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차적 보살계

서론

부차적 보살계는 46가지 과실행(過失行)을 삼가는 것입니다. 이 과실행들은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의 육바라밀 수행과 중생을 이롭게 하는 데 해로운 7가지 범주로 나뉘어 있습니다. 

육바라밀, 즉 여섯 가지 보살의 수행 항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보시(布施)
  2. 지계(持戒)
  3. 인욕(忍辱)
  4. 정진(精進)
  5. 선정(禪定)
  6. 반야(般若)

이러한 과실행들은 깨달음을 향한 우리의 진보를 방해하며 수행을 퇴보시키지만, 네 가지 결합 요인이 모두 갖추어진 경우라도 보살계를 완전히 상실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네 가지 요인이 얼마나 덜 갖추어졌느냐에 따라 보살도 수행에 끼치는 해로움도 그만큼 줄어듭니다. 만약 이 46가지 과실행 중 어떤 잘못을 저질렀다면 우리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근본 보살계에서 설명되는 네 가지 대치력을 적용하여 정화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고: 보살의 근본 계율]

이 46가지 과실행에는 배워야 할 세부 사항이 많으며, 경우에 따라 그 행위를 해도 잘못이 되지 않는 예외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러한 과실행들이 육바라밀의 발전을 위한 수행과 타인에게 끼치는 해로움은 그 행위의 동기에 따라 결정됩니다. 그 동기가 집착, 분노, 악의, 교만과 같은 번뇌의 상태였다면 무관심이나 게으름, 건망증처럼 겉보기엔 덜하지만 여전히 해로운 동기에서 비롯된 경우보다 훨씬 큰 손해를 일으킵니다. 무관심의 경우, 우리는 그 수행에 참여할 만큼의 충분한 믿음이나 존중이 없기 때문에 애초에 시도하려 하지 않습니다. 게으를 경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쉽고 편하다고 느껴서 수행을 회피하게 됩니다. 건망증이 있을 경우, 우리는 타인을 돕겠다는 서원 자체를 완전히 잊게 됩니다. 이 46가지 과실행 중 많은 항목에서 우리가 그러한 행위를 장차 버릴 의지가 있고, 아직 번뇌와 해로운 습관이 너무 강해서 자제력이 부족한 경우에는 과실을 범한 것으로 간주되지 않습니다. 

여기서의 설명은 15세기 겔룩파의 쫑카파 대사의 저작『보살계의 해설: 깨달음으로 이끄는 근본 가르침의 길』(Byang-chub sems-dpa’i tshul-khrims-kyi rnam-bshad byang-chub gzhung-lam) 을 바탕으로 합니다. 

보시 바라밀 수행에 해로운 일곱 가지 과실행

보시란 기꺼이 주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물질적인 것을 나누려는 것, 두려운 상황에서 보호해 주는 것, 그리고 가르침을 주는 것이 포합됩니다. 보시심의 발전을 저해하는 일곱 가지 과실행이 있는데 두 가지는 타인에게 물질을 베풀려는 마음을 해치고, 두 가지는 두려운 상황에서 타인을 지켜 주려는 마음을 해치며, 두 가지는 타인으로 하여금 보시를 닦고 실천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하지 않는 것이고, 나머지 한 가지는 가르침을 주는 보시의 발전을 해치는 것입니다. 

타인에게 물질을 베풀려는 의지 발전에 해로운 두 가지 과실행

(1) 몸, 말, 마음의 세 문을 통해 삼보에 공양하지 않는 것

짜증이 난다거나, 게으르거나, 무관심하거나 혹은 단순히 잊어버렸기 때문에 하루에 세 번 아침, 저녁으로 삼보에게 최소한 몸으로 절하고, 말로 찬탄하며, 마음으로 그 공덕을 기억하며 공양을 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만일 하루 밤낮으로 삼보에 기쁜 마음으로 공양하는 것조차 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모든 것을 모든 중생에게 기꺼이 베푸는 마음을 완성할 수 있겠습니까?

(2) 탐욕스러운 마음을 따르는 것

큰 욕망,집착, 부족함 때문에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인 보는 것, 듣는 것, 냄새, 맛, 촉감에 탐닉하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배고프지 않은데도 맛있는 음식에 집착하여 냉장고에 있는 케이크를 조금씩 먹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인색함과의 싸움을 해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곧 케이크를 숨기고, 선반 뒤쪽 어두운 곳에 감추거나 하며 다른 이들과 나누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만약 이 나쁜 습관을 극복하려는 의도가 온전하지만, 음식에 대한 집착이 너무 강해서 아직 조절할 수 없다면 케이크를 먹는 것만으로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조절력을 키우기 위해 더 작은 조각을 덜 자주 먹는 것 등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두려운 상황에서 타인을 보호하려는 의지의 발전에 해로운 두 가지 과실행 

