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자로 인정받고 즉위하기까지
제1대 첸샵 세르콩 린포체는 제 14대 달라이 라마 성하의 스승 가운데 한 분이자, 일곱 명의 주요 논쟁 상대 중 한 분이었습니다. 그는 1983년 8월 29일, 인도 스피티의 키베르에서 69세로 입적했습니다. 스피티는 히말라야 산맥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산줄기 사이에 위치한 높고 메마른 계곡 지대로, 티베트 국경과 맞닿아 있습니다. 세르콩 린포체는 그곳에서 쇠퇴해 있던 불교를 다시 일으키고 개혁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의 환생자인 제2대 첸샵 세르콩 린포체는 정확히 9개월 뒤인 1984년 5월 29일, 역시 스피티 지역의 라리 마을에서 농부 가정의 열 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습니다. 이 어린 아이는 말을 하기 시작하자마자 집에 걸려 있던 전생 세르콩 린포체의 사진을 가리키며 “저 사람이 바로 나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새로운 환생자(툴쿠)를 찾기 위해 스피티에 온 승려 일행이 집에 도착했을 때에도 그는 그 중 한 승려를 이름으로 불렀고, 그들과 함께 다람살라로 가고 싶어 했습니다. 이런 일들은 그가 진정한 환생자라는 분명한 징표로 받아들여졌고, 이후 달라이 라마 성하께서도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셨습니다.
1988년 8월, 네 살이 된 린포체는 스피티의 타보 사원에서 즉위식을 올렸습니다. 타보 사원은 인도에서 가장 오래도록 운영되어 온 티베트 불교 사원입니다. 이 사원은 996년에 아띠샤 존자를 티베트로 초청했던 예셰 외드(Yeshe Öd) 왕이 세웠으며, 42년 뒤인 1038년에 대번역가 린첸 상포(Rinchen Zangpo)에 의해 봉헌되었습니다. 즉위식 이후, 전생 세르콩 린포체의 시자였던 나왕 셰르파(Ngawang Sherpa)와 체드룹(Tsedrub)은 어린 린포체를 다람살라로 데려갔고, 그곳에서 린포체는 처음으로 달라이 라마 성하를 알현했습니다. 세 번째 시자였던 촌첼라(Chontzela)는 그보다 앞서 이미 세상을 떠난 상태였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린포체는 달라이 라마 성하를 다시 알현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당시 막 환생자로 인정된 두 살 반의 용진 링 린포체(Yongdzin Ling Rinpoche)와 함께하는 자리였습니다. 용진 링 린포체는 달라이 라마 성하의 수석 스승이자, 전생 첸샵 세르콩 린포체의 스승이기도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달라이 라마 성하께서는 두 어린 툴쿠에게 티베트 알파벳 읽기를 처음으로 가르쳐주셨습니다.
