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평화를 통한 평화 이루기

Study buddhism universal values 06

신체적 정신적 불편

동서남북 어디에 살든 평화는 모든 이의 관심사입니다. 부자이건 가난한 사람이건 누구나 진정으로 평화에 관심을 가져야합니다. 우리 모두 인간이기 때문에 행복하고 안락한 삶을 누리고자 합니다. 행복한 삶은 우리의 동일한 관심사입니다. 우리 모두가 행복한 삶을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나” 또는 “자아”라는 느낌이 있지만 “나” 또는 “자아”가 무엇인지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나”에 대한 강한 느낌을 지니고 있습니다. 나라는 느낌으로 인해 우리는 안락하기를 원하고 고통을 받지 않으려는 열망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은 자연적으로 발생하고 드러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모두는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한편,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불쾌한 일과 어려움을 겪습니다. 고통은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고통의 한 가지 범주는 신체적 원인으로, 질병과 노화입니다. 저 역시 이미 노화와 질병의 고통을 조금씩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청각과 시각에 조금씩 불편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다른 범주는 정신적인 부분입니다. 육체적으로 모든 것이 편안하고 고급스럽고 모든 것이 갖춰져 있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스트레스를 받고 의심하며 외로움을 느낍니다. 우리는 질투와 두려움과 증오를 느끼며 결국엔 불행해 합니다. 따라서 육체적 수준에도 불구하고 정신적 수준에서 우리는 더 많은 고통을 겪을 수 있습니다.

육체적 안락함을 위해, 돈으로, 우리는 고통을 줄이고 육체적 충족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권력, 이름, 명성을 포함한 육체적인 만족은 내면의 평화를 가져다 주지 못합니다. 때때로, 실제로 많은 돈과 부를 갖는 것은 우리에게 더 큰 걱정을 안겨줍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름과 명성에 대해 너무 걱정하고 있으며, 이는 위선, 불편, 스트레스로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정신적 행복은 외부 수단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내적 사고 방식에 달려있습니다.

우리는 가난하지만 내면이 매우 강하고 행복한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내면의 만족을 느끼면 신체적 고통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육체적 고통보다 정신적 고통이 더 강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신체적 불편함이 정신적 안락으로 정복될 수 있지만 정신적 불편함은 신체적 안락으로 제거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정신적 괴로움과 문제들은 동물이 겪는 문제들보다 더 강하고 심각합니다. 사람과 동물이 육체적으로 느끼는 고통은 동일하지만, 인간은, 우리의 지성으로 인해 의심, 불안, 스트레스를 느낍니다. 이러한 것들은 우울증을 유발합니다. 이는 우리의 뛰어난 지성으로 인해 생겨난 결과들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 우리는 인간의 지성을 활용해야 합니다. 감정적 측면에서, 어떤 감정이 마음에 일어나면 우리는 마음의 평화를 잃게 됩니다. 반면 어떤 감정은 우리에게 더 큰 힘을 가져다 줍니다. 이와 같은 감정들은 힘과 자신감의 토대이며, 우리를 보다 고요하고 평온한 마음 상태로 이끌어줍니다.

감정의 두 가지 범주 

감정은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마음의 평화에 악한 영향을 끼치는 부정적인 감정들로 분노와 증오와 같은 파괴적인 감정입니다. 이와 같은 부정적 감정은 지금 이 순간 우리의 내적 평화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말과 몸에 매우 악영향을 끼칩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행동 방식에 영향을 미칩니다. 부정적인 감정들이 우리를 악하게 행동하게 하므로 파괴적이고 부정적입니다. 반대로 긍정적인 감정들은 우리이 내면에 힘과 평온을 가져다 줍니다. 자비심과 같은 긍정적 감정들은 내면의 힘을 길러줍니다. 예를 들어 자비심은 우리에게 용서의 힘이 생기게 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과 부딪치게 되어 어려움을 겪어도 용서는 결국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마음에 평안이 생기게 합니다. 우리를 너무나 화나게 한 사람이 심지어 가장 친한 친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내적 평화 

