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정신적) 스승에 대한 신뢰와 전적인 헌신을 발전시키는 것
영적 스승에게 전적으로 헌신하는 것은 가장 어렵고 섬세한 불교 수행 중 하나입니다. 그것이 자리 잡고 유지되기 위해서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일단 건전한 기반에 자리잡으면, 아무것도 그것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세르콩 린포체는 이것이 그와 나의 경우가 되도록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어느 날 저녁, 문곳에서 열린 묀람(Monlam) 연례 축제가 끝나갈 무렵, 린포체는 그곳에 있는 그의 재산에 대한 복잡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의 다른 수행원들은 불필요하다고 느꼈지만, 린포체는 제가 이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제가 이 문제에 대해 질투하는 쪽으로부터 잘못된 소문을 듣더라도, 그는 그의 진실성이나 저의 마음을 다한 헌신에 대해 단 한순간도 의심하지 않도록 하고 싶어했습니다.
영적 스승에 대한 전적인 헌신을 위해서는 예비 제자와 스승 간의 철저하고 긴 상호 검토가 필요합니다. 비록 세심한 조사 후에, 제자들은 그들의 라마들을 부처로 볼 필요가 있지만, 이것이 영적 스승들이 결코 실수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제자들은 항상 스승들이 하는 말을 확인하고 필요한 경우 정중하게 제안을 해야 합니다. 늘 신경을 쓰고, 자신들의 라마가 말하거나 행하는 잘못된 점을 공손하게 바로잡아야 합니다.
한번은 린포체가 프랑스의 날란다 사원에 있는 서양 승려들에게 이 점을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강연 중에 그는 의도적으로 완전히 잘못된 것을 설명했습니다. 그의 말이 너무나도 터무니 없었지만, 승려들은 모두 공책에 그의 말을 예의 바르게 필기했습니다. 다음 강연에서, 린포체는 지난 한 시간 동안 자신이 완전히 터무니없고 잘못된 방식으로 무언가를 설명했다고 말하며 승려들을 꾸짖었습니다. 왜 아무도 그에게 질문하지 않았을까요? 그는 부처님께서 직접 조언하신 대로, 절대 스승의 말을 맹목적이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위대한 스승들도 때때로 말실수를 하고, 번역가들도 자주 실수를 하며, 학생들은 항상 부정확하고 혼란스러운 필기를 합니다. 만약 어떤 것이 이상해 보인다면, 그들은 항상 위대한 경전에 대해서도 모든 점을 질문하고 확인해야 합니다.
가장 위대한 불교 거장들도 문헌을 분석하고 의문을 제기하다
린포체는 개인적으로 일반적인 불교 논평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쫑카파 대사의 전례를 따랐습니다. 이 14세기 개혁가는 인도와 티베트의 대가들에 의해 존경받는 많은 문헌들이 서로 상충하거나 비논리적인 주장을 담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쫑파카 대사는 이성에 맞서는 견해를 거부하거나 이전에 잘못 이해되었던 구절에 대한 새롭고 통찰력 있는 해석을 제공함으로써 이러한 점을 발견하고 면밀히 조사했습니다. 방대한 경전 지식과 깊은 명상의 경험을 가진 사람만이 그러한 새로운 장을 열 자격이 있습니다. 세르콩 린포체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예를 들어, 그의 입적 직전에, 린포체는 저를 불러 쫑카파의 가장 어려운 철학 저술 중 하나인 《요의불요의선설장론, 了義不了義善說藏論》(Drang-nges legs-bshad snying-po) 의 한 구절을 지적했습니다. 린포체는 수행의 일부로 수백 페이지 분량의 이 논서를 매일 암송했습니다. 이 구절은 마음에서 혼란을 제거하는 단계, 특히 혼란의 “씨앗”문제에 관한 것입니다. 표준 해설은 이 씨앗들을 물리적인 것도 아니고 무언가를 아는 방법도 아닌 변화하는 현상으로 해석합니다. 이 점을 전달하기 위해, 저는 그 용어를 “씨앗”이 아닌 “경향”으로 번역해오고 있습니다. 린포체는 논리와 경험, 그리고 본문의 다른 구절을 인용하며 쌀의 씨앗은 여전히 쌀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따라서, 혼란의 씨앗은 혼란의 “흔적”입니다. 이 혁명적인 해석은 무의식을 이해하고 사용하는 방법에 관련해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린포체의 소박한 생활방식
세르콩 린포체의 뛰어난 총명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제나 모든 면에서 겸손하고 가식이 없었습니다. 그는 문곳에 있는 그의 사원에서 가장 높은 라마였지만, 허세를 과시하는 대저택이 아닌 소박한 오두막을 지었습니다. 다람살라에 있는 그의 집도 매우 소박하여 사람 네 명, 자주 방문하는 손님, 강아지 두 마리, 고양이 한 마리가 들어갈 수 있는 방 3개 뿐이었습니다.