1988년 10월 다시 한 번 즉위식을 치른 뒤, 나왕과 체드룹은 어린 툴쿠를 다시 부모가 있는 스피티로 데려갔습니다. 그 다음 해, 린포체는 다람살라에 있는 전생자의 집으로 옮겨 살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그는 미국인 비구니 툽텐 초드론(Thubten Chodron)을 만나게 됩니다. 그녀는 전생 세르콩 린포체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출가 전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던 툽텐 초드론 스님은 어린 린포체에게 영어의 기본 단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인도를 방문할 때마다 꾸준히 그를 가르치고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린포체와의 첫 만남, 그리고 나를 기억하고 있었던 일
1990년 5월, 저는 달라이 라마 성하를 위한 여러 국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긴 해외 순방 일정을 마친 뒤 다람살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첸샵 세르콩 린포체를 9년 동안 가까이 모시며 제자이자 통역, 영어 비서로 지냈습니다. 거의 매일같이 함께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분의 가정의 일부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제가 다섯 살이 된 툴쿠를 처음 만났을 때 나왕이 그에게 “이 사람이 누군지 알아보겠니?”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린포체는 “설마 모를까요. 당연히 누군지 알죠.”라고 말했습니다. 그 순간부터 그는 저에게 깊은 친근함을 표했고, 그 관계는 지금까지로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린포체는 전생의 기억이나 습성을 떠올리게 하는 여러 모습들도 보여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그를 당시 네 살이던 링 린포체에게 데려가 인사시켰을 때의 일입니다. 그는 링 린포체와 같은 나무 소파에 앉으려 하지 않았고 같은 높이에 앉는 것도 거부했습니다. 대신 바닥에 앉겠다고 고집했으며, 링 린포체에게 매우 공손하고 존경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런 태도는 지금까지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남인도 간덴 장체 사원으로 들어가 승려 교육을 시작하다
그 다음 달, 나왕은 린포체를 남인도 카르나타카 주의 문고드로 데려갔습니다. 그곳에서 린포체는 자신의 전생 사원인 간덴 장체 사원에 들어가 다시 전생의 거처에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는 린포체를 돌보기 위한 네 명의 승려가 함께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당시 스무 살 가량이었던 두 젊은 승려와 현재까지도 시자로 있는 겐둔 삼둡(Gendun Samdup, 당시 32세)과 툽텐 셰랍(Thupten Sherap, 당시 30세)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겐둔 삼둡과 툽텐 셰랍은 열 살 무렵, 전생 세르콩 린포체에 의해 미래의 시자로 직접 선택된 인물들이었습니다. 이는 오래전 나왕을 선택했던 방식과도 같았고, 저를 받아들였던 방식과도 비슷했습니다.
사원에 들어간 직후부터 린포체는 고위 환생 라마들에게 전통적으로 주어지는 교육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에는 두 시간 동안 기도문을 암송했고, 밤에는 그것을 다시 복습했습니다. 오후에는 게셰 소남(Geshe Sonam)에게 영어 필기와 티베트어 필기를 배웠습니다. 린포체는 늘 자기주도적이고 절제력이 강했기 때문에 누군가의 세세한 감독이 필요한 아이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지루함과 자극 부족 속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는 공식 스승이었던 간덴 장체 사원의 주지 켄 린포체 소남 곤파(Khen Rinpoche Sonam Gonpa)는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린포체가 열세 살이 되어야 본격적인 논리학 토론 수업을 시작할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린포체가 사원에 들어왔을 때는 그는 고작 여섯 살이었습니다.
린포체는 사원의 초등학교에도 다닐 수 없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너무 거칠고 산만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가끔 방문하는 어린 툴쿠들을 제외하면 그는 또래 친구들과 함께 놀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다만 토끼 두 마리를 키우고 있을 뿐이었죠.
1992년 12월 달라이 라마 성하께서 사원을 방문하셨을 때의 일도 인상적입니다. 보통은 모두가 줄지어 기다리고 있는 대법당으로 먼저 가시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그날 성하께서는 곧바로 린포체의 거처로 향하셨습니다. 그것은 성하께서 린포체를 얼마나 아끼고 걱정해 오셨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달라이 라마 성하께서는 린포체의 삶 전체에 걸쳐 그의 교육을 직접 살펴보셨습니다. 당시 상황을 보신 뒤, 린포체가 이제 영어와 티베트 문법, 그리고 기초 논리 토론을 시작해야 한다고 시자들에게 지시하셨습니다.