(3) 연장자들을 공경하지 않음

이 행위의 대상에는 부모님, 스승, 훌륭한 자질을 가진 이들, 그리고 일반적으로 나이가 많거나 연장자인 모든 이들이 포함됩니다.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하지 않거나, 공항에 마중 나가지 않거나, 무거운 짐을 들어드리지 않는 행위를 오만, 분노, 악의, 게으름, 무관심, 혹은 단순한 건망증으로 인해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들을 견디기 어려운 불안하고 두려운 상황에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4) 질문하는 사람에게 답변하지 않는 것

교만, 분노, 악의, 게으름, 무관심, 망각 때문에 다른 이가 진지하게 묻는 질문에 기꺼이 대답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을 무시하여 우리는 그들을 돌볼 이 없고 기댈 곳 없는 두렵고 불안한 상태에 방치하게 됩니다.

이러한 서원들에 대한 쫑카파 대사의 주석에서 볼 수 있는 세세한 설명의 예로서 우리가 침묵을 하거나 대답을 미루는 것이 허물이 되지 않는 예외 상황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 자신이 그 행위의 주체인 경우로서 우리가 너무 아프거나, 질문자가 일부러 한밤중에 우리를 깨운 경우 긴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몸이 나아질 때나 다음 날 아침까지 기다려 달라고 말하는 데에는 허물이 없습니다. 

상황에 따른 예외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설하거나, 강연을 하거나, 의식을 접전하거나, 다른 이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있거나, 수업을 받고 있거나, 설법을 듣고 있는 도중에 누군가가 질문으로 우리를 방해할 경우 우리는 정중하게 질문을 나중으로 미뤄 달라고 요청할 수 있습니다.

또한 어떤 상황들은 본질적으로 침묵이나 대답을 미루는 것을 요구합니다. 예를 들어, 서구에서 불교에 대한 공개 강연을 하고 있는 자리에서 지옥에 대한 질문에 깊이 있게 대답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불쾌해하여 그들의 법에 대한 관심을 방해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에는 침묵이 더 바람직합니다. 또한 우리의 인종적 배경에 대한 질문이 편견에 찬 사람의 물음일 경우에는 우리가 대답함으로써 그 사람이 우리를 싫어하게 되어 우리가 그를 돕는 데 마음을 닫게 된다면 침묵이 더 낫습니다. 또는 누군가가 파괴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데 우리가 침묵하여 그 행동을 멈춰 보다 건설적인 태도로 전환하게 된다면 이 또한 침묵이 더 나은 경우라 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이들이 우리에게 심리적으로 의존하여 자신의 삶의 모든 질문에 대답해 주기를 바라는 경우에는 우리가 침묵함으로써 그들이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배우도록 돕고자 할 때에도 침묵이 더 낫습니다. 

더불어, 우리가 침묵의 규율이 있는 명상 수행 중일 때 누군가가 질문을 한다면 꼭 대답할 필요는 없습니다. 강연이 끝난 후의 문답 시간에 청중이 피곤해 하거나 시간이 너무 늦어 계속해서 문답을 이어감으로써 청중의 분노나 반감을 초래하게 된다면 문답을 마무리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타인이 보시를 닦고 실천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지 않는 두 가지 과실행

(5) 초대받았을 때 응하지 않는 것

교만, 분노, 양심, 게으름, 무관심 등의 이유로 방문이나 식사 초대를 거절하는 경우, 우리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보시를 베풂으로써 선업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게 됩니다.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한, 그 집이 아무리 소박하더라도 우리는 초대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6) 물질적 보시를 받지 않는 것

이 역시 앞선 경우와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가르침을 베푸는 보시의 발전에 해로운 한 가지 과실행

(7) 가르침을 배우고자 하는 이들에게 법을 주지 않는 것 

여기에서 불교 가르침을 가르치기를 거부하거나, 법서를 빌려주지 않거나, 노트를 공유하지 않는 등의 동기는 분노, 양심, 상대가 언젠가 나를 능가할 것이라는 생각의 질투, 게으름, 혹은 무관심입니다. 보살계의 제2근본계의 경우에는 집착과 인색함 때문에 거절하게 됩니다. 

지계바라밀 수행을 해치는 아홉 가지 과실행

지계바라밀은 해로운 행위를 삼가려는 마음가짐일 뿐 아니라, 선업에 참여하고 타인을 돕고자 하는 자제력을 포함합니다.