린포체가 그의 위대함을 드러내는 것을 꺼린 것처럼, 그는 또한 그의 제자들이 그를 과장하는 것을 막으려 했습니다. 예를 들어, 구루요가로 알려진 정교한 관상을 수행하고 라마의 산스크리트 이름을 포함하는 만트라를 반복하는 것과 같은 몇몇 명상 수행은 영적(정신적) 스승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합니다. 구루요가 수행에서 린포체는 항상 제자들에게 달라이 라마 성하를 관상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린포체는 그의 만트라 이름을 물으면 항상 그의 아버지의 이름을 반복해서 불렀습니다. 린포체의 아버지 세르콩 도르제 창은 20세기 초의 가장 위대한 수행가이자 스승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 시대의 칼라차크라의 혈통 보유자였고, 이것은 그가 지식과 명상 경험을 다음 세대에 전할 책임이 있는 인정받는 대가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사치를 피하는 마하트마 간디의 모범을 따르다
린포체의 소박한 스타일은 다른 많은 방식으로 드러났습니다. 예를 들어, 린포체가 여행할 때, 그는 마하트마 간디의 예를 따랐습니다. 그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인도 열차의 3등석 3단 객차에 타는 것을 고집했습니다. 이는 악취가 나는 화장실 옆에서 자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도 사실입니다. 우리가 다람살라를 떠나 함께 서양으로 첫 여행을 떠났을 때 그러했습니다. 린포체는 이런 흔한 방식으로 여행하는 것이 자비심을 기르는 것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훌륭하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등석이 같은 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하는데 왜 돈을 낭비할까요? 린포체는 사람들이 일등석 기차표를 사거나 비싼 레스토랑에 데려가는 등 그를 위해 돈을 낭비하는 것을 정말 싫어했습니다.
한번은 린포체가 스피티에서 다람살라로 돌아오고 있을 때, 몇몇 다른 제자들과 저는 그를 맞이하기 위해 인도 바자회에서 그를 기다렸습니다. 많은 차와 버스가 린포체 없이 지나쳐간 후에 지저분한 낡은 트럭이 시장으로 들어왔습니다. 세르콩 린포체는 손에 염주를 들고 붐비는 트럭 운전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와 그의 수행원은 안락함이나 외관에 전혀 개의치 않고 이 교통수단을 이용해 스피티에서 3일간 이동했습니다.
린포체가 문곳의 묀람 연례 축제에서 저와 그의 수행원과 함께 다람살라로 돌아갈 때, 우리는 푸나 에서 기차를 하루 종일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는 현지 티베트 상인이 우리에게 사용하라고 제안한 아주 시끄럽고 더운 3성급 호텔방에서 행복하게 묵었습니다. 사실, 린포체는 인도에서 여행할 때 야간 버스를 타는 것이 더 싸고 쉬웠기 때문에 이를 종종 제안하곤 했습니다. 그는 붐비는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것을 결코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집중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할 명상 수행이 많다고 했습니다. 그의 주변의 소음, 혼돈, 오물은 결코 그의 집중력을 방해하지 않았습니다.
린포체는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았지만, 자주 이사를 다녔습니다. 그는 그것이 애착을 극복하는 데 좋다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투어 중에 우리는 너무 오래 머물러서 호스트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한 집에서 며칠 이상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티베트 승려를 스승으로 모시고 불교 센터에 머무를 때마다 린포체는 그 승려를 가장 친한 친구처럼 대했습니다. 그는 진심이 담긴 관계를 특별한 한 사람에게만 국한한 적이 없습니다.
지속적이고 가식 없는 수행, 상황에 따른 유연함
린포체가 어디를 가더라도, 밤낮으로 거의 잠을 자지 않고 강한 수행을 계속했습니다. 그는 약속 시간 사이뿐만 아니라, 외국인 방문객이 있을 때 저의 번역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사다나(탄트라 관상)를 위해 만트라와 경전을 암송했습니다. 그는 차, 기차, 비행기 안에서도 그의 사다나 명상을 수행했습니다. 그에게 외부 환경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강한 일상의 실천이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우리 삶에 연속성을 준다고 강조했습니다. 우리는 유연성, 자신감, 그리고 안정성을 얻습니다.
린포체는 결코 수행을 하는 체 가장하지 않았습니다. 식사 전 음식을 축복하거나 가르치기 전에 기도하는 것과 같이 조용하고 사적으로 일을 하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식사를 하기 전에 긴 엄숙한 구절을 암송하는 것은 그들을 불편하게 하거나, 감명 또는 수치심을 주려 한다고 느끼게 할 뿐입니다. 그는 또한 어떠한 관행이나 관습도 강요하지 않고, 가르침 전후에 그를 초대한 이를 중심으로 그들이 일반적으로 따르는 기도나 의식을 행했습니다.