린포체의 현대 교육과 생활 전반을 정비하다
몇 달 뒤인 1993년 2월, 제가 간덴 장체 사원에서 린포체를 다시 만났을 때 저는 그가 저에게 보여준 깊은 유대감에 크게 놀랐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를 본 것이 거의 3년 전이었고, 그와 함께 보낸 시간도 고작 한 달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시자들은 린포체가 제가 오기를 무척이나 기다려왔다고 말했습니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린포체는 저를 거의 아버지 대하듯 대했습니다. 저는 제 자식이 없을 뿐더러, 친척 아이들에게서조차 그런 친밀함을 받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린포체의 거처에서 함께 생활하던 네 명의 승려는 모두 열 살 무렵부터 사원 생활을 시작했고, 현대식 교육은 많아야 초등학교 4학년 수준 정도밖에 받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선한 사람들이었지만, 세상 경험이나 자신감, 그리고 달라이 라마 성하의 지시를 실제 계획으로 실행해나갈 추진력은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연스럽게 저에게 도움과 조언을 요청하게 되었고, 저는 어느새 린포체의 교육과 생활 전반을 조직하고 관리하는 위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달라이 라마 성하를 위한 대규모 프로젝트들을 진행해본 경험이 있었기에 저는 린포체의 상황을 정비하는 책임을 맡을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그 역할을 받아들였습니다. 사실 그것은 아주 자연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겐둔 삼둡과 툽텐 셰랍과 함께 우리는 문고드 티베트 정착촌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던 40세의 티베트인 영어 교사를 구했습니다. 그는 매일 오후 한 시간, 그리고 아침마다 20분씩 복습 수업을 해주기로 했습니다. 또 같은 학교에서 일하던 57세의 티베트 문법 교사도 모셔와 매일 한 시간씩 수업을 했습니다. 사원 주지와 상의한 끝에, 그는 린포체에세 하루 한 시간씩 논리 토론을 직접 가르쳐주기로 했고, 우리는 린포체와 함께 공부하고 토론할 어린 승려 한 명도 따로 구했습니다.
저는 또 매일 저녁 한시간씩 산책하는 시간도 마련했습니다. 그전까지 린포체는 거의 운동을 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린포체는 그 시간을 매우 좋아했고 대부분 신나게 뛰어다녔습니다. 제가 사원에 있을 때는 산책하면서 영어 연습도 함께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시자들 가운데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 외에도 저는 린포체를 치과에 데려가 충치 치료를 받게 했고, 꼭 필요했던 주방 도구들과 새 침구류도 마련했습니다. 또 생활비 문제를 정리하려 노력했고, 전생 세르콩 린포체의 옛 제자들에게 후원 요청 편지도 보냈습니다.
저는 린포체가 언젠가 스피티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준비를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다람살라로 돌아온 뒤에는 영어, 수학, 힌디어, 티베트어, 과학 교과서를 내려보냈습니다. 인도 학교에서 사용하는 영어 교재들과 티베트어 교재들을 함께 보냈습니다. 몇 달 뒤, 겐둔 삼둡은 제게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린포체가 새로운 공부를 정말 좋아하고 있으며,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다람살라에서 더운 계절을 보내며 첫 법문을 하다
그 해 겨울인 1994년 1월, 린포체는 카르나타카 주 훈수르에 있는 하탄트라 대학(Lower Tantric College)에서 한 달 동안 달라이 라마 성하의 법문에 참석했습니다. 성하께서는 린포체가 매년 남인도의 더운 계절에는 다람살라에서 지내며 공부를 계속하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하셨습니다. 린포체는 매우 빠르게 성장 중이었고, 이미 영어 교과서는 3학년 수준까지 올라가 있었습니다.
훈수르 일정이 끝난 뒤, 린포체는 다람살라에서 열리는 달라이 라마 성하의 연례 봄 법회에 참석하기 위해 올라왔습니다. 저는 델리에서 린포체를 만나 종합 건강검진을 받게 했습니다. 장내 기생충과 편도선 비대 증상이 조금 있었던 것을 제외하면 건강 상태는 매우 좋았습니다.
린포체는 또래에 비해 몸도 매우 튼튼해졌고, 전생의 세르콩 린포체를 떠올리게 하는 뛰어난 유머 감각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해 3월, 아홉 살이 된 린포체는 다람살라의 투시타 명상센터에서 서양인들과 몇몇 티베트인들을 대상으로 첫 공개 법문을 했습니다. 내용은 라마 초파, 즉 구루 푸자의 구전 전수였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푸자 의식 전체를 직접 집전했습니다. 저는 린포체가 그 일을 너무나도 훌륭하게 해내는 모습을 보고 정말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는 이제 정식으로 라마로서의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겐둔 삼둡이 게셰 라람파 학위를 받다
1994년 10월, 겐둔 삼둡은 20년에 걸친 승려 교육을 마치고 게셰 라람파(Geshe Lharampa)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는 동기들 가운데에서도 상위권 성적으로 졸업했고, 이는 린포체 가문의 위상에도 큰 명예가 되었습니다.
