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사제 관계에 관한 경험적 사실
영적 사제 관계에 얽힌 혼란을 막기 위해 우리는 특정한 경험적 사실을 알아 두어야 합니다.
- 거의 모든 영적 탐구자들은 영적인 길을 걸으면서 단계적으로 성장해 간다.
- 대부분의 수행자는 일생 동안 여러 스승과 함께 배우며 각기 다른 관계를 맺는다.
- 모든 영적 스승이 같은 수준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 특정 탐구자와 특정 스승 사이에 구축되는 적절한 관계는 각각의 수준에 좌우된다.
- 사람들은 보통 영적인 길에서 발전을 이뤄가며 그들의 스승과 점진적으로 더 깊은 유대를 맺게 된다.
- 같은 스승이라도 각 제자의 영적인 삶에서 다른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와 각 제자의 가장 적절한 관계도 다를 수 있다.
영적 스승과 영적 탐구자의 수준
따라서, 영적 스승과 영적 탐구자들의 수준은 다양합니다:
- 불교 교수: 대학 등에서 정보를 준다.
- 다르마(법) 강사: 다르마를 삶에 응용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 명상 지도자: 태극권 또는 요가와 유사한 방법을 가르친다.
- 선지식(善知識, 영적/정신적 멘토): 그들이 제자들에게 주는 계(재가계, 구족계, 보살계, 또는 탄트라계)의 수준에 따라 달라진다.
각 스승의 수준에 상응하여 제자들에게도 다양한 수준이 있습니다:
- 불교 제자: 정보를 얻으려고 한다.
- 다르마(법)의 제자: 인생에 다르마를 응용하는 방법을 배우려고 한다.
- 명상 훈련생: 마음을 진정하고 다스리는 방법을 배우려고 한다.
- 제자: 다음 생을 개선하고, 해탈 혹은 깨달음에 이르고 싶어하며,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일정 수준의 계를 받을 준비가 되어있다. 이번 생을 개선하고 싶어하는 경우에도 이를 해탈과 깨달음의 발판으로만 생각한다.
각 수준에는 필요조건이 있으며, 영적 탐구자로서 우리는 자기 자신과 스승의 배경 – 아시아인인지 서양인인지, 승려나 비구니 스님인지, 혹은 재가인지, 교육의 수준, 감정적 윤리적 성숙도, 헌신의 정도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천천히 신중하게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잠재적 제자와 잠재적 스승에게 필요한 조건
제자가 되고자 하는 경우 자기 자신의 발전 수준을 확인하여 아직 준비되지 않은 관계를 맺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제자에게 필요한 주요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 선입견이나 의견에 얽매이지 않는 열린 마음
- 적절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하는 상식
- 다르마에 대한 강한 관심과 올바른 자격을 갖춘 스승을 찾는 것
- 다르마와 자격을 갖춘 스승에 대한 존경심과 감사
- 배려하는 마음
- 감정의 기본적인 성숙과 안정
- 기본적인 윤리적 책임감
스승이 더 높은 단계에 있을 수록 더 많은 자격이 요구됩니다. 다음이 그 주된 것입니다:
- 자신의 정신적 스승과의 건전한 관계
- 제자보다 다르마에 대한 지식이 더 많을 것
- 명상과 실생활에 경험과 방법을 통합을 어느 정도 이뤘다.
- 다르마를 실생활에 도입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유익한 결과를 제시하고 제자들에게 자극을 주는 모범이 되는 능력. 즉, 다음과 같은 것을 갖추고 있는 것:
- 윤리적 자기 단련(계)
- 조잡한 감정 문제가 없는 것에 기초한 감정적 성숙과 안정
- 가르침을 주는 첫 번째 동기로 제자들의 이익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
- 가르침을 줄 때의 인내심
- 허식(자신에게 부족한 조건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나 위선(지식이나 경험의 부족과 같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결점을 숨기는 것)이 없어야 한다.