린포체는 성하와 티베트, 서양의 사원들에게 엄청난 공물을 바쳤지만, 그는 그것에 대해 결코 자랑하거나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한번은 이탈리아 빌로바에 사는 겸손한 중년 남자가 린포체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방을 나가면서 눈에 잘 띄는 자리가 아닌, 작은 사이드 테이블 위에 넉넉한 기부금이 담긴 봉투를 조용히 올려 놓았습니다. 린포체는 후에 이것이 라마에게 공양을 하는 방법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린포체는 우리의 겸손은 거짓이 아니라 진실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겸손한 척 하지만 실제로는 오만하고 거만하거나 자신이 훌륭한 요기(요가 수행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위대한 라마에게 간 유목민 출신의 오만한 수행자의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습니다. 그는 마치 문명의 어떤 것도 보지 않은 듯 행동하며, 라마의 테이블에 올려진 의식용 도구들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가 라마의 고양이를 가리키며 이 놀라운 짐승은 무엇이냐고 묻자 라마는 그를 내쫓았습니다.
그 자신의 개인 수행은 비공개로 유지하다
린포체는 특히 사람들이 자신의 수행을 겉치레로 자랑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안거를 할 생각이 있거나 수행을 마쳤더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 것들은 비공개로 하고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아무도 모르게 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자존심이나 타인의 질투와 경쟁과 같은 많은 장애물을 야기시킬 것입니다. 아무도 어떤 부처상이 쫑카파의 주된 탄트라 수행이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의 제자 케둡제는 쫑카파가 입적 직전에 그의 발우로 62번의 공양을 하는 것을 보았고, 그것이 내적 행복을 구현하는 부처상인 차크라삼바라(승락금강, 勝樂金剛) 라고 추론했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칼라차크라 전문가이자 숙련자로 칭송받는 세르콩 린포체의 주요 개인 수행은 아무도 알지 못했습니다.
린포체는 카담파 게셰들에 대해 종종 말하곤 했는데 그들은 자신의 탄트라 수행을 철저하게 숨겨 그들이 죽은 후에 법복 구석에 바느질 된 작은 금강저(vajra, 승려들이 불도를 닦을 때에 쓰는 도구인 방망이)와 종을 발견해야만 그들이 무엇을 수행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린포체는 이것을 본보기로 따르며 살았습니다. 린포체는 보통 자신의 집에 있는 다른 사람들보다 30분 먼저 잠자리에 들고 그들보다 약간 늦게 아침에 일어납니다. 하지만 그의 수행원들과 저는 모두가 잠든 후에 그의 방에 불이 켜지고 다른 이들이 깨어나기 얼마 전에 꺼지는 것을 자주 목격했습니다.
한번은 독일 예겐도르프에서 린포체의 선임 수행원 콘체일라가 린포체와 방을 함께 사용했습니다. 콘체일라는 잠든 척하면서 린포체가 한밤중에 일어나 나로파의 육성취법과 관련된 여러 가지의 격렬한 자세를 취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비록 낮 동안 린포체는 일어나서 이동할 때 대개 도움을 필요로 했지만 사실 그는 이러한 요가 수행을 수행할 힘과 유연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좋은 자질을 감추다
린포체는 항상 자신의 좋은 자질을 감추려고 했습니다. 사실, 그는 낯선 사람들에게 자신의 신분을 공개하는 것조차 원하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인도네시아의 한 노부부가 파리에서 암스테르담까지 우리를 차로 태워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암스테르담에 도착한 후에, 그 부부는 린포체를 집으로 초대하여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지역 불교 센터의 사람들이 부부에게 전화를 걸어 린포체의 가르침에 초대했을 때, 그들은 자신들의 손님이 실제로 누구인지를 꺠달았습니다. 그들은 그가 그저 평범하고 친절한 승려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와 같이, 린포체는 해외로 여행을 할 때, 아이들과 체스를 두거나 그의 어린 수행자 나왕에게 게임을 시켜 양쪽을 돕곤 했습니다. 아이들은 그가 친절한 할아버지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한번은 린포체가 크리스마스에 독일 뮌휀의 거리를 걸을 때 아이들은 빨간 가운을 입은 그를 산타클로스라고 생각하면서 따랐습니다.
린포체는 심지어 그가 영어를 꽤 안다는 사실까지 숨겼습니다. 스피티에서 칼라차크라가 시작된 후, 린포체가 입적하기 한 달 전, 저는 다람살라로 돌아가기 위해 타보 사원에서 그를 떠났습니다. 저는 서양인 일행이 탈 버스를 전세 냈는데 갈 시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 한명이 마지막 순간에 계곡에서 20마일 더 떨어진 키 사원에 방문했고 예상된 시간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제가 키 사원에 그녀를 찾으러 갔을 때, 이탈리아의 한 제자가 린포체를 만나러 갔지만 통역사는 없었습니다. 한 번도 외국인에게 영어 한마디 해 본 적이 없던 린포체는 그 이탈리아인에게 고개를 돌려 완벽한 영어로 “알렉스는 어디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남자가 “하지만 린포체, 당신은 영어를 못하지 않습니까!”라고 외치자, 린포체는 그저 웃기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