티베트 전통에서는, 전체 승려 대중 앞에서 논쟁 시험을 통과해 승려 학위를 받게 되면, 학위 취득자는 사원에 있는 천 명 이상의승려들에게 카타 스카프와 일정 금액의 인도 루피를 공양하고 식사도 대접해야 합니다. 특히 린포체와 같은 고위 라마의 가문에서는 그 비용이 엄청나게 커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들은 제게 재정 마련을 도와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칼라차크라 관정을 받다
전생 세르콩 린포체의 부친인 제1대 세르콩 도제르창(Serkong Dorjechang)는 19세기의 위대한 요기 가운데 한 분이었으며, 칼라차크라 전승의 계승자이기도 했습니다. 전생 세르콩 린포펲 역시 칼라차크라에 깊은 조예를 갖고 있었고, 달라이 라마 성하께도 여러 차례 칼라차크라 관련 가르침을 드렸습니다. 예를 들어, 키르티 첸샵 린포체는 칼라차크라 탄트라에 대한 귀중한 구전 전승인 『라구 칼라차크라 탄트라(Laghu Kalachakra Tantra)』 와, 칼라차크라파다(Kalachakrapada the Younger)의 대주석 전승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너무 겸손했기 때문에 그 전승을 직접 달라이 라마 성하께 드리지 않고, 대신 세르콩 린포체에게 전수했습니다. 세르콩 린포체가 성하께 전해드리기에 더 적절한 분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 구전 전승은 여러 차례에 걸쳐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전생 세르콩 린포체는 일부는 달라이 라마 성하께 전수할 수 있었지만, 나머지를 마치기 전에 입적하셨습니다. 사실 그분의 마지막 활동 가운데 하나가, 스피티 타보 사원에서 달라이 라마 성하께 칼라차크라 관정을 열어주시도록 요청한 일이었습니다. 성하께서는 그 요청에 따라 1983년 8월 타보에서 칼라차크라 관정을 주셨고, 전생 세르콩 린포체는 그로부터 몇주 뒤 입적하셨습니다.
저는 그 관정에서 달라이 라마 성하의 통역을 맡을 수 있는 큰 영광을 누렸습니다. 마지막 의식이 끝난 다음 날, 저는 전생 세르콩 린포체에게 의식에 관한 질문 하나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논리적으로 생각해서 스스로 답을 찾아보세요.”라고 하셨고, 우리는 함께 그것을 풀어나갔습니다. 그것이 제가 그분에게서 받은 마지막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어린 툴쿠가 성장해 다시 위해단 스승이 된 지금도, 그는 여전히 법을 이해하는 기반으로서 논리와 추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릅니다. 전생 세르콩 린포체는 달라이 라마 성하의 칠대 논쟁 상대 가운데 한 분이었으니까요.
1995년 1월, 달라이 라마 성하께서는 문고드에 오셔서 칼라차크라 관정을 주셨습니다. 성하께서는 도착하시자마자 먼저 간덴 사원 대법당에서 팔덴 라모에게 초크 공양(tsog)을 올리신 뒤, 린포체가 돌아오기 전에 곧바로 그의 집으로 향하셨습니다. 린포체는 경호 문제 때문에 집으로 들어오는 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결국 집에 도착했을 때는 성하께서 이미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아마도 성하께서는 전생 세르콩 린포체와 칼라차크라, 그리고 자신 사이의 깊은 인연 때문에 그곳을 찾으셨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해서 열 살의 린포체는 다시 한번 칼라차크라와의 인연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 해에도 린포체는 달라이 라마 성하로부터 두 차례 더 칼라차크라 관정을 받았습니다. 첫 번째는 6월, 타보 사원 창건 1000주년 기념 행사에서였고, 두 번째는 12월 서벵골 살루가라에서였습니다.
