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설명
계율(sdom-pa)은 미세하고 보이지 않는 형태로, 존재하는 마음 연속체(心流) 형상으로 우리의 행동을 형성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는 ‘바람직하지 않은 행위’를 삼가겠다는 약속이며 여기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하나는 본질적으로 파괴적인 행위이며, 두 번째는 목표를 향해 수행 중인 이들을 위해 부처님이 제정하신 금지 행위입니다. 전자의 예로는 살생이 있고, 후자의 예로는 출가수행자들이 정오 이후의 식사가 있는데 이는 밤과 이튿날 아침의 명상 수행의 명료함을 위해 금지된 것입니다.
보리심을 개발하는 두 단계, 즉 발원보리심과 수행보리심 가운데 오직 수행보리심을 성취했을 때만 보살계를 수지하게 됩니다.
[두 보리심의 단계의 차이에 관해, 참고: 서원보리심에 따른 수행행 ]
보살계를 수지한다는 것은 다음의 두 가지 부류의 부정행위를 자제하겠다고 서원하는 것입니다. 이 행위들은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추구하며 중생에게 최대한 이익을 주고자 수행하는 보살들을 위해 금지하신 것입니다:
- 보살의 18가지 근본타락(根本墮)
- 과오된 46가지 행위(過失行)
근본타락이란 전체 보살계의 상실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타락이란 표현은 영적 발전의 쇠퇴를 초래하고 선한 품성의 성장을 방해한다는 점에서 사용됩니다. 근본이라는 말은 이러한 행위가 근절되어야 할 뿌리임을 나타냅니다. 표현의 편의를 위해, 이 두 부류는 일반적으로 보살계의 근본계(根本戒)와 지말계(枝末戒)로 불립니다. 이는 타인을 최대한 청정하고 온전히 이롭게 하고자 할 때 피해야 할 행위들에 대한 훌륭한 지침이 됩니다.
10세기 후반의 인도의 고승 아티샤는 수마뜨라의 수바르나드비파 출신의 스승 법호로부터 이 보살계의 특정 계통을 전수받았으며 이후 이를 티베트에 전승하였습니다. 이 보살계의 전통은 허공장경(虛空藏經)에 기반하며 이는 8세기 인도의 샨티데바가 편찬한 『수학집요(修學集要, Skt. Śikṣāsamuccaya, Tib. bSlabs-btus)』에서 인용되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모든 티베트 불교 전통은 이 계통을 따르며 중국 계통의 대승불교 전통은 이와는 다른 변형된 보살계 전통을 따릅니다.
보살계를 지키겠다는 서원은 단지 현생에 국한되지 않고 미래 생에서도 계속 유효합니다. 그러므로 보살계는 미세한 형태로서 우리의 심류를 따라 다름 생에도 이어집니다. 만약 우리가 과거생에 이 보살계를 받았고 지금 생에서 아직 새롭게 수지하지 않았다면 비록 전타락을 무의식적으로 범하더라도 그것만으로 계를 완전히 상실하지는 않습니다. 반면, 현생에서 처음으로 다시 보살계를 수지한다면 그것은 처음 계를 받았던 그 순간부터 축적되어온 깨달음을 향한 노력의 흐름을 더욱 강화해줍니다. 이러한 이유로 대승불교의 많은 스승들은 보살계를 온전히 지닌채로 임종에 이르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이 계율의 심류상 지속적인 존재는 우리가 다시 계를 새롭게 수지하기 이전의 미래 생에서도 공덕을 지속적으로 쌓는 원동력이 됩니다.
이제 15세기 겔룩파의 창시자인 쫑카파 대사의 보살계 해설서인『보살계의 해설: 보리의 본체와 길』(Byang-chub sems-dpa’i tshul-khrims-kyi rnam-bshad byang-chub gzhung-lam)를 따라 보살계의 근본타락을 이루는 18가지 부정행위를 살펴보겠습니다. 각 항목에는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구체적인 성립 조건들(구사 요건)이 존재합니다.
보살의 18가지 근본 타락
(1) 자신을 찬탄하고 타인을 업신여기는 것
이 타락은 자신보다 상대가 자신보다 열등한 위치에 있을 때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뜻합니다. 동기는 상대방에게서의 이익, 칭찬, 사랑, 존경 등을 얻고자 하는 욕망이나 깎아내리려는 질투심을 포함합니다. 우리의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불교도임을 앞세워 홍보하는 전문가들은 특히 이 타락을 범하지 않도록 특히 주의해야 합니다.