평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반드시 이러한 감정들과 내면의 평화에 대해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감정이 내면의 평화로 이어지는 지 알아 내야 합니다. 그에 앞서 외적 평화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외적 평화는 단순히 폭력의 부재가 아닙니다. 아마도 냉전 기간 동안 우리는 분명히 평화는 얻었지만 그 평화는 정작 핵무기로 인한 대참사를 두려워하는 두려움이었습니다. 양측은 상대방의 폭격을 두려워한 것이기 때문에 진정한 평화는 아니었습니다. 진정한 평화는 내면의 평화에서 생겨납니다. 갈등이 생길 때마다 우리는 평화로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평화는 따뜻한 마음과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한 존중,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 지 않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삶을 우리 자신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그 점을 존중해야 하며, 그런 이유로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면 그렇게 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누군가가 우리를 도와 주려고 한다면 우리는 감사하게 여겨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고통을 겪고 있다면 상대방에게 이해심을 지녀야 합니다. 상대가 감사함을 느끼고 행복합니다. 그러므로 내적 자비심과 마음의 평안으로부터 모든 행동은 평화로워집니다. 만일 우리가 내면의 평화를 확립할 수 있다면, 외부의 평화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인간으로서, 각기 다른 사람들이 만나면 늘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와 “그들”이라는 강력한 개념을 바탕으로 우리는 “나의 관심사”와 “당신의 관심사”라는 개념을 얻습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전쟁을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나의 적의 붕괴가 나의 승리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새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는 경제적, 생태학적 관점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매우 밀접하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와 “그들”의 개념은 더 이상 관련이 없습니다. 우리가 “그들”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이제 “우리”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마음의 평화를 발전시키는 핵심 요소는 우리 역시 이 지구상의 60 억 명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모두가 행복할 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인식에 근거한 자비심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는 모든 사람을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으며,이를 바탕으로 외적 평화를 확립할 수 있습니다.

작은 범위에서부터 시작하기 

평화를 위해서 우리 자신과 가족, 지역 사회에 평화를 발전시켜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저의 친구는 고향인 멕시코에서 자신의 마을을 “평화의 지역”으로 발전시켰습니다. 그는 지역 사회의 모든 사람들을 통해 계약을 맺었고 확립했습니다. 지역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평화 지대 내에서 폭력을 금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노력하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지역 사람들은 혹여나 싸움이 나거나 다툼이 생기면 모두 지역의 밖으로 나가겠다고 동의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훌륭한 일입니다.

세계 평화를 강요할 수는 없지만 결국 세계의 수준은 최고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더 현실적으로 지금부터 시작해야 할 것은 평화 지대와 같은 것들을 확립함으로써 나와 나의 가족, 마을, 지역 등으로 작은 범위에서 점차 늘려나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내면의 평화는 자비심과 매우 관련이 있습니다.

현재 세상은 너무나 많이 변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 제가 저의 스승이라고 생각하는 독일인 친구 프리드리히 폰 바이츠사커 Friedrich von Weizsäcker가 젊었을 때, 모든 독일인의 관점에서 프랑스 인은 적이었고, 모든 프랑스인의  관점에서 전 독일군은 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다릅니다. 이제 우리는 유럽 연합이라는 통합된 세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좋습니다. 이전에는 모든 주가 자신의 관점에서 자신의 주권을 가장 귀중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이제 유럽에는 새로운 현실이 있습니다. 개인의 관심사보다 더 중요한 공통의 관심사가 생겨났습니다. 경제가 개선되면 모든 회원국이 혜택을 받습니다. 이제 이와 같은 사고를 지구의 60 억 인구에게 확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모두를 거대한 한 가족의 일원으로 생각해야합니다.