이러한 지계바라밀의 성숙을 방해하는 아홉 가지 과실행 가운데, 네 가지는 주로 타인에 대한 배려가 중심이 되는 상황, 세 가지는 자신의 상황과 관련된 것이며, 두 가지는 자신과 타인 모두에 관련됩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중심이 되는 네 가지 과실행

(1) 계율을 어긴 이들을 무시하는 것

분노, 양심, 게으름, 무관심, 또는 망각으로 인해 계율을 파괴했거나 극악한 죄를 지은 이들을 무시하거나, 멸시하거나, 비난하는 경우, 우리는 긍정적인 행위를 실천하고 타인을 돕고자 하는 지계바라밀을 약화시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이미 현재와 미래의 고통과 불행의 원인을 조성했기 때문에 특히 우리의 연민과 관심이 필요합니다. 도덕적 우월감이나 분노심 없이, 예를 들어 감옥에 있는 죄수 중 명상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에게 가르침을 전하는 식으로 우리는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2) 타인의 신심을 위해 지계바라밀을 실천하지 않는 것

부처님께서는 본성적으로 악한 것은 아닐지라도 수행에 해로운 행위들을 금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재가자와 출가자 모두에게 술을 마시는 것을 금하셨고 출가자가 이성과 함께 방을 사용하는 것도 금하셨습니다. 이러한 행위들을 삼가는 것은 상좌부 불교 수행자와 보살이 공통적으로 실천하는 계율입니다. 그러나 초심 보살의 입장에서 부처님의 이러한 윤리적 가르침을 존중하거나 믿는 마음이 부족하거나, 자제심을 기르려는 노력 없이 게으름으로 이런 행위들을 무시한다면, 우리의 언행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불교와 불자에 대한 신심과 존경심을 잃게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타인에게 주는 인상을 고려하여 가령 기호성 약물 사용이나 사회적 물의가 될 수 있는 행동들을 삼가야 합니다.

(3) 타인의 복지를 두고 인색하게 구는 것 

부처님께서는 출가자의 행동을 훈련시키기 위해 다양한 세세한 규칙들을 제정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잠을 잘 때 반드시 세 벌의 가사를 갖추고 있도록 하셨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타인을 위한 필요가 이러한 소소한 계율의 실천보다 더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예컨대 누군가 병이 들어 밤새 간호해야 할 상황이라면 그 사람을 돕기 위해 그곳에 머무는 것이 더 중요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 사람에 대한 분노나 악의, 혹은 단지 밤샘을 피하고 싶다는 게으름 때문에 ‘세 벌의 가사가 없으니 머물 수 없다’며 돕지 않는다면, 이는 과실행을 범하는 것입니다. 규칙에 대해 융통성 없이 집착하는 태도는 균형 잡힌 윤리적 자제력의 발전을 방해합니다.

(4) 자비와 연민이 요구될 때 파괴적 행위를 하지 않는 것 

가끔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타인의 안녕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고, 그 고통을 막을 다른 방법이 전혀 남아있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에는 일곱 가지 신체적, 언어적 파괴 행위 가운데 하나를 실행하는 것 외에는 비극을 피할 길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일곱 가지는 살생, 도둑질, 사음, 거짓말, 이간질, 욕설, 쓸데없는 말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행위를 할 때, 분노나 욕망, 무지 등 어떤 번뇌도 없이 오직 타인의 고통을 막고자 하는 자비심만을 동기로 삼으며 그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어떤 부정적인 결과 - 심지어 지옥과 같은 고통이라 할지라도 - 기꺼이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이는 우리의 지계바라밀을 해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는 수행을 가속화시키는 커다란 공덕을 쌓는 행위가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도, 이러한 파괴적 행위를 하지 않은 것이 과실이 되는 것은 오직 보살계를 수지하고 그것을 순수하게 지키고 있는 경우에 한합니다. 타인을 위한 자신의 행복의 희생을 주저하는 마음은 ‘언제나 중생을 돕겠다’는 보살도의 윤리적 자제력을 성취하는 데 장애가 됩니다. 만약 우리가 아직 깊은 자비심을 갖추지 못했거나, 보살계를 받지 않았고, 그에 따른 실천을 훈련하고 있지 않다면, 이러한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 과실이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비심이 약한 상태에서는 그로 인해 생긴 고통이 오히려 수행을 후회하게 만들고, 심지어 중생을 위한 길 자체를 포기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초기 단계의 보살이 높은 단계 보살의 수행 - 예컨대 굶주린 암사자에게 자신의 살을 내어주는 실천 - 을 무리하게 되면, 자신도 해치고 남도 돕지 못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보살행은 신중히 삼가야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경우에 보살행으로서 파괴적 행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혼란을 줄이기 위해 주석 문헌에서 제시한 몇 가지 예를 살펴보겠습니다. 다만 이 모든 예시들은 다른 모든 방법이 실패했을 때 마지막 수단으로서만 허용되는 것임을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보살로서 우리는 대량 살인을 저지르려는 사람의 생명을 끊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전쟁 지역의 구호를 위한 약품을 훔쳐 암시장에 팔려는 사람에게서 그 약품을 빼앗는 것 또한 주저하지 않습니다. 자선 기금을 낭비하거나 잘못 관리하는 사람에게서 그 자금을 회수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남성 보살 수행자라면, 상대가 유부녀이거나, 미혼이지만 부모의 반대가 있거나, 그 외의 어떤 부적절한 상대일지라도, 그 여성이 보리심을 일으키려는 강한 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우리에 대한 강한 성적 욕망에 휘둘려 그것이 충족되지 않은 채 죽게 되면 그 원한이 업의 형태로 남아 다음 생에서도 보살과 보살행에 대해 깊은 적의를 품게 될 상황이라면, 우리는 그러한 부적절한 성행위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보살이 이러한 자비에서 비롯된 부적절한 성행위를 감내할 수 있다는 점은, 보살도를 따르는 부부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줍니다. 예를 들어, 부부 중 한명(예컨대 아내)이 법에 귀의하여 독신 수행을 하고자 하여 남편과의 성관계를 거부하게 되었을 때, 남편은 여전히 성적 집착이 남아 이 거절을 개인적인 부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 때 아내의 융통성 없는 태도가 남편으로 하여금 불교 자체에 대해 원망을 가지게 하고, 결국 결혼도 신앙도 포기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아내가 보살계를 수지하고 있다면 자신의 자비심이 충분히 깊고 안정되어 간헐적인 성관계를 맺는 것이 수행에 해가 되지 않는지를 잘 살펴야 합니다. 이는 금강승에서 강조되는 청정한 성행 서약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또한 보살로서 우리는 타인의 생명을 구하거나 고문, 학대 등을 막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자녀가 해로운 친구들과 어울리고 있다면 그 관계를 끊기 위해 분별 있는 이간의 말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혹은 제자가 잘못된 스승에게 휘둘리고 있다면, 그로부터 떨어지게 하기 위한 방편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자녀가 공부를 하지 않거나 바람직하지 않은 길로 가고 있음에도 이성적인 설명이 통하지 않을 경우, 때로는 매서운 언어로라도 그들을 바로잡을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어떤 이들은 불교에 관심은 있으나, 수다, 음주, 파티, 춤과 노래, 혹은 음담패설이나 폭력적인 이야기 등을 즐기는 삶에 지나치게 몰두해 있어 그들과 함께하지 않으면 ‘보살이나 불자는 재미가 없고, 불교는 나와 맞지 않는 길’이라 오해할 경우, 상황에 따라 우리는 그들과 어울릴 수도 있어야 합니다. 이는 수행의 길이 단절이 아닌 연대와 자비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실천입니다. 