(2) 법이나 재물을 나누지 않는 것
여기서 동기는 집착과 인색함에 근거합니다. 이 부정적인 행위는 우리의 물질적인 것을 소유하는 것 뿐만 아니라 우리의 시간을 아끼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기를 거부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3) 다른 이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거나 폭행을 가하는 것
이 두 가지는 모두 분노를 동기로 합니다. 첫 번째는 누군가에게 고함을 지르거나 폭력을 행사했을 때 그 사람이 직접 용서를 구하거나 제 3자가 그만두도록 애원하는데도 우리가 거절하는 경우이며, 후자는 단순히 누군가를 때리는 것입니다. 가끔 아이들이나 반려동물이 도로에 뛰어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가볍게 칠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노에서 비롯된 훈육은 결코 적절하거나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4) 대승의 가르침을 버리고 스스로 만든 가르침을 전파하는 것
이는 보살의 윤리적 행위에 관한 올바른 대승 가르침을 거부하고, 그 대신 그럴듯 한 오도된 가르침을 만들어 진짜인 양 가르치며 추종자를 얻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교사가 유망한 학생들이 겁먹지 않도록 어떤 행위도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에서는 허용된다고 관대하게 해석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우리는 교사가 아니더라도 일상 대화에서 이런 타락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5) 삼보에 바쳐진 보시물을 가로채는 것
이는 부처님, 법, 승가에 보시되었거나 속한 것을 직접적이든, 다른 사람을 통해서든 횡령하거나 자신의 것으로 여겨 사용하는 행위입니다. 여기서 승가는 네 명 이상의 비구 또는 비구니로 구성된 집단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불탑 건축 기금이나 법문 인쇄 기금, 승려 공양을 위한 음식 등을 유용하는 경우입니다.
(6) 성스러운 법을 저버리는 것
이 타락은 성문(聲聞), 연각(緣覺), 보살승(菩薩乘)의 경전 가르침이 부처님의 말씀임을 부정하거나, 다른 이로 하여금 그렇게 믿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성문은 부처님의 현존 당시 가르침을 직접 듣고 수행하는 이들이며, 연각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더 이상 직접적으로 전해지지 않는 암흑기에도 자력으로 깨달음을 얻는 수행자들입니다. 이들은 전생의 수행과 공부를 바탕으로 한 직관적 이해를 통해 영적 성장을 이룹니다. 성문과 연각을 위한 가르침은 일반적으로 소승(小乘)이라 불리며, 이는 개인의 해탈을 목표로 하는 ‘소박한 수레’입니다. 반면 대승(大乘)은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기 위한 방편을 중시합니다. 소승이든, 대승이든 그 경전들이 부처님의 설법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것은 근본적인 타락에 해당합니다.
이 계율을 지킨다고 해서 역사적 관점을 포기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수세기 동안 구전으로 전해지다가 뒤늦게 문자화되었기 때문에 왜곡이나 위작의 가능성도 인정됩니다. 티베트 불교의 대경전을 편찬한 위대한 대덕들도 진정성이 없다고 판단한 문헌은 배제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판단 기준은 편견이 아니라 7세기 논리학자 디르마키르티의 기준을 따랐습니다. 즉, 어떤 가르침이 더 나은 환생, 해탈, 또는 깨달음이라는 불교적 목적을 성취하는 데 실제로 도움이 되는가를 기준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불교 경전들 사이, 혹은 하나의 경전 내에서도 문체가 서로 다른 경우가 있는데, 이는 가르침이 기록되거나 번역된 시기와 언어의 차이를 반영합니다. 따라서 경전에 대한 현대적인 문헌 비평이나 분석을 통해 공부하는 것은 오히려 유익하며 이 계율을 어기는 것이 아닙니다.