생물학적인 요소에서의 자비심

인간을 포함한 모든 포유류는 성장하면서 어머니로부터 애정과 보살핌을 받습니다. 바다 거북과 알을 낳고 죽는 나비와 연어와 같은 경우 단지 몇 종을 제외하고는 어미의 보살핌을 받습니다. 이 존재들은 약간 예외입니다. 예를 들어, 바다 거북을 보십시오. 바다 거북의 어미들은 해안에 알을 낳고 바다로 떠납니다. 따라서 어린 거북이의 생존은 전적으로 자신의 노력에 달려 있습니다. 새끼 거북이들은 어머니의 애정이 없이도 살아남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린 거북이 와 어미를 한데 있게 하면 과연 서로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매우 흥미로운 과학 실험이 될 것이라고 청중들에게 말하곤 합니다. 저는 새끼 거북이와 어미 거북이가 서로 애정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연이 이런 식으로 그들을 창조했기에 서로 애정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포유류 같은, 특히 인간의 경우, 어머니의 보살핌이 없다면 우리는 모두 죽었을 것입니다.

어린 아기를 돌보려면 자비심, 애정, 걱정과 돌봄과 같은 감정들이 필요합니다. 과학자들은 출생 후 몇 주 동안 어머니의 손길이 유아의 뇌 발달에 필수적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사랑과 애정이 많은 따뜻한 가정에서 성장한 아이들이 더 행복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은 육체적으로도 건강합니다. 반면 특히 어릴 때 충분한 애정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부 과학자들은 어린 원숭이를 어미와 분리시키는 실험을 했으며, 그로 인해 어린 원숭이는 항상 기분이 좋지 않았고 종종 싸우는 것을 관찰했습니다. 어린 원숭이들은 서로 잘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어미와 함께 있던 원숭이들은 행복했고 서로 즐겁게 놀았습니다. 특히 유아 시절에 애정을 못 받은 인간 어린이들은 감기에 쉽게 걸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아이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애정을 나타내는데 어려움을 겪었고, 어떤 경우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폭력적으로 행동합니다. 따라서 애정은 생물학적 요인, 생물학적인 요인이 기반이 됩니다.

또한, 자비심과 감정은 생물학적으로 물리적 수준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일부 과학자들에 의하면 우리가 끊임없이 화를 내고 미움과 두려움을 가졌다면 면역 체계가 무너져 몸이 약해집니다. 그러나 자비심은 면역 체계를 돕고 강화시킵니다.

다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의료 분야를 살펴보면, 의사와 환자 간의 신뢰는 환자의 병이 개선되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신뢰의 기초는 무엇입니까? 의사가 환자가 회복될 수 있도록 진심으로 걱정하고 살핀다면 두 사람 간에 신뢰가 생겨납니다. 그러나 의사가 전문가이더라도 환자를 기계처럼 대우한다면 신뢰가 거진 생겨날 수 없습니다. 의사가 경험이 많으면 신뢰가 생겨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의사가 자비심이 많으면 환자의 신뢰는 더 커질 것입니다. 환자는 더 숙면을 취하고 덜 불편해 합니다. 환자들이 깊이 혼란스러워지면, 그들은 더욱 어려움을 겪고 이것은 회복에 영향을 미칩니다.

삶에서 어려움들은 피할 수 없습니다. 불교의 위대한 수행자 샨티데바 (Shantideva)께서는 문제에 맞닥뜨리면 이를 분석해야 한다고 조언하셨습니다. 만일 문제들을 해결할 방법이 있고 극복이 가능하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으며, 나아가 해결할 방법이 없다면 그래서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게송을 생각하면 큰 도움이 됩니다. 큰 문제가 있어도 이와 같이 생각하면 문제를 최소화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이의 애정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가 작은 아기일 때 우리에게는 애정과 자비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독립심이 생겨나고  자신의 길을 얻기 위해 자비로움 보다 공격적인 것이 더 중요하다고 느끼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60억 명이 모두 어머니로부터 태어났습니다. 우리 모두 유아기 때부터 어머니의 사랑과, 어머니가 계시지 않는 경우 다른 사람의 애정으로 행복과 만족을 경험합니다. 하지만 점차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이러한 특성이 더 옅어지고, 공격적이고 다른 이들을 괴롭히게 되어 더 많은 문제를 야기합니다.