자신의 상황과 관련된 세 가지 과실행

(5) 그릇된 방편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

부정직하거나 기만적인 방법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다섯 가지 그릇된 방편은 다음과 같습니다: (a) 자신을 속이거나 과장하여 보이려는 위선적인 태도, (b) 아첨이나 감언이설로 타인을 현혹시키는 것, (c) 협박이나 공갈, 죄책감을 조장하여 이득을 취하는 것, (d)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허위의 잘못을 빌미로 벌금을 부과하거나 뇌물을 요구하는 것, (e) 더 큰 이득을 얻기 위해 먼저 뇌물을 제공하는 것 등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행위를 하는 것은 도덕적 자존심과 수치심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6) 산만함에 휩싸여 하찮은 일에 몰두하는 것

불만족, 불안, 지루함, 과도한 흥분 등으로 인해 일시적인 자극이나 오락을 좇아 의미 없는 활동에 몰두하는 것은 과실이 됩니다. 예를 들어, 마트나 쇼핑몰을 무작정 돌아다니거나, TV 채널을 계속 돌리거나, 컴퓨터 게임에 빠져 통제력을 잃는 것 등이 해당됩니다. 다만, 이런 활동이 타인의 분노를 가라앉히거나 우울을 달래기 위한 방편, 혹은 중독된 이들을 도와주기 위한 목적, 적대적인 이와 신뢰를 쌓기 위한 방법, 오랜 친구와 인연을 유지하기 위한 경우에는 지계바라밀을 해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저 할일이 없어서 이런 활동에 빠지는 것은 자신을 기만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더 나은 선택지가 존재합니다. 다만, 수행 중 피로하거나 우울할 때 의욕과 에너지를 회복하기 위한 적절한 휴식은 허용됩니다. 단, 그 휴식도 자기 절제를 바탕으로 한 시간적, 행동적 한계를 두고 실행되어야 합니다. 

(7) 윤회 속에서 계속 머무르려는 의도를 갖는 것

많은 경전에서는 보살이 자신의 해탈보다는 중생을 위해 윤회에 머무르기를 선택한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이를 자신의 번뇌와 망상을 극복하려는 노력 없이, 오히려 집착과 무명을 그대로 유지한 채 남을 돕겠다는 뜻으로 잘못 해석하는 것은 큰 과실입니다. 이는 보리심을 완전히 포기하고 해탈과 깨달음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보살계의 제18근본계인 ‘보리심을 버리는’것 과는 다릅니다. 여기는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자신의 번뇌를 없애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태도가 문제입니다. 이는 지계바라밀을 심각하게 약화시킵니다. 보살도에서는 특히 무상요가탄트라 수행에서 욕망의 에너지를 전환하여 수행의 원동력으로 삼는 길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욕망을 방치하거나 마음대로 탐닉하라는 것은 결코 아니며 철저한 자제와 통찰을 바탕으로 수행되어야 합니다.