우리는 상황의 현실에 적응해야 합니다. 즉, 자신의 도시에 살고 있는 스승들의 자격 수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헌신할 수 있는가, 자신의 영적인 목표(‘모든 중생의 이익을 위하여’와 같은 이상주의적인 것 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것)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의 스승이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과 정신적 유대를 구축하기 전에 그들의 자격을 확인해 두면 스승을 신으로 추앙하거나 악마로 두는 극단을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적 스승을 신으로 생각해 버리면, 그 무지에 사로잡혀 학대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악마라고 생각해 버리면,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이익을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선지식의 제자가 되는 것과 치료사의 고객이 되는 것의 차이
영적 사제관계에 관한 잘못된 생각 중 하나는 선지식(정신적 멘토)이 치료사처럼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감정적인 행복, 평생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선지식의 제자가 되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같은 목적으로 치료사의 고객이 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불교와 치료에는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 인생의 괴로움과 그것을 완화하기를 원하는 것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에서 비롯된다.
- 누군가와 함께 문제나 그 원인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이 수반된다. 사실, 많은 형태의 치료에서는 불교 사고방식과 마찬가지로 ‘이해’가 자기 변혁의 열쇠라고 여겨진다.
- 문제의 근본 원인에 대한 깊은 이해를 중시하는 사상학파, 이러한 요인을 극복하는 실용적인 방법에 임할 것을 강조하는 전통, 그리고 이 두 접근법을 균형 있게 조합할 것을 권장하는 체계가 존재한다.
- 선지식이나 치료사와의 건전한 감정적 관계 구축은 자기 개발 과정의 중요한 일부라고 주장한다.
- 비록 대부분의 고전적인 치료에서는 고객의 행동이나 사고를 수정하기 위한 윤리적 지침을 사용하는 것을 꺼려하지만, 신고전파에서는 불교와 유사한 윤리적 원칙을 지지한다. 그러한 윤리원칙에는 기능장애 가정의 모든 구성원을 동등하게 존중하고, 분노와 같은 파괴적인 충동에 이끌려 행동하지 않는 것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유사점이 있는 반면, 선지식의 제자가 되는 것과 치료사의 고객이 되는 것은 적어도 다섯 가지 점에서 크게 다릅니다:
(1) 관계를 구축하는 감정적 수준. 고객이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감정적으로 문제가 있을 때 치료사를 찾습니다. 그들은 정신 이상일 수도 있고 치료의 일환으로 약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대조적으로, 제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그들의 영적인 길의 첫 단계에서 선지식과 관계를 맺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에 앞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자기 자신을 수련합니다. 이들은 충분한 정신적 성숙, 안정을 이룬 후 선지식과의 관계를 구축하기 때문에 이 사제관계는 불교적 의미에서 건설적인 것이 됩니다. 다시 말해, 불교의 제자들은 이 단계에서 이미 신경질적 태도나 언행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2) 관계에서 예상되는 교류. 고객이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해 줄 사람을 갖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집단 치료일 지라도 자신의 이야기나 문제에 집중하여 주의를 기울여 주는 것을 기대합니다. 반면에 제자들은 보통 개인적 문제를 선지식에게 털어놓지 않고 개인적인 관심을 기대하거나 요구하지 않습니다. 비록 그들이 개인적인 조언을 구하는 경우가 있다해도 선지식을 자주 방문하지는 않습니다. 사제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가르침을 듣는 것입니다. 불교 제자들은 우선 모두가 경험하는 일반적인 문제를 극복하는 것을 선지식에게서 배웁니다. 그리고 스스로 책임을 가지고, 특정한 상황에서 그러한 방법들을 응용해 나갑니다.
