. 

명상 과정

호흡에 집중할 때 도움이 되는 두 가지 부수적인 마음이 있습니다. 

  • 대략적인 이해 – 대략적으로 인지하는 것
  • 섬세한 분석 – 매우 세밀하게 인지하는 것 

전통적으로 이 두 가지 마음을 설명하는 좋은 예시가 그림입니다. 앞에 그림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그림을 대략적으로 인식합니다. 전체적인 틀을 감지하는데 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단지 알 뿐입니다. 전체적으로 인식함을 “일반적 이해”라고 합니다. 그림을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림 속의 특징들을 하나하나 인식하는 것을 “세부적인 인식”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호흡에 집중하면서 대략적인 이해와 세부적인 분석을 모두 해야 합니다. 계속 자신의 호흡을 알아차리면서, 들이쉬고 내쉬는 세부적인 들숨날숨을 파악합니다. 무슨 일이 있건 간에 내가 살아있는 한 호흡은 계속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호흡에 집중하는 것은 안정적이고 안전하며 의지할 만합니다. 적극적으로 알아차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마음상태를 “분별명상”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대상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관점에서 대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단계인 “집중명상”은 분석을 적극적으로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지 그 대상을 알 뿐입니다. 어떤 대상을 적극적을 이해하는 것과 그저 아는 것은 매우 다른 마음입니다. 우리는 명상을 합니다. 그 결과 우리는 훨씬 안정감을 느끼고 편안해집니다. 우리가 반복해서 매일 수행을 해야만 이런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일상 속에서 수행하기 

특히 화가 날 때 이 수행법을 기억하려고 노력하십시오. 물론 어렵습니다. 하지만 수행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견고해지면 항상 이 가르침을 잊지 않고 마음에 새기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이 흘러가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심사숙고해보면 우리의 앞에 어떤 일이 발생하더라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미 법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알고 있기에 삶을 바라보는 습관이 변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명상의 결과입니다. 알아차림을 놓쳤다면 다시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고 되새기며 새롭게 시작하십시오. 명상을 통해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것은 일상 생활을 대처하는 마음가짐의 진정한 변화입니다. 환상에 빠져 앞에 닥친 문제들을 외면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수행은 정신과 감정을 성숙시키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입니다. 수행을 통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깨달음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앞서 설명한 수행법은 심리학에서도 언급하는 부분입니다.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보는 것도 좋지만, 이것만이 불교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심리학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반면에 불교에서 설명하는 수행법은 훨씬 다양하고 많습니다. 불교에서는 모든 이들을 위해 깨달음을 목표로 지향합니다. 그러나 아주 중요한 이 첫 번째 단계는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요약

자신이 처한 문제를 피하기 위해 하루 종일 음악을 듣거나 정신없이 바쁘게 보내거나 술을 마셔서 정신을 놓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임시방편일 뿐입니다.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고 내가 처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법에 대해 진지하게 사유하고 명상함으로써 자신과 타인, 그리고 자신이 처한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을 완전히 바꿀 수 있습니다. 달라진 시각만으로 내가 처한 모든 문제가 즉각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수행을 통해 충분히 단련된 마음이 눈앞에 놓인 문제를 맞설 수 있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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