자신과 타인 모두에 관련된 두 가지 과실행

(8) 비난을 받을 만한 행위를 버리지 않는 것

예를 들어, 우리가 고기를 좋아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데 채식을 철저히 실천하는 불자들과 함께 있을 때에도 스테이크를 고집한다면 그들은 우리를 비난하거나 존중하지 않게 되고, 우리가 하는 가르침이나 어떠한 말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들이 우리의 행동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함으로써 우리가 도우려는 이들의 마음까지도 닫게 될 수 있습니다. 초심 보살 수행자로서 타인에게 해로운 인상을 주는 행위를 고집스럽게 버리지 않는다면 이는 매우 큰 과실입니다.

(9) 번뇌에 휘둘리는 이들을 바로잡지 않는 것 

우리가 사무실, 학교, 사찰, 가정 등에서 지도자나 책임자 위치에 있으면서 어떤 구성원이 탐욕, 분노, 질투, 번뇌에 이끌려 공동체에 해를 끼치는 행동을 해도 그 사람에 대한 집착이나 호감을 얻고자 하는 마음 때문에 그를 훈계하거나 제지하지 않는다면, 이는 공동체 전체의 기강과 도량을 무너뜨리는 행위가 됩니다.

인욕바라밀을 해치는 네 가지 과실행

인욕바라밀은 해를 끼치는 이들, 법 수행에서 마주하는 어려움들, 그리고 자신의 고통을 분노 없이 받아들이고 감내하려는 마음가짐입니다.

(1) 네 가지 긍정적인 인욕 훈련을 버리는 것 

이 네 가지 훈련은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도 보복하지 않는 태도를 기르는 것입니다. (a) 욕설이나 비난을 들었을 때, (b) 타인의 분노의 대상이 되었을 때, (c) 신체적으로 맞았을 때, (d) 모욕이나 수치를 당했을 때.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반응하지 않고 인욕심을 기르는 훈련은 인욕바라밀을 자라게 하는 조건이 됩니다. 이를 무시하거나 멀리하면, 인욕의 성숙을 방해하게 됩니다.

(2) 우리에게 분노를 품고 있는 이들을 외면하는 것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불만이나 원한을 품고 있을 때 교만, 원망, 질투, 게으름, 무관심, 무감각함 등의 이유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그들을 외면한다면 이는 인욕을 해치는 과실입니다. 왜냐하면 인욕의 반대인 분노를 방치함으로써 그것이 계속 자라나도록 두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잘못을 피하려면, 우리가 잘못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사과하고 화해를 청해야 합니다.

(3) 타인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 

보살계의 제3근본타락 가운데 하나는 타인이 진심으로 용서를 구할 때 그것을 무시하고 외면하는 것입니다. 이 항목에서 말하는 과실은 누군가가 사과했음에도 불구하고 분노를 품고 그를 용서하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이는 사과의 타이밍을 떠나 지속적으로 원한을 품고 용서를 거부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4) 분노를 되새기고 집착하는 것 

어떤 상황에서든 한 번 분노가 생겨났을 때, 그 감정을 계속 되새기며 집착하고, 그에 대한 대항력을 적용하지 않는다면 인욕 수행을 저해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자신을 괴롭힌 상대에게 자애를 기르는 명상과 같은 방법으로 대응하려 애썼지만 감정이 사라지지 않았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노력한 자체가 중요한 것이며, 그 노력 덕분에 인욕바라밀이 약화되지는 않습니다.

정진바라밀을 해치는 세 가지 과실행

정진바라밀은 선한 행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려는 활력과 열의입니다.

(1) 존경과 숭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모으는 것

만약 우리가 친구, 제자, 배우자, 동거인을 모으려는 이유가 단지 자신이 존중받고, 사랑받고, 선물을 받고, 시중을 받고, 마사지를 받고, 일을 대신해주기를 바라는 욕심 때문이라면, 자신이 직접 수행하거나 남을 돕는 일에는 점점 흥미와 열의가 사라지게 됩니다. 이런 태도는 다른 이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태도로 타락하게 만들며, 결국 정진바라밀을 손상시킵니다.

(2) 게으름 등으로 인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게으름, 무관심, 무기력, 아무것도 하기 싫은 기분, 관심 부족, 혹은 잠을 너무 많이 자거나, 하루 종일 누워 있거나,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습관은 결국 정진에 대한 열의를 잃게 만들고 남을 도우려는 마음도 약화시킵니다. 물론 병에 걸렸거나 극도로 피곤할 때는 휴식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자신을 과하게 아끼거나 나약하게 방치하는 것은 수행을 저해하는 큰 과실입니다.