(7) 출가 수행자들 환속시키거나 그들의 가사를 훔치는 등의 행위
이 타락은 수행자의 도덕 수준이나 수행 단계에 상관없이 한 명, 두 명 또는 세명의 비구나 비구니에게 해를 가하는 구체적인 행위를 뜻합니다. 이에는 악의나 증오심이 동반되어야 하며 구타하거나 언어폭력을 가하는 것, 그들의 소유물을 압수하는 것, 또는 그들을 사찰에서 내쫓는 것 등이 포함됩니다. 다만, 수행자가 다음 네 가지 주요 계율 중 하나를 어긴 경우에는 환속을 명하는 것이 타락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그 네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살생, 특히 사람을 죽이는 것; 절도, 특히 승가의 재산을 훔치는 것; 거짓말, 특히 수행의 성취를 속이는 것; 완전한 청정을 유지하지 않는 것 (즉, 음욕 행위)
(8) 다섯 가지 극악무도한 죄를 짓는 것
다섯 가지 극악무도한 죄는 다음과 같습니다. (a) 아버지를 살해하는 것, (b) 어머니를 살해하는 것, (c) 아라한을 살해하는 것, (d) 악의적인 의도로 부처님께 상해를 입혀 피를 흘리게 하는 것, (e) 승가의 분열을 야기하는 것. 마지막 항목인 승가 분열은 부처님의 가르침과 승가 제도를 부정하고 스스로 새로운 종교와 승단을 세워 기존의 수행자들을 거기로 끌어들이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이는 어떤 단체나 법회에서, 특히 그 조직이나 지도자가 부패했기 때문에 떠나지만 여전히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다른 수행 공동체를 새로 설립하는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또한, 여기서 말하는 승가는 전통적인 의미의 출가 수행자 공동체를 가리키며 서양 불교권에서 사용하는 비전통적인 용례, 즉 어떤 법당이나 법회에 속한 재가 신자들의 모임을 지칭하는 ‘승가’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9) 왜곡되고 적대적인 관점을 가지는 것
이 타락은 올바르고 유익한 진리를 부정하고 그것에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업과 과보의 법칙(행위의 인과), 삶의 올바른 방향 설정, 윤회와 그로부터의 해탈 등이 그러한 진리들입니다. 이러한 진리를 받아들이고 따르려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적대적인 태도를 갖는 것이 포함됩니다.
(10) 마을과 같은 장소를 파괴하는 것
이 타락은 고의적으로 마을, 도시, 지역 또는 시골 지역의 환경을 파괴하거나, 폭파하거나, 심각하게 훼손하여 인간이나 동물의 거주에 적합하지 않게 만들거나, 해롭게 하거나, 거주 자체를 어렵게 만드는 행위를 포함합니다.
(11) 공의 가르침을 준비되지 않는 이에게 설하는 것
이 타락은 보리심의 동기를 가진 이들 중 아직 공성의 가르침을 이해할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것을 가르치는 경우입니다. 그들은 이 가르침으로 인해 혼란스럽거나 두려워하여 보살의 길을 포기하고 개인의 해탈만을 추구하는 소승의 길로 전향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모든 현상이 본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들었을 때 “그렇다면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데 왜 나는 남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가?”라고 생각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공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에게 이를 가르쳐 “불교는 세상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니 말도 안 된다”고 여겨 법 전체를 포기하게 되는 경우도 포함됩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이 공성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이해할 준비가 되었는지를 초감각적인 인식 없이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이 가르침은 점진적인 설명을 통해 이끌고, 그들의 이해도를 주기적으로 확인하는 방식으로 인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2) 타인을 완전한 깨달음에서 돌아서게 하는 것
이 타락의 대상은 이미 보리심을 발한 수행자들로 깨달음을 향해 정진하고 있는 이들입니다. 이들에게 “자비나 인내 같은 덕목을 늘 실천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부처가 되는 것은 애초에 무리다. 차라리 자신의 해탈만을 목표로 삼는 것이 낫다”고 말하는 것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이 목표를 완전한 깨달음에서 개인의 해탈로 바꾸지 않는다면 이 근본 타락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13) 개별 해탈 계율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
소탈 율의는 재가 남자, 재가 여자, 견습 비구니, 사미, 사미니 및 비구니 등 각 신분에 따른 개별 해탈 계율을 의미합니다. 이 타락은 이러한 소탈 율의 중 하나를 지키고 있는 사람에게, “보살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계율을 지킬 필요가 없다. 보살의 모든 행위는 본래 청정하므로 계율은 무의미하다”고 말하여 그들이 실제로 그 계율을 포기하게 만드는 경우입니다. 실제로 계율을 버릴 때에만 이 타락은 완성됩니다.
(14) 성문승을 경시하는 것
여섯 번째 근본 타락은 성문승이나 연각승의 경전이 부처님의 진실한 말씀이라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타락은 이들이 부처님의 말씀임은 인정하되, 그 가르침의 실효성을 부정하고 “관찰 명상과 같은 수행법을 통해서는 번뇌와 애착을 근본적으로 제거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경우입니다.
