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적 행동의 토대

윤리의 세 영역 – 파괴적인 행동의 자제, 규율, 타인을 돕는 것

우리가 불교에서 윤리나 윤리적 행동에 대해 이야기할 때, 세 가지 다른 영역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첫번째는 파괴적인 행동을 피하는 것인데, 그것은 상처를 주려는 의도를 갖든 갖지 않든 분노, 탐욕, 이기주의의 영향 아래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이기적으로 행동하지만 자신이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조차 깨닫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려고 의도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상처를 주거나 문제를 낳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기적으로 ‘내 방식’이나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어야 한다’라고 원한다면 – 우리가 자신에 대해서만 생각하기 때문에 –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그런 의도가 없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큰 상처를 주게 됩니다. 우리가 화가 나면 자제력을 잃게 됩니다, 그렇죠? 그리고 나중에 후회할 만한 문제를 일으키는 방식으로 많은 것들을 하고 말합니다. 그렇기에 윤리의 첫 번째 영역은 파괴적인 행동을 자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윤리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은 규율에 관한 것입니다. 규율을 갖는다는 것은 자신의 인생에 통제력을 가지고 우리의 삶에서 어떤 것도 성취할 수 없게 방해하는 태만과 혼란스러운 마음의 영향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윤리적 행동의 두 번째 영역은 실제로 무언가 건설적인 것에 관여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공부를 열심히 하여 좋은 교육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많은 규율을 필요로 합니다. 배우고 공부하는 자기 규율인 셈이죠. 우리가 삶에서 긍정적인 것을 성취하고 싶다면 자격이 필요하고, 교육을 받아야 하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규율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윤리의 영역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것이 윤리적인 것일까요? 예를 들어, 우리는 정말 대단한 도둑이나 범죄자가 되기 위해 훈련을 할 수도, 사회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사람이 되는 훈련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만약 우리가 무언가를 배우고 싶다면, 우선 자신의 강점과 재능을 바탕으로 무엇이 가장 유용할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나 즐기는 것도 포함됩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면 그것은 물론 TV를 보거나 친구들을 만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평생을 이렇게 보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죠? 그래서 우리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생각할 때, 그것은 단지 지금 이 순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행복을 주는 무언가가 되어야 합니다. 

윤리의 세 번째 영역은 실제로 다른 사람을 돕는 것에 관여하는 윤리입니다. 뛰어난 자질을 가지기 위한 훈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뛰어난 자질, 재능, 능력 모두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이 가진 능력이 무엇이든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사용할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한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행복은 사회 전체의 행복에 매우 크게 좌우됩니다. 그래서 윤리에 대해 논할 때는 편협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아주 넓은 시야의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단지 자신과 자신의 가족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사회를 생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또한 현재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와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 생각하는 것입니다.    

윤리적 행동의 토대: 배려하는 태도(불방일)

우리가 윤리적 행동의 기초가 무엇인지 물을 때, 소위 ‘배려하는 태도’로 알려진 것이 주로 강조됩니다. 이 배려심 있는 태도는 자기 자신을 돌보고, 자신이 하는 일을 돌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음에 일어나는 충동으로 인해 무의식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이 가져오는 결과를, 그것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이끌 것인지 살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 뿐 아니라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도 살피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파괴적인 방식으로 행동하거나 게을러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낸다면 나의 장래는 어떻게 될까요? 특히 지금 여기에 계신 많은 분들과 같은 젊은 분들이 지금 자신을 훈련시키지 않으면 어떻게 생계를 꾸리고 어떻게 삶을 다루겠습니까? 만약 우리가 ‘아, 상관없어. 난 신경 쓰지 않아’라는 태도를 가지고 있거나 ‘희망이 전혀 없는데 좋은 교육을 받거나 무역을 배우거나 전문직을 갖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라고 느낀다면 우리는 훗날 이 기회를 낭비한 것을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현재의 인생을 어떻게 보내는가에 따라 생기는 결과에 대해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미래가 중요하다는 것’ 이 감정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만약 자신을 돌보지 않는다면, 누가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마음의 말고삐를 손에 두다

불교에서 쓰이는 말이 있는데, 자신의 삶을 자신의 손에 쥔다고 합니다. 즉, 자기 삶을 통제한다는 뜻인데 그것은 말에 비유되어 설명됩니다. 여러분은 말의 고삐, 즉 사람이 말을 이끄는데 사용하는 밧줄을 손에 쥐고 있는데, 이처럼 마음의 말고삐를 손에 쥐고 말이 거칠게 뛰거나 다른 사람에 의해 통제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자신의 인생에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는지를 통제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인생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태만한 사람이 될 것입니까? 아니면 의미 있고 충실한 삶을 영위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까? 의미 있고 성취감을 주는 삶을 이끄는 것은 다른 사람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에 크게 의존합니다. 나는 친절하고 도움이 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이기적이고 모두에게 화를 내는 사람입니까?