(3) 집착으로 인해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허비하는 것

정진바라밀을 방해하는 또 다른 장애는 의미 없는 이야기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성적인 이야기, 폭력, 연예인 소식, 정치적 음모 등에 관한 이야기를 듣거나, 말하거나, 책으로 읽거나, TV나 영화로 시청하거나, 인터넷을 통해 서핑하는 등의 방식으로 소비하는 것입니다. 그것에 집착하거나 몰두하게 되는 것은 열의를 악화시키고 수행을 흐트러뜨리는 과실이 됩니다.

삼매바라밀을 해치는 세 가지 과실행

삼매바라밀은 번뇌, 들뜬 마음, 혼침 등으로 인해 평온하고 집중된 상태의 마음을 기르는 수행입니다.

(1) 삼매 상태를 위한 방편을 구하지 않는 것

삼매 상태에 들어가는 법을 가르치는 스승이 계심에도 교만, 원망, 게으름, 무관심등의 이유로 그 가르침을 듣지 않으려 한다면, 집중된 마음의 안정을 어떻게 기르겠습니까? 만약 우리가 병이 들었거나, 가르침의 내용이 정확하지 않다고 여기거나, 이미 완전한 삼매를 성취한 상태라면 듣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가 아니라면, 삼매의 길로 들어가기 위한 가르침을 구하는 태도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2) 마음의 안정을 방해하는 장애를 제거하지 않는 것

삼매 수행 중에는 다섯 가지 주요 장애가 일어납니다. 이에 대해 노력하지 않거나, 방치하고 내버려두는 것은 삼매를 해치는 과실입니다. 다만, 이 장애를 제거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아직 성과가 없는 경우는 잘못이 아닙니다. 삼매를 방해하는 다섯 가지 장애는 (a) 오욕의 대상에 대한 집착, (b) 악의와 원망, (c) 흐릿한 마음과 졸림, (d) 산란한 마음과 후회, (e) 의심과 망설임입니다.

(3) 삼매로 인한 희열을 수행의 주목적으로 삼는 것

보통은 수행이 깊어짐에 따라 평소의 불안, 걱정, 후회, 갈망, 분노 등으로 얽매였던 에너지들이 해방되며 육체적, 정신적 희열이 생겨납니다. 이 희열은 더욱 깊은 삼매 상태로 이끄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금강승 수행에서는 이 희열을 활용해 미세한 심식과 공성의 통찰을 결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희열 자체게 집착하거나, 쾌락을 수행의 목적으로 여긴다면 삼매바라밀의 성숙은 심각하게 방해받게 됩니다.

반야바라밀을 해치는 여덟 가지 과실행

반야는 옳고 그름, 선악, 수용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명확히 분별할 수 있는 지혜입니다. 

(1) 성문승을 폄하하거나 부정하는 것 

보살계 제6근본타락은 성문승의 경전이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고, 제13타락은 보살이니 개별 해탈계(프라티모크샤)는 지킬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 실제로 그 말을 듣고 상대방이 계율을 버리는 경우에 타락이 완성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과실은 보살이 성문승의 계율이나 가르침을 들을 필요가 없다거나, 훈련할 필요가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거나 타인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누구도 자신의 계율을 버릴 필요는 없습니다. 계율을 배우고 지킴으로써 우리는 어떤 행위를 취하고 버려야 할지 분별하는 능력을 키웁니다. 프라티모크샤 수행의 필요성을 부정하면, 우리는 분별 지혜의 발달을 약화시키는 것입니다. 또한 성문승의 가르침이 성문승에게만 필요하고 보살에게는 무가치하다고 잘못 분별하게 됩니다.

(2) 보살도의 수행을 소흘히 하며, 성문승 수행에만 매진하는 것

프라티모크샤 계율만을 철저히 지키는 데 몰두하고 보살 수행의 광대한 자비와 지혜의 가르침은 소홀히 한다면 지혜의 균형이 무너지게 됩니다. 올바른 자세는 성문승과 대승의 가르침을 함께 공부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3) 때를 가리지 않고 비불교 경전에만 몰두하는 것 

주석서에 따르면 비불교 경전이란 주로 논리학과 문법에 대한 저작을 의미합니다. 물론 외국어 학습서나 현대 교육과정의 수학, 과학, 심리학, 철학 등 다양한 주제들도 이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잘못된 점은 이런 과목들에만 완전히 몰두하여 대승불교의 공부와 수행을 소홀히 하여 결국 대승의 가르침을 잊는 것에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매우 총명하여 빠르게 배우고, 논리와 이성에 근거한 대승 경전을 견고하고 안정적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다면, 매일 대승 공부와 수행을 병행하는 한 비불교 경전을 공부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티베트어를 공부하고자 하는 비티베트 불자들은 이 점을 명심하는 것이 좋습니다. 언어를 빠르고 쉽게 배울 수 있고, 이미 불교에 대한 탄탄한 기초가 있으며, 언어와 법 공부를 함께 할 충분한 시간과 에너지가 있다면, 티베트어를 배우는 것은 큰 이익이 됩니다. 이를 도구로 삼아 더 심도있는 공부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언어가 어렵고, 시간과 에너지가 제한적이며, 불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안정적인 일상 명상 수행이 자리 잡지 않았다면, 티베트어 공부가 오히려 영적 발전을 해치고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우선순위를 잘 분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4) 능력이 있어도 과도하게 몰두하는 것 