(15) 공성에 대한 거짓된 체험을 주장하는 것
이 타락은 자신이 아직 공성의 실상을 완전히 통달하지 못했음에도 질투심 등으로 인해 마치 이미 체득한 것처럼 가르치거나 글을 쓰는 경우입니다. 이때 타인이 그 주장을 믿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듣거나 읽는 이들이 그 설명을 실제로 이해하지 못하면 이 타락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이 계율은 공성에 대한 거짓된 체험을 주장하는 것에 국한되지만, 보리심이나 다른 가르침을 전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진실해야 함은 분명합니다. 다만, 공성에 대해 완전히 깨닫지 못했더라도 자신의 이해 수준이 아직 잠정적인 것임을 솔직히 밝힌 상태에서 설명한다면, 이는 계율을 어기는 것이 아닙니다.
(16) 삼보로부터 도난당한 것을 받는 것
이 타락은 누군가가 직접 또는 대리인을 통해 부처님, 법, 승가로부터 훔치거나 횡령한 물건을 선물, 공양, 보수, 포상, 벌금, 또는 뇌물의 형태로 받는 경우입니다. 여기서 승가의 재산은 비록 한 명, 두 명, 또는 세 명의 비구나 비구니에게만 속한 것이라 하더라도 포함됩니다.
(17) 부당한 기준을 세우는 것
이 타락은 수행력이 뛰어난 사람들에게는 분노나 악의로 인해 편견을 가지며, 반대로 수행이 부족하거나 전혀 수행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집착심으로 호의를 보이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법을 전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진지하게 수행하는 가난한 제자들을 소흘히 하고, 수업료를 많이 지불할 수 있는 사적인 학생들에게만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이에 해당합니다.
(18) 보리심을 포기하는 것
이 타락은 모든 중생을 위해 깨달음을 성취하겠다는 원력, 즉 보리심을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보리심은 원보리심과 행보리심의 두 단계로 나뉘는데, 여기서는 원보리심을 포기하는 경우를 말하며, 그것은 자동적으로 행보리심의 포기 또한 의미합니다.
(19) 남을 조롱하거나 비웃는 말이나 시로 깎아내리는 것
이 타락은 때때로 열아홉 번째 보살계 타락으로 분류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첫 번째 보살계 근본 타락안에 포함된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계율 유지하기
사람들이 서원을 알게 되면 그것이 지키기 어렵다고 느끼고, 서약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서원의 본질을 명확히 이해함으로써 이러한 두려움을 피할 수 있습니다. 서원을 설명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서원이란 특정한 부정적 행위를 자제하기 위해 삶에 대해 취하는 마음가짐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서원이란 우리 삶에 부여하는 미묘한 형태 혹은 구조라는 설명입니다. 어느 경우든 서원을 지키는 데는 정념, 현관, 자제력이 필요합니다. 정념이란 매일의 삶 속에서 서원을 항상 마음에 간직하는 것이고, 현관은 우리의 행위가 서원에 부합하는지를 살피는 것이며, 자제력은 서원을 어겼거나 어기려는 징후가 나타날 때 이를 알아차리고 멈추는 힘입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우리는 삶에 윤리적인 구조를 부여하고 이를 유지합니다.
서원을 지키고 이에 대한 정념을 유지하는 것은 결코 낯설거나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운전을 할 때 우리는 사고를 줄이고 안전을 높이기 위해 일정한 규칙을 따르기로 동의합니다. 속도를 줄이고 차선을 지키는 등의 규칙은 우리의 운전방식을 형성하며 목적지에 이르는 가장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방법이 됩니다. 경험이 쌓이면 이러한 규칙을 따르는 것이 자연스러워져 정념을 유지하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게 됩니다. 보살계나 그 외 다른 윤리적 서원을 지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살계를 상실하게 되는 네 가지 결합요인
우리가 보살계를 완전히 상실하게 되는 경우는 보살의 삶의 형상을 완전히 포기하거나 이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중단할 때 입니다. 이를 근본적인 타락이라 부릅니다. 이런 경우, 보살의 윤리적 구조를 되찾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가짐을 다시 정비하고 자비와 사랑에 대한 명상과 같은 참회 수행을 통해 서원을 다시 받아야 합니다. 보살계의 18가지 근본타락 가운데, 제 9조나 제 18조에 해당하는 왜곡되고 적대적인 태도(사견, 邪見)를 갖거나 보리심을 포기하는 마음 상태가 되면, 그 마음 상태 자체로 인해 보살의 삶의 윤리적 구조가 사라지며 그것을 유지하려는 모든 노력이 멈추게 됩니다. 그 결과 우리는 단순히 그 조항 하나만이 아니라, 보살계를 전부 상실하게 됩니다.