겐둔 삼둡과 툽텐 셰랍이 가문 운영을 맡게 되다
그 이후 몇 년 동안 린포체는 규메 하탄트라 대학 전 주지였던 규메 켄주르 린포체 로상 나왕(Gyume Khenzur Rinpoche Losang Ngawang), 계세 텐진 상포(Geshe Tenzin Zangpo), 그리고 티베트인 재가 교사들에게 계속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저는 두 사람에게 서양의 옛 제자들이 린포체를 지나치게 특별대우하거나, 서양으로 초청해 장난감과 게임을 지나치게 접하게 하는 일을 삼가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저는 이미 다른 어린 툴쿠들이 그런 경험으로 인해 겪는 부정적인 영향을 직접 보아왔고, 달라이 라마 성하의 비서실에서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만든 위원회에 참여한 적도 있었습니다. 저는 린포체가 다른 툴쿠들처럼 서양을 경험한 이후 인도로 돌아와 문화적 충돌을 경험하는 것을 겪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랐습니다. 린포체가 유혹들을 감당할 만큼 충분히 성숙해졌을 때 서양을 방문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시자는 제 조언을 잘 따라주었고, 그 결과는 매우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린포체는 자신의 사회와 문화 안에서 매우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성장했고, 티베트 공동체와 인도 사회, 그리고 스피티 사람들과도 아주 잘 어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린포체에게 묻다
그 후에도 저는 해외 순회 일정과 달라이 라마 성하를 위한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틈틈이 린포체를 찾아가곤 했습니다. 우리는 저녁 산책을 하면서 종종 공부 이야기를 나눴고, 저는 특히 수학 문제를 자주 물어보았습니다. 전생 세르콩 린포체는 제게 자신이 계산에 아주 약했다고 솔직하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행성과 달력 계산을 다루는 칼라차크라 점성 체계는 배우지 않으셨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그것을 꼭 배우라고 하셨고 저는 실제로 공부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칼라차크라뿐 아니라 다양한 본존 체계의 2차원 분말 만다라와 3차원 만다라 궁전 설계에 필요한 치수와 구조에는 엄청난 관심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그것들을 제게 가르치는 일을 결코 지루해하지 않았고, 우리는 함께 각각의 건축 구조가 어떻게 맞물려 들어가는지를 수학적으로 계산해보곤 했습니다.
린포체 역시 수학에는 약했지만, 저는 적어도 기초 산수만큼은 흥미를 붙일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훗날 다시 만다라 설계에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린포체는 수많은 티베트어 경전을 쉽게 암기하면서도 단순한 덧셈표는 잘 외우지 못했습니다. 아마 제 질문들이 꽤 귀찮았을 텐데도 린포체는 단 한 번도 저에게 화를 낸 적이 없었습니다. 그 모습은 마치 전생 세르콩 린포체가 끊임없이 제 기억력을 훈련시키기 위해 질문을 쏟아내셨을 때, 제가 그분께 화를 낸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과 비슷했습니다.
사춘기 시절의 린포체에게는 장난기 많은 면도 있었습니다. 한번은 제게 괴물 가면을 구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머리 전체를 덮을 수 있는 전문가용 가면 두 개를 구해주었는데 정말 실제처럼 생긴 것들이었습니다. 린포체는 밤에 그것을 쓰고 거처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걸 무척 좋아했습니다. 근처에 살던 동급생 승려들 가운데 귀신을 무서워하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그 아이들은 자주 놀라곤 했습니다.