만약 위에 말한 조건을 갖추고 비불교 분야, 예를 들어 티베트어 같은 과목을 공부할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그 대상에 지나치게 집착하게 되면 영적 수행을 포기하고 덜 중요한 주제에만 몰두하게 될 수 있습니다. 티베트어나 수학은 완벽하게 익힌다고 해서 우리의 번뇌와 태도, 그리고 그로 인한 문제와 고통에서 해방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그것만으로는 다른 사람들을 온전히 돕는 능력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이 목표에 도달하는 유일한 길은 보리심과 특히 공에 대한 분별지혜를 완벽히 닦는 것입니다. 따라서 비불교 주제에 지나치게 빠지지 않도록, 그것들이 분명히 배울 만한 가치가 있더라도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는 것을 잊지 않고 냉철하게 공부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무엇이 중요한지 올바르게 분별하고 덜 중요한 일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5) 대승을 버리는 것 

보살계 제6근본타락은 대승 경전을 부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대체로 경전이 정통임을 인정하나, 보살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광대한 공덕과 공의 심오한 가르침과 같은 특정 부분을 비판하는 경우입니다. 전자는 부처님이 무수히 많은 형태로 나타나 수많은 세계의 중생들을 동시에 돕는 이야기를 담고 있고, 후자는 매우 간결하고 난해한 구절들로 되어 있습니다. 이들을 네 가지 방식으로 잘못 판단하면 우리의 분별력이 타락합니다. 즉, (a) 내용이 하찮아 쓸데없는 소리라거나, (b) 표현 방식이 형편없어 이해할 수 없다고 하거나, (c) 저자가 열반에 든 부처가 아니라고 하거나, (d) 쓸모가 없어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편협하고 성급한 마음으로 잘못 판단하면 올바로 분별하는 능력이 손상됩니다.

이해할 수 없는 가르침이나 경전을 만났을 때는 열린 마음을 유지해야 합니다. 지금은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도 부처님과 고승 보살들은 그 말씀을 이해하고, 그 의미를 깨달아 무한한 방식으로 중생을 이롭게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앞으로 이해하기 위한 굳은 결심을 키울 수 있습니다. 굳은 결심이 부족하더라도, 가르침을 깎아내거나 폄하하지 않는 한 잘못은 없습니다. 최소한 이해하지 못함을 인정하며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6) 자기를 칭찬하고 남을 깎아내리는 것 

보살계 제1근본타락은 이익을 바라는 마음이나 질투심으로 인해 자신을 칭찬하고 남을 깎아내리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자만, 교만, 거만함, 분노 같은 동기가 있습니다. 이런 동기는 우리가 자신을 타인보다 뛰어나다고 잘못 판단할 때 일어납니다. 

(7) 법을 위해 가지 않는 것 

보살계 제2근본타락은 집착과 인색함으로 인해 법을 전하지 않는 것입니다. 즉, 자만, 분노, 원한, 게으름, 무관심 때문에 법을 가르치거나 불교 의식을 행하거나 불교 법회에 참석하거나 법문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이 있을 때 우리는 무엇이 가치 있는지 올바르게 분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스승이 아니거나 너무 아프거나, 들을 법문이 옳지 않을 것 같거나, 이미 그 법문을 여러 번 들어 잘 알고 있거나, 이미 완전히 받아들여서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거나, 법문에 집중해 있어서 더 이상 듣지 않아도 되거나, 법문이 너무 어려워서 듣는 와중에 혼란스러워질 것 같은 경우에는 잘못이 없습니다. 또 스승이 우리가 법회에 참석하지 말라고 하여 다른 일을 시키는 경우에도 참석하지 않아야 합니다. 

(8) 스승을 언어 때문에 비난하는 것

우리는 수행 스승을 그들의 언어로 판단할 때 올바르게 분별하는 능력을 약화시킵니다. 예를 들어, 발음이 강하거나 문법 실수가 많지만 설명하는 내용이 옳은 스승을 비웃고 거부하는 반면, 우아하게 말하지만 전혀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하는 사람에게는 끌리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남을 이롭게 하는 일에 어긋나는 열두 가지 과실행