있는 그대로 봐야 하는 필요성

스웨덴의 한 과학자는 마음 속 깊이 화가 나서 분노가 두뇌를 지배하게 된 것은 화가 나게 한 상대에게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90 프로가 전부 나의 관점에 따른 것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 부정적인 부분의 90프로가 나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누군가에 대한 애착과 강한 욕구를 가질 때도 비슷합니다. 어떤 대상에 애착이 일어나면 우리는 그 사람을 100프로 아름답고 좋은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그것도 상당 부분 나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합니다. 따라서 있는 그대로 실상을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또 다른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그 누구도 문제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왜 문제가 발생합니까? 우리의 순진함과 무지함, 그리고 접근 방식 때문입니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 즉 실상을 보지 못합니다. 우리의 제한된 개념으로 인해 전체 그림을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2면만 볼 수 있지만 이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3면, 4 면, 6 면으로 사물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객관적으로 대상을 조사하기 위해서 먼저 마음을 진정시켜야 합니다.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의 차이는 이러한 점들을 이해하는 데 중요합니다. 우리가 성장하면서 점차 자비심의 생물학적 요인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자비심을 다시 강화시키기 위해서는 자비심에 대한 교육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생물학적 유형의 자비심은 편향된 감정입니다. 생물학적 자비심은 다른 사람들의 애정을 토대로 생겨납니다. 그러나 이것을 바탕으로 관찰하고 이성과 과학적 요소를 추가함으로써 우리는 이 생물학적 수준의 자비심을 유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훈련과 교육을 통해 편향된 자비심이 60 억 이상의 사람들에게 공평한 무한의 자비심이 될 수 있습니다.

교육의 중요

모든 것은 교육에 달려 있습니다. 현대 교육은 뇌의 발달과 지성에 주의를 기울이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우리는 교육 체계에서 선한 마음을 키울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필요합니다.

미국의 일부 과학자들은 어린이들이 더 많은 자비심과 마음 챙김을 일으키도록 수련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아이들이 미래의 삶을 개선하고 열반을 얻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현재 삶의 이익을 위해 행해지는 것입니다. 일부 대학에는 선한 마음과 자비심을 길러주는 교육 프로그램이 이미 있습니다. 이와 같이 편견 없는 자비심은 다른 사람들의 태도에 따라 달라지지 않고 단순히 인간이라는 것에만 초점을 맞춥니다. 우리 모두 이 지구상의60 억 인류의 일부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므로 모든 이가 자비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내적 외적 무장해제 

따라서 내면의 평화와 세계 평화를 위해서는 내적 외적 무장해제가 필요합니다. 이것은 내적 차원에서 자비심을 키우면 나아가서 모든 국가를 외적 차원에서 무장해제 시킬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프랑스-독일 유럽 군단의 통합된 힘을 갖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대단한 것입니다. 유럽 연합 전체에 통합된 힘이 있다면 회원국간에 무장 투쟁은 없을 것입니다.

브뤼셀에서 외무 장관 회의가 있었는데, 앞으로 유럽 연합의 본부를 폴란드와 같은 동유럽 국가 중 한 곳으로 옮기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 러시아까지 포함되도록 확장하고 NATO 본사를 모스크바로 이전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유럽은 평화롭고, 전쟁의 위험이 없을 것입니다. 현재 러시아와 조지아 사이에 어려움이 있지만 우리는 계속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프랑스의 군수 산업은 평화의 확대로 인해 결국 폐쇄 될 수 있으며 경제를 보다 생산적인 측면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탱크 대신에 공장을 개조하여 불도저를 만들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 국가들도 우리의 도움이 매우 필요합니다. 빈부격차는 큰 문제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국가 차원에서 빈부격차는 상당히 끔찍합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는 부자와 가난한 자 사이에 큰 불일치가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기아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동일한 인간이며, 동일한 희망과 열망이 있고, 같은 문제들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는 내면의 평화를 통해 평화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이 모든 점을 고려해야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