스피티 타보에 세르콩 학교를 세우다
달라이 라마 성하께서는 린포체에게 스피디 공동체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고 조언하셨습니다. 성하의 뜻에 따라 린포체는 타보 사원의 정신적 지도자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는 매년 최소 한 달은 스피티에 머물며 불법 가르침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1999년에는 타보에 세르콩 학교를 설립했습니다. 이 학교는 초등부터 10학년까지 교육을 제공하며, 11-12학년 학생들은 다람살라의 학교로 진학합니다. 학생들이 다람살라에 있는 동안에는 린포체가 직접 그들의 생활을 돌보았고, 자신이 다람살라에 있을 때면 학생들에게 불교 가르침도 전했습니다.
첫 승려 시험과 간덴 장체 기도법당 봉헌
2001년 9월, 린포체는 ’촉랑(Tsoklang)’ 시험을 치렀습니다. 이 시험은 반야바라밀다 수업 가운데 보리심 부분의 공부를 마친 뒤 툴쿠들만 치르는 특별 시험입니다. ‘촉랑’은 “대중 앞에 선다”는 뜻입니다. 십대 툴쿠들은 간덴 사원 대법당에서 장체와 샤르체 양 대학의 전체 승려 대중 앞에 서서 보리심에 대해 논쟁 토론을 해야 합니다. 저는 1998년에 인도를 떠나 베를린으로 이주해 있었지만, 시험과 축하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앨런 터너와 함께 다시 인도로 갔습니다. 저는 린포체가 토론을 훌륭하게 해내는 모습을 보며 정말 자랑스러웠습니다.
앨런은 영국 출신의 매우 진지한 수행자였습니다. 전생 세르콩 린포체는 그에게 여러 차례 개인 가르침을 주셨고, 저는 늘 그 통역을 맡았습니다. 이번 방문 중 린포체는 앨런에게 짧은 개인 법문을 주었고, 저는 다시 통역을 맡았습니다. 린포체는 “우리가 지금 이렇게 함께 있는 건 당연한 일이죠. 예전에도 늘 이렇게 했으니까요.”라고 말했습니다.
전생 세르콩 린포체와 마찬가지로, 린포체 역시 동물을 무척 좋아했고 늘 반려견을 키웠습니다. 당시 제가 본 그의 개는 정말 놀라웠습니다. 사원 주변 정글에는 야생 원숭이들이 많이 살고 있었는데, 인도에서 제가 본 대부분의 개들은 원숭이가 가까이 오면 짖으며 쫓아냈습니다. 그런데 린포체의 개는 마당으로 들어온 원숭이들과 함께 놀고 있었습니다. 린포체에게는 그것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지만 저와 앨런은 그런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한편, 게셰 겐둔 삼둡은 이제 승려 공부 외의 여러 분야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는 정식 건축 교육을 받은 적은 없었지만, 달라이 라마 성하의 뜻에 따라 내부 장식을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게 설계한 새로운 간덴 장체 기도법당을 직접 디자인 했습니다. 툽텐 셰랍은 그 공사를 총괄했습니다. 몇 년 뒤 두 사람은 이 경험을 바탕으로 다람살라에 새로 지어진 린포체의 집과, 그 옆의 세르콩 호텔 건축도 맡게 되었습니다.
제가 앨런과 함께 방문했을 때는 기도법당 공사가 막 끝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몇 달 뒤인 12월, 달라이 라마 성하께서 문고드에 오셔서 봉헌식을 직접 집전하셨습니다. 그때도 성하께서는 다시 린포체의 집을 방문하셨습니다.