(1)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지 않는 것 

분노, 원한, 나태, 무관심으로 인해 도움이 필요한 여덟 종류의 사람들 중 누구에게도 가지 않는 것: (a) 긍정적인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 예를 들면 회의에서, ( b) 여행할 때, (c) 알고 있는 외국어를 배우도록 도와줄 때 (d) 도덕적으로 잘못되지 않은 일을 수행할 때, (e) 집, 사원, 소유물을 지키는 일, (f) 싸움이나 논쟁을 멈추게 할 때, (g) 결혼식과 같은 행사를 축하할 때, (h) 자선 활동에 참여할 때. 다만 우리가 아프거나 이미 다른 곳에 도움을 약속했거나, 능력 있는 다른 사람을 보내거나, 더 긴급한 긍정적인 일에 몰두하거나, 돕기에 무능력한 경우에는 가는 것을 거부해도 과실행이 아닙니다. 또한, 그 일이 남에게 해가 되거나, 법에 어긋나거나, 불합리하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이가 다른 곳에서 도움을 구할 수 있거나 믿을 만한 사람이 있으면 과실행이 아닙니다.

(2) 병든 이를 돌보지 않는 것

분노, 원한, 나태, 무관심 때문에 병자를 돌보지 않는 것.

(3) 고통을 덜어주지 않는 것

위와 같은 이유로, 특별한 보살핌이 필요한 일곱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a) 시각 장애인, (b) 청각 장애인, (c) 사지 장애인 및 불구자 (d) 지친 여행자, (e) 마음의 안정에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장애를 겪는 이, (f) 악의와 강한 편견을 가진 이, (g) 높은 지위에서 떨어진 이.

(4) 무모한 이들을 그들의 상황에 맞게 가르치지 않는 것 

무모한 이들은 인과법칙을 신경 쓰지 않아 현재와 미래에 불행과 문제를 불러오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며 분개하고 비난하면 그들을 도울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능숙함이 필요하며 상황에 맞게 접근법을 바꿔야 합니다. 예를 들어, 사냥꾼 이웃에게 그가 지옥에 갈 거라고 분노로 꾸짖는다면, 그 사람은 우리와 다시는 어떠한 인연도 맺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 그가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 사냥감을 제공하는 것이 친절한 봉사임을 말하며 친구가 됩니다. 이웃이 조언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면 점차 생명을 빼앗지 않고도 더 나은 휴식과 행복을 누리는 방법을 제안합니다. 

(5) 받은 도움에 보답하지 않는 것 

남이 준 도움에 대해 돕기를 원하지 않거나 갚으려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입니다. 단, 보답하려 노력했으나, 예를 들어 차를 수리할 지식이나 능력이 부족하거나, 너무 약할 경우에는 과실행이 아닙니다. 또한 도움을 준 이들이 보답을 원치 않을 경우 강요하지 않습니다. 

(6) 타인의 정신적 슬픔을 덜어주지 않는 것

원한, 나태, 무관심으로 인해 사랑하는 이, 돈, 소중한 물건을 잃은 이들을 위로하려 하지 않으면 과실행입니다. 괴로워하거나 우울한 이들은 진실한 애정, 공감, 이해가 필요하지만 동정심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7) 자선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베풀지 않는 것 

분노, 원한, 나태, 무관심 때문에 인색한 것이라면 그것은 근본타락입니다.

(8) 가까운 사람들의 필요를 돌보지 않는 것 

원한, 나태, 무관심으로 친지, 동료, 직원, 제자 등을 소홀히 하는 것은 큰 과실입니다. 특히 사회봉사에 종사하는 이라면 신체적 필요와 영적 복지를 돌봐야 합니다. 가장 가까운 이들의 필요를 무시하면서 모든 중생을 돕는 듯이 행동 할 수는 없습니다.  

(9) 타인의 기호에 맞추지 않는 것 

다른 이들이 원하는 바나 좋아하는 것이 그들에게나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면, 이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과실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르고 취향도 다릅니다. 이를 존중하지 않고 원한, 나태, 무관심으로 의견 충돌을 일으키거나 메뉴 주문 시 타인의 기호를 무시하면 그들을 불편하게 하거나 원망을 사게 됩니다. 

(10) 타인의 재능이나 선행을 칭찬하지 않는 것 

누군가 잘한 일이 있을 때 칭찬하거나 타인의 찬사에 동의하지 않으면 분노, 원한, 무관심, 나태로 인해 그들의 성장을 위한 관심과 열정을 약화시킵니다. 칭찬받는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공개적으로 칭찬하면 교만해질 사람에 대해서는 말을 아낍니다. 

(11) 상황에 맞는 처벌을 하지 않는 것 

다른 이들이 무례하게 행동하면 이를 훈육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감정적 문제, 나태, 무관심으로 이를 하지 않으면 효과적인 지도자가 될 능력을 훼손하게 됩니다. 

(12) 초감응력이나 주문 같은 것을 사용하지 않는 것 

특별한 상황에 도움이 되는 초감응력 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적절하고 효과적일 때 사용하지 않으면 도움을 주는 능력이 손상됩니다. 우리가 가진 재능, 능력, 성취를 최대한 활용하여 중생들에게 이익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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