그 외의 16가지 보살계 조항을 어기는 경우 다음에 설명할 네 가지 결합요인이 함께하지 않는다면 이를 어겼다 해도 서원을 완전히 상실한 것은 아닙니다. 이 네 가지 요인은 서원을 어기기로 마음먹은 직후부터 실제 행동이 끝난 직후까지 지속적으로 함께 존재해야 근본적인 타락이 성립합니다.
네 가지 결합요인:
- 그 행위를 잘못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이로움을 보며 후회 없이 행함.
- 이 행위를 이전부터 습관적으로 해왔고, 앞으로도 멈출 생각이나 의지가 없음.
- 그 행위 자체를 기쁘게 여기며 즐거운 마음으로 행함.
- 도덕적 자존심(무참)과 체면심(무괴)이 없어 자신의 행동이 스승이나 부모, 나아가 불교 전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아무런 고려가 없으며 그 행위로 인한 손상을 복구하려는 의지도 없음.
이러한 네 가지 태도가 열여섯 가지 보살계 중 어떤 서원의 위반에도 동반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에 보살계가 형성해 준 윤리적 형태는 여전히 유지되며, 그것을 유지하려는 노력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단지 그것들이 약해졌을 뿐입니다. 이 열여섯 가지 서원에 있어서는 단순히 어기는 것과 그것을 상실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누군가가 책을 빌려달라고 요청했을 때 우리는 그 책에 대한 집착과 인색함 때문에 책을 빌려주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행동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사람이 책에 커피를 쏟거나, 안 돌려 줄 수도 있잖아”라고 생각합니다. 이전에도 책을 빌려준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계획이 없습니다. 오히려 거절할 때 그 결정에 대해 만족감을 느낍니다. 도덕적 자존심이 없기 때문에 거절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거절이 우리 자신에게 어떤 인상을 주는지, 또는 우리가 모든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기를 바라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가지고 있는 지식의 원천을 나누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체면심도 없어 이 거절이 우리의 스승들이나 불교 전반에 어떤 인상을 줄지에 대해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이기적인 행동을 보상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습니다.
이러한 모든 태도가 동반되어 책을 빌려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보살의 삶의 형상을 명백히 상실한 것입니다. 대승수행에서 완전히 타락하였으며 보살계를 모두 상실한 것입니다. 반면, 이 중 일부 태도만 갖고 있는 경우, 즉 모든 조건을 충족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단지 보살의 삶의 형상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약화된 것일 뿐입니다. 보살계는 여전히 유지되며, 다만 그 힘이 약해진 상태인 것입니다.
서원의 약화
열여섯 가지 보살계 조항 중 하나를 어기더라도 네 가지 결합요인이 하나도 없으면 보살계는 실제로 약화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책을 빌려달라고 했을 때, 우리는 책을 빌려주지 않지만 그것이 근본적으로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을 습관적인 정책으로 삼을 생각도 없고, 거절하면서 마음이 불편하며, 우리의 행동이 자신이나 스승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걱정합니다. 또한 정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스스로에게 그 책이 급히 필요하거나 이미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기로 약속한 경우입니다. 우리의 동기는 집착이나 인색함이 아닙니다. 우리는 책을 빌려줄 수 없는 상황에 대해 미안하다는 말과 설명을 덧붙이고, 가능하다면 노트나 요약본을 공유하겠다고 제안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보살의 삶의 형상을 완전히 유지하게 됩니다.
하지만 점차 집착과 인색함에 영향을 받게 되면 우리의 보살계는 서서히 약화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지식이나 법을 나누지 않겠다는 서원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우리 안의 집착이나 인색함을 없애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책을 빌려주거나 혹은 급한 이유로 빌려주지 않더라도, 여전히 그 책에 집착하고 인색한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서원은 이러한 번뇌를 극복하고 해탈에 이르기 위한 수행의 틀로서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번뇌가 강할수록, 우리가 그것을 억제하고 자제력을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려워집니다.