오스트리아 그라츠에서 열린 칼라차크라 관정 참석을 위한 첫 유럽 방문
린포체는 2002년 10월, 툽텐 셰랍과 함께 오스트리아 그라츠에서 달라이 라마 성하께서 주시는 칼라차크라 관정에 참석하기 위해 처음으로 유럽을 방문했습니다. 당시 린포체의 나이는 열여덟 살이었습니다. 저 역시 베를린에서 그라츠로 갔습니다. 달라이 라마 성하의 언론 관련 업무를 맡고 있었고, 린포체와 툽텐 셰랍을 돕기 위해서였으며, 특히 독일어를 도와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린포체와 툽텐 셰랍, 그리고 저는 달라이 라마 성하보다 이틀 먼저 그라츠에 도착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시간을 이용해 기차로 두 시간 거리인 빈에 두 사람을 데리고 가 이 아름다운 도시를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는 시내 관광버스를 타고 도시를 둘러보았습니다. 관광이 끝난 뒤 저는 린포체에게 “다시 가서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은 곳이 있나요?”라고 물었습니다. 하지만 린포체는 “아니요”라고 대답했고, 이후 그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된 말을 덧붙였습니다. “특별한 건 없네요.” 그래서 우리는 곧바로 다시 그라츠로 돌아왔습니다.
달라이 라마 성하께서 도착하신 뒤 이어진 열흘간의 의식 동안, 린포체는 매일 새벽 다섯시부터 오전 열 시 까지 남걀 승단(Namgyal monks)과 함께 성하를 모시고 칼라차크라 자가 관정에 참여했습니다. 그가 이제 그런 수행을 직접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은 정말 감격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전생으로부터 이어진 구전 전승을 린포체에게 전하다
세르콩 도르제창 1세는 산속 동굴에서 장기간 수행하던 중 쫑카파의 현현을 체험했고, 그 자리에서 공성의 가의(可義)와 결정의(決定義)에 관한 특별한 전승인 《요의와 불요의에 관한 묘설의 정수(Drang-nge Legshe Nyingpo)》를 전수받았습니다. 이후 도르제창은 어린 시절의 전생 세르콩 린포체에게 그 구전 전승을 이어주었습니다. 달라이 라마 성하께서는 전생 세르콩 린포체에게 자신에게도 그 전승을 전해달라고 요청하셨지만, 여러 준비에도 불구하고 끝내 그 기회는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1982년, 전생 세르콩 린포체는 나왕, 촌첼라, 그리고 저와 함께 두 번째 해외 순회를 하던 때였습니다. 우리는 제 하버드 대학 동기였던 로버트 서먼의 뉴욕 우드스톡 자택에 초대받았습니다. 서먼은 박사논문을 위해 그 텍스트 일부를 번역한 상태였고, 그 자리에서 린포체께 자신과 제게 그 구전 전승을 내려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 텍스트는 서양식 책으로 약 3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었습니다. 그런데 전생 세르콩 린포체는 그것을 매일 수행의 일부로 암송하고 있었고, 약 두 시간 만에 전부 외워서 읊을 수 있었습니다. 이 텍스트는 쫑카파의 공성 설명 가운데에서도 가장 고급이고 어려운 해설로 여겨집니다.
전생 세르콩 린포체는 요청을 받아들였고, 전통적인 방식 그대로 기억만으로 텍스트를 암송해 전송을 주셨습니다. 너무 빠르게 진행되어 저는 이 책을 따라가며 읽는 것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그는 나왕에게 오류가 없는지 확인하게 했는데, 끝나고 보니 아주 사소한 실수 세 개밖에 없었습니다.
훗날 린포체는 이 매우 희귀한 전승을 받고 싶어 했고, 특히 저에게서 직접 받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텍스트를 정식으로 공부한 적조차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너무 자격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달라이 라마 성하께 어떻게 해야 할지 여쭈었습니다. 그러자 성하께서는 제가 원전으로부터 직접 주의 깊게 들은 것만으로도 이미 정식 전승을 받은 것이니 반드시 전해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뒤 몇 달 동안 저는 텍스트를 소리 내어 읽는 연습을 계속했습니다. 읽다가 버벅거리거나 지나치게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준비가 끝난 뒤, 저는 2003년 8월 인도로 가서 곧바로 문고드로 향했고, 린포체에게 그 구전 전승을 전했습니다. 이틀에 걸친 긴 오전 세션이 필요했습니다. 그 이후 린포체는 다시 많은 사람들에게 이 전승을 이어주게 되었습니다.