그 누구도 언제나 화를 내고 짜증내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고, 대개는 그런 사람을 매우 두려워합니다. 우리는 그들이 화를 낼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이 사람과 함께 있고 싶지 않다.’라고 느낍니다. 또는 항상 불평하고 비판만 하는 사람들과 있는 것은 즐겁지 않습니다, 그렇죠? 하지만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 세심하고,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결점과 잘못을 비판하기 보다는 그들이 발전하고 개선할 수 있도록 돕는다면 누구나 우리와 함께하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는 윤리에 달려있습니다. 우리의 행동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그리고 이것이 다른 사람들 과의 상호작용에서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신경을 씁니다. 이것이 배려하는 태도입니다. 

제가 ‘배려하는 태도’로 번역하는 이 단어 ‘불방일(不放逸, 티베트어: bag-yod, 산스크리트어: apramada)은 ‘주의하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지, 무엇을 말할 것인지, 무엇을 생각할 것인지에 대해서 주의해야 합니다. 나쁜 습관을 들이게 되면 더 깊숙하게 습관이 자리잡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다면, 자동적으로 해로운 행동을 하게 됩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을 할 때 거칠고 험한 욕을 사용합니다. 영어의 경우에는 확실히 그렇지만, 아마 러시아어에서도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제가 러시아의 일반적인 말은 잘 모르지만, 대부분의 언어에 욕설과 나쁜 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젊은 사람들은 이런 식의 거친 말투가 습관화되어 자연스레 자신의 일부가 되고 이후에 나중에 전혀 생각하지 않고도 자동적으로 이러한 언어를 쓰게 되어 몹시 당황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 우리는 매우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가 들여가는 습관에 지금 바로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자신이 영위하는 삶이 어떻게 영향을 끼칠지 중요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합니다. 그리고 규율을 통해 자신이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는지 인식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부정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하면 나중에 그것들을 바꾸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많은 청중 여러분들이 그렇듯이, 젊은 이 시기에 습관이 형성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의 말고삐를 잡고 자신의 행동을 손 안에 두는 것,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통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내가 부정적인 방향으로 가기를 원합니까? 아니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고 싶습니까? “사회와 경제가 이렇기 때문에 나는 내 삶을 통제할 수 없어.”라고 마냥 불평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상황이든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는 내 자신에게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가 최악의 상황에서 살더라도 친절한 사람이 될 수 있고 매우 심술궂고 잔인한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매우 이기적일 수도 있고 다른 모든 사람들과 조화롭게 살려고 노력할 수도 있습니다. 

윤리적 규율은 판별하는 인식을 필요로 합니다 – 무엇이 해롭고 무엇이 도움이 되는지를 아는 것

그래서 불교에서 윤리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것은 “여기에 법이 있습니다. 여기 규칙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것들을 충실히 따라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불교의 접근법이 아닙니다. 우리는 군대에 있는 것처럼 “네! 저는 이 규칙을 따르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불교에서의 윤리는 ‘판별하는 인식’이라고 부르는 것에 기반을 둡니다. 우리는 무엇이 도움이 되고 무엇이 해가 되는지 판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행복하기를 원하고 아무도 불행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불행을 피하기 위해서는 해로운 것을 피하고 자신이나 타인의 행복을 파괴하는 것을 피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행복해지기 원한다면, 자신에게 도움이 되고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만이 이 행성에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목표로 하는 행복의 범위에 대해서 생각할 때, 모두의 행복의 범위를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내가 어떻게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를 물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명한 것은 우리의 노력만으로는 모두를 행복하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양동이의 물은 한 방울씩 채워집니다. 그리고 우리는 양동이에 자신의 물 한 방울을 더할 수 있습니다. 양동이에 어떤 한방울을 더 넣고 싶으십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문제를 일으키는 한 방울입니까? 아니면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한 방울을 더하고 싶으십니까? 비록 이 도움이 단지 긍정적인 삶의 가치를 따르는 아이들을 키우는 것일지라도 이것은 유익한 한 방울입니다. 극적일 필요는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 손에 달려있습니다. 