(3) 관계가 잘 유지되어 있을 경우 기대되는 결과. 치료는 삶의 문제를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가는 것과, 문제를 줄이고 견디는 것을 배우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만약 우리가 이번 생의 감정적 행복을 목표로 선지식에게 접근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문제를 줄이기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인생이 어렵더라도 – 부처가 설파한 첫 번째 삶의 진리(고제, 苦諦) – 우리는 어려움을 덜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삶의 감정적 측면의 고통을 덜어내는 것은 고전 불교의 길에서 예비 단계일 뿐입니다. 선지식의 제자들은 적어도 선취로의 환생, 해방, 깨달음과 같은 더 큰 목표를 지향합니다. 또한 제자들은 불교에서 설명하는 환생을 지성적으로 이해하고 적어도 그 실재를 잠정적으로 수용합니다. 치료를 받는 고객들은 환생이나 현재 상황을 개선하는 것 이상의 목표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4) 자기 개혁에 헌신하는 수준. 치료사의 고객들은 시간마다 요금을 지불하지만 사고방식이나 행동을 평생에 걸쳐 변화하는 데 전념하지는 않습니다. 반면 불교의 제자들은 가르침에 비용을 지불할 수도 그렇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정식으로 그들의 길을 바꿉니다. 안전한 방향(귀의)을 택함으로써, 제자들은 부처가 자세히 검토하고 설파한, 그리고 고도로 깨달은 정신적 집단이 열심히 따라온 자기 개혁의 길에 자신도 온전히 헌신하겠다고 다짐합니다.
나아가 부처의 제자들은 삶에서 윤리적이고 건설적인 행동, 발화, 사고를 할 것을 다짐합니다. 그들은 파괴적인 행동 양식을 가능한 한 피하고 대신 건설적인 것에 관여하려고 노력합니다. 제자들이 제어할 수 없는 환생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문제로부터의 해탈을 간절하게 원할 경우, 그들은 재가계나 구족계를 정식으로 수계하여 결의를 더욱 강하게 다집니다. 자기 개발의 이 단계에 있는 제자들은 자연적으로 파괴적이거나, 부처가 특정 사람들이 정해진 목적을 위해 피하는 것이 좋다고 권장한 행위를 평생 피하겠다고 맹세합니다. 집착을 피하기 위해 승려나 여승이 세속의 의복을 버리고 가사를 입는 것은 후자의 한 예입니다. 심지어 완전한 해탈에 대한 염원을 강하게 하기 전 제자들이 재가계/구족계를 수계하는 일도 드물지 않습니다.
반면에, 치료의 고객들은 예를 들어, 50분간의 진료 시간을 지키는 것과 같은 치료 계약의 일부로서 특정한 절차 규칙을 따르는 것에 합의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규칙은 치료 중에만 적용됩니다. 그것은 치료 환경 밖에서는 적용되지 않으며, 자연적으로 파괴적인 행동을 자제하는 것을 포함하지 않아 평생 지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5) 스승이나 치료사에 대한 태도. 제자에게 스승은 자신이 노력하여 도달하려는 삶의 목표입니다. 그들은 선지식의 공덕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 근거하여 그들을 보고 이 생각은 깨달음으로 가는 단계적인 과정에서 유지되고 점차 강해져 갑니다. 반대로, 고객들은 그들의 치료사들을 정서적 건강의 본보기로 삼을 수 있을 수 있지만, 치료사가 가진 공덕을 정확히 인식할 필요는 없습니다. 치료사처럼 되는 것이 그들 관계의 목표는 아닙니다. 치료 과정 동안, 치료사들은 고객들을 원하는 이미지의 투영 이상으로 이끌어 갑니다.
‘제자’라는 말의 오용
때때로 사람들이 자신을 ‘선지식의 제자’라고 말할 때, 그들 자신이 ‘제자’라고 말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거나, 스승이 그러한 호칭에 맞지 않거나, 혹은 양쪽이 그 이름의 의미를 충족시키는 데 부족한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그들의 무지는 종종 비현실적인 기대, 오해, 감정을 상하게 하거나, 학대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학대’의 대상이란 성적, 감정적, 경제적으로 착취당하거나 누군가의 힘 과시를 위해 조종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서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짜 제자’의 세 가지 유형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들은 특히 영적 스승과의 문제로부터 영향을 받기 쉽습니다.