점점 집착과 인색함에 지배당하면 보살계도 점점 더 약화됩니다. 예를 들어, 책을 빌려주지 않으면서도 그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결합요인 중 하나, 둘, 혹은 셋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서원의 ‘경미한 타락’, ‘중간 타락’ 또는 ‘심각한 타락’으로 분류됩니다. 예를 들어, 책을 빌려주지 않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것이 자신의 정책이며 예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태도에 대해 미안함을 느끼고, 자신과 스승에게 누가 된다고 생각한다면 아직 보살의 삶의 형상이 심하게 약화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더해 그 정책에 만족감을 느끼고, 다른 사람들이 자기나 스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신경 쓰지 않는다면, 우리는 점점 더 집착과 인색함에 지배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보살계의 윤리적 형상이 더욱 약해지는 경우는 거절 자체를 잘못이라고 여기지 않기 시작할 때입니다. 이것이 중간 수준의 경미한 타락입니다. 여기에 결합요인 하나나 둘이 더해지면 중간 수준의 심각한 타락이나 심각한 타락에 이르게 됩니다. 결국 네 가지 결합요인 모두가 함께할 경우 근본적인 타락이 발생하며 보살계를 완전히 상실하게 됩니다. 이 경우, 우리는 완전히 집착과 인색함의 지배를 받고 있으며 그것들을 극복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보리심의 유정위(有情位)를 포기한 것이며 이 단계의 보살계를 잃은 것입니다.
약화된 서원 회복하기
약화되었거나 상실된 보살계를 회복하는 첫 번째 단계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참회 수행입니다. 이 수행은 다른 사람에게 고백하거나 부처님께 용서를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과의 정직한 대면, 그리고 서원에 대한 헌신의 재확인입니다. 우리가 실제로 서원을 어기면서 그것이 잘못임을 느꼈다면, 이제는 그 잘못을 다시 한 번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음의 네 가지 대치력을 개발해야 합니다.
- 그 행위에 대해 후회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 후회는 죄책감과는 다릅니다. 후회란 “그 행위를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이라고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는 행위에 대해 기뻐하거나 즐거워하는 것의 반대입니다. 반면, 죄책감은 “내가 한 행동은 정말 나쁜 것이었고 나는 나쁜 사람이다”라는 고정되고 부정적인 자기 정체감에 빠지는 것입니다. 이는 도움이 되지 않으며 적절한 태도도 아닙니다. 예를 들어, 잘못된 음식을 먹고 탈이 났을 때 그것을 후회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음식을 먹은 우리가 본질적으로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행위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하지만, 그것 때문에 자기 가치를 잃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 우리가 서원을 어길 때 이미 그런 의도를 가졌을 수 있지만 그 결심을 다시 한 번 명확히 합니다.
- 우리의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 이는 삶에서 우리가 의지하는 긍정적인 방향을 다시 확고히 하고 모든 존재의 이익을 위해 깨달음을 이루겠다는 마음, 즉 보리심을 다시 굳건히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우리의 위반을 보상하기 위한 보완 행위를 하는 것. 이러한 행위에는 사랑과 자비의 명상, 불친절한 행동에 대한 사과, 기타 긍정적인 행동들이 포함됩니다. 이러한 건설적인 행위는 도덕적 자존심과 스승 등에 대한 존중심을 필요로 하며, 이는 우리가 위반을 저지를 때 가졌을 수 있는 무시나 무관심을 반대하는 힘들 발휘합니다. 비록 우리가 그 당시 부끄러움을 느꼈다 하더라도, 이러한 긍정적인 행위는 우리의 자존감과 다른 이들이 스승을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한 배려심을 강화해 줍니다.
맺음말
이러한 내용을 통해 보살계는 사실 완전히 상실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서원을 존중하고 그것을 지침으로 삼아 지키려는 노력을 지속하는 한 우리는 실제로 서원을 상실하지 않습니다. 이는 네 가지 구속 요인이 모두 충족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입니다. 또한, 왜곡된 적대적인 태도를 갖거나 보리심을 포기하는 경우에도 우리가 그 실수를 인정하고, 후회 등 적대 요인을 일으키며 서원을 다시 수계한다면 우리는 보살계를 회복하고 수행을 계속 이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원을 할지 말지를 결정할 때는 그것을 완벽하게 지킬 수 있는가보다는 지침으로 삼아 지속적인 노력을 유지할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삼는 것이 더 합리적입니다. 물론 서원을 약화시키거나 상실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다리가 부러졌을 때 다시 걸을 수는 있지만 절뚝거릴 수도 있는 것과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