우리의 가치관

윤리의 다른 토대는 가치관입니다. 우리는 좋은 긍정적인 자질과 그것을 갖춘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누구를 존경합니까? 위대한 범죄자 입니까? 혹은 다른 사람들을 돕는 뛰어난 지도자입니까? 이것은 흥미로운 질문입니다, 그렇죠? 록스타를 존경합니까? 영화배우나 운동선수를 존경합니까? 이 사람들 중 일부는 분명히 인생에서 좋고 유용한 일을 하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니면 예를 들어 달라이 라마 성하와 같은 위대한 영적 지도자를 존경합니까? 

인생에서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입니까? 골대에 공을 차는 것입니까? 아니면 실제로 사람들의 인생을 돕는 일을 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공을 차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는 아주 좋은 것으로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할 수 있지만, 아마 동물이라도 훈련을 하면 골대에 공을 찰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훌륭한 운동선수가 되는 것은 좋은 목표이지만, 동물들이 할 수 없는 일 외에도 자신을 훈련시킬 수 있는 무언가가 더 있을까요? 네, 물론입니다. 우리는 인간이고 엄청난 것들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성과 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할 뿐 아니라 수많은 방식으로 그들을 실제로 도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 물론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은 그들이 긴장을 풀고 진정하도록 돕는 하나의 방법이기 때문에 결코 부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그 이상의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어떻습니까? 우리는 훌륭한 연예인, 훌륭한 운동선수가 되는 동시에 사회에 많은 혜택을 주기 위해 노력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가치관으로 귀결됩니다. 무엇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까요? 다른 사람을 돕는 한 가지 방법은 그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입니다. 누군가 아플 때 돌보는 것 또한 다른 도움의 방법입니다. 다른 사람을 교육하는 것도 그들을 돕는 다른 방법입니다. 만약 제가 성공한 연예인이거나 운동선수라면, 이는 멋진 일입니다. 하지만 돈과 명성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단지 제가 살 수 있는 궁전을 지을 수도, 병원을 짓거나,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기금을 모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가치관에 관련해, 나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궁전에서 사는 것이 더 중요합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을 돕는 것이 더 중요합니까? 

그리고 우리가 자기 자신을 살펴보면, 우리는 아주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고 이 능력들은 모두 사용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스스로를 알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내 능력은 무엇인가? 나의 재능은 무엇인가? 누구나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죠? 요리를 잘 하는 능력과 같이 꼭 특별한 것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내가 어떻게 이런 능력을 사용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이 재능으로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까요?’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가 이 재능을 바로 이 순간에, 맛있는 식사를 만들거나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함으로써 사용할 수 있다면 좋을 것입니다. 그것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좋은 음식을 만드는 등의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면 더욱 좋지 않을까요? 

그래서 이 모든 것은 우리 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 ‘나는 어떤 규율을 가질 것인가? 나는 규율 없이 살 것인가? 아주 적은 규율만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윤리를 바탕으로 한 진정한 자기 규율을 발전시킬 것인가?’ 제가 말했듯이, 이 모든 것은 배려하는 태도, 그리고 물론 주의를 기울이고, 우리의 삶을 통제하고, ‘무엇이 이롭고, 무엇이 해로울 것인가?’를 판별하는 것에, 그리고 행동하는 것에 기반을 둡니다. 자신을 훈련한다는 것은 긍정적인 습관을 쌓아 부정적인 습관을 극복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스리고 ‘나는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가?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있는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의식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그다지 행복하게 하지 않는 수준에서 만족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항상 더 좋아질 수 있습니다. 

더 행복한 길로 이어지는 윤리적인 삶

그러나 우리가 무언가를 더 잘할 수 있다고 말할 때, 그것은 ‘나는 안 된다.’고 자신에 대해 매우 부정적으로 느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윤리적인 삶은 처벌처럼 되어 버립니다. 윤리적인 삶은 처벌이 아닙니다. 윤리적인 삶을 따르는 것이 더 행복해지는 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더 행복해질 수 있도록 돕고, 그것이 우리의 행복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그리고 미래에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는 모두 나에게 달려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학교에 다니는 젊은 학생이든, 어른이든, 노인이든 간에, 우리는 모두 이 길을 따를 수 있습니다. 