(1)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환상을 채우기 위해 다르마 센터를 찾습니다. 그들은 ‘신비한 동양’이나 ‘슈퍼스타 구루’에 대해 읽거나 듣고 그들의 지루한 일상을 초월하기 위해 이국적이고 초자연적인 경험을 하기를 원합니다. 그들은 영적 스승을 만나 즉각적으로 제자가 되겠다고 선언하는데, 특히 스승이 동양인이거나, 가사를 입었거나, 둘 다일 경우 더욱 그렇습니다. 아시아인 칭호나 이름을 가진 서양인 스승에게도 가사 유무에 관계없이 비슷한 행동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신비로운 것을 찾는 탐구심은 그런 것을 찾는 제자와 스승이 맺는 관계를 흔들리게 합니다. 그들이 스스로를 정식 자격을 갖춘 선지식의 제자라고 선언한 경우조차 자신의 상상 속 이외에는 어떠한 초자연적인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 스승을 떠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즉각적인 제자’의 비현실적인 태도와 큰 기대는 이들의 비판 능력을 흐리게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특히 선의를 가장하는 영적 사기꾼들의 먹이가 되기 쉽습니다.
(2) 감정적, 신체적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도움을 간절히 바라며 센터를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다양한 형태의 치료를 받았지만 어느 것도 효과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그들은 마술사나 치료사를 통해 기적적인 치료를 찾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에게 축복의 약을 주고, 특별한 기도의 말이나 만트라를 주고 그것을 반복적으로 외우라고 하며, 혹은 강력한 수행으로 자동으로 문제가 해결된다고 – 예를 들어, 오체투지를 1만번 하는 것 – 말하는 사람의 제자라고 선언합니다. 그들이 의지하는 것은 언제나 신비로운 것을 찾는 탐구자들을 매료시키는 같은 유형의 스승들 뿐입니다. 기적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어쨌든 치료하라!’의 사고방식은 종종 실망과 낙담을 자아냅니다. 자격을 갖춘 스승의 조언을 따르더라도 그들은 기적적으로 치유되지 않습니다. ‘어쨌든 치료하라’의 사고방식은 또한 영적 사기꾼에 의한 학대를 부추깁니다.
(3) 다른 사람들, 특히 환멸을 느끼는 젊은 실업자들이 자신의 존재에 힘을 얻기를 바라며 컬트 종파의 다르마 센터에 찾아옵니다. 카리스마 있는 과대망상자가 ‘정신적 파시스트’ 수법을 사용하여 그들을 사로잡습니다. 이들은 소위 제자들에게 자신들의 종파에 완전한 충성을 바친 경우에 따른 우위를 약속합니다. 이어 그들의 적 - 특히 자신들보다 하위의, 부도덕한 불교 전통의 신자들을 완전히 파괴할 강력한 수호자들에 대한 극적인 묘사로 제자들을 매료시킵니다. 그들의 활동의 창시자들의 초인적 힘에 대한 장대한 이야기를 통해, 그들은 제자들이 가진 ‘영적 세계에서 권위 있는 지위로 끌어올려 줄 전능한 리더’에 대한 꿈을 채우려고 노력합니다. 이런 약속에 답하기 위해 젊은이들은 곧바로 제자임을 선언하고 권위 있는 스승들이 내리는 온갖 지시와 명령을 맹목적으로 따릅니다. 그 결과는 보통 매우 비참합니다.
요약
간단히 말하면, 불교 센터에서 가르치는 모든 사람이 진정한 선지식은 아니며, 센터에서 배우는 모든 사람이 진정한 제자는 아닙니다. 우리는 ‘선지식’이나 ‘제자’라는 말을 정확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정신적으로 솔직해지고 거짓된 언동을 취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