질문

이 가치를 발전시키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 가치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자신 안에서 우리가 긍정적인 자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즉, 우리는 몸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과 관련할 수 있고, 직접 행동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의사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음을 가지고 사물을 이해할 수 있고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마음을 가지고 있고 따뜻하고 친절한 감정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것들이 우리가 누구이든 모두가 가진 것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조건들을 가지고 노력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해 나갈지는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자신이 기본적인 조건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이는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으로 이어져 ‘나에게 잘못된 것은 없다. 내가 가진 조건들로 긍정적인 일을 할 수 있다.’라는 일종의 자존감을 얻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자신의 좋은 자질을 평가하고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그것들을 사용할 수 있을까요?

자신의 좋은 자질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는 사실 자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러한 기본적인 자질들을 찾고 싶다면 ‘나는 마음을 가지고, 몸을 가지고 있고, 말할 수 있다.’와 같이 그렇게 멀리 내다볼 필요가 없습니다. 자질을 특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내 인생에서 나는 무엇을 배워왔는가?’라고 자신을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우리는 의심의 여지없이 인생에서 무언가를 배웠습니다. 우리는 걷고 말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아주 기본적인 것들 말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기본적인 자질들을 활용하기 위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갈지는 ‘무엇이 나에게 쉬운 일인가? 내가 쉽게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살펴보면 됩니다. 우리 중에는 수학에는 어려움을 느끼지만 언어를 다루는 것을 잘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과학은 잘하지만 글쓰기에는 소질이 없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나는 무엇을 잘하는가?’라고 자기 자신을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무엇을 즐기는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가?’를 포함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경험하는 것입니다. 내 인생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내 인생을 경험하는 것은 내가 스스로에게 ‘나는 행복해질 것인가? 불행해질 것인가?’를 묻는 것입니다. 이상적으로는 인생에서 자신이 정말 좋아하고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다른 사람들 도울 수 있다면, 그것은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세계적으로 규모가 크고 극적일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좋은 자질을 평가하는 것은 ‘내가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가?’와 ‘내가 지금까지 했던 쉬운 일과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판별하는 것에 달려있습니다. 사람들이 간과하기 쉬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의 좋은 자질은 다른 사람들과 말하기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수줍어하지 않고, 모든 사람과 쉽게 대화를 하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을 편안해 합니다. 우리는 이것이 특별히 훌륭하거나 인상적인 자질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그것은 매우 좋은 자질입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가게에서 일한다고 가정해봅시다. 당신은 ‘그다지 대단한 직업은 아니네요.’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가게에 온 손님들에게 능숙하게 말을 걸고 호의적일 수 있다면 – 부끄러워하지 않고, 로봇처럼 냉담하지 않고 – 그들은 당신을 좋아하고, 가게에 오는 것을 즐기며, 활짝 웃으며 가게를 떠날 것입니다. 그것은 높이 평가 되어야할 좋은 자질입니다. 사람들을 돕기 때문입니다. 

아주 이기적인 사람과 있을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모든 것은 전적으로 이 사람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제가 사는 베를린 지인 중 한 명이 생각납니다. 그녀는 오로지 자신만을 생각하는데 - 실로 자기 중심적이고 자신에 대해서만 끊임없이 이야기하는데 대부분 불평이나 비난 뿐입니다. 점심식사를 함께 하면, 그녀는 자기 방의 새 커튼을 만들기 위한 적당한 천을 찾을 수 없다고 불평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사람을 다룰 수 있을까요? 우선, 그들이 지극히 불행하고 외롭다는 것을 기본적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기본적으로 주목을 받기 위해 누군가를 만나면 끊임없이 말을 이어갑니다. 그녀의 의도는 사람을 불쾌하게 하는 것도, 점심 시간을 지루하게 만드는 것도 아닌, 일종의 주목과 동정심을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는 (그녀가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기에) “이제 그만 불평하고 커튼보다 조금 더 의미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합시다."라는 식으로 그다지 강하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인내심을 수행하고, 마음을 열고 그녀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동정심을 가지는 것인데 이는 그녀를 진정하도록 도울 것입니다. 사실 그렇게 말하거나 비판한다는 것은 그녀 자신이 매우 긴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 이것들은 가장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그들은 불행하고, 매우 긴장하며, 끊임없이 이야기를 함으로써 주목을 받기를 원합니다. 따라서 저는 그들을 진정시키고, 약간의 동정심을 가지고, 인내심을 가지는 것 이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천천히 그들은 당신이 단지 듣고 있는 것만이 아니라 교류하려고 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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