전생 세르콩 린포체는 캉라 린포체(Khyongla Rinpoche)에게 언젠가 제가 자신과 다음 생의 화신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린포체와 저는 그 말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수년 동안 린포체에게 전생에서 그가 했던 일들과, 말하셨던 것들, 그리고 전생의 린포체가 저에게만 개인적으로 전해주었던 독특한 텍스트 해석들을 계속 들려주었습니다. 세르콩 전승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지금도 저에게 엄청난 영광입니다.
미국 여행
린포체의 다음 서방 방문은 2004년 12월 미국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번에는 한 달 동안 머물렀고, 저와 함께 툽텐 셰랍과 게셰 겐둔 삼둡도 동행했습니다. 린포체는 전생 세르콩 린포체의 제자였던 케이트 헌터의 초청으로 공부에서 잠시 휴식을 갖기 위해 미국에 갔습니다. 케이트는 우리를 전생 린포체와 가까웠던 여러 티베트 가정에 데려갔고, 디즈니랜드와 자유의 여신상 같은 동서부 주요 관광지도 데려가 안내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린포체는 그런 관광지에도, 케이트가 보여준 거대한 쇼핑몰과 대형 상점에도 별다른 흥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티베트인들이 데려간 카지노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의 반응은 늘 같았습니다. “특별한 건 없네요.”
저는 린포체가 또래 스무 살 청년이라면 좋아할 만한 경험 정도는 해봐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결국 그는 캘리포니아에서 승마를 하고, 뉴욕 록펠러 센터에서 스케이트도 타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에는 제가 직접 수영을 가르쳐보려 했지만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린포체는 지금도 수영을 하지 못합니다. 고래 관찰 여행도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고래뿐 아니라 돌고래 떼까지 볼 수 있었지만, 린포체는 심한 멀미 때문에 그 특별한 광경을 즐길 수가 없었습니다.
또래 젊은이들처럼 린포체 역시 비디오게임을 좋아하게 되었고, 지금도 그 취미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부 게임들이 너무 폭력적이라는 걸 알고 저는 참지 못했습니다. 마치 지나치게 걱정 많은 부모처럼, 적을 쏘고 죽이는 걸 재미로 느끼는 일이 어떤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지 경고했습니다. 아마 린포페는 제 잔소리를 그닥 좋아하지 않았을 겁니다.
한 달 일정이 끝나고 공항에서 그들을 배웅할 때, 린포체는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이 워싱턴 D.C의 홀로코스트 박물관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곳은 희생자들뿐 아니라 고문하고 살해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자비를 수행해볼 수 있는 아주 깊은 기회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 경험은 비디오 게임 정도는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았습니다.
2007년 9월, 저는 앨런과 함께 다시 문고드를 방문해 린포체를 만났습니다. 그 무렵 린포체는 이미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었고, 둘 다 상당히 능숙하게 다루고 있었습니다. 그는 컴퓨터를 매우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었는데, 동급생들을 돕기 위해 직접 수업 개요와 학습 자료를 정리해 만들고 있었습니다. 또 한 가지 눈에 띄었던 점은, 린포체가 전생의 세르콩 린포체가 지녔던 현실적이고 소탈한 실용 감각을 점점 그대로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제게도 아주 실질적이고 도움이 되는 조언들을 해주었습니다. 이 시기부터 린포체는 요리도 즐기기 시작했는데, 특히 아침에 팬케이크를 만드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간덴에 머무는 동안 저는 린포체의 주된 스승이었던 게셰 텐진 상포께 업, 시간, 부정 현상 같은 전문적인 불교 철학 질문들을 드릴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는 겔룩파 3대 사원 전체에서 최고의 논쟁가로 평가되던 분이었습니다. 이후 규메 하탄트라 대학의 주지가 되었고, 현재는 전직 주지 자격으로 겔룩파 최고 법좌인 간덴 트리파에 오를 순번에 올라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답변은 너무 빠르고, 또 논쟁 형식의 전문 용어로 이루어져 있어서 저는 거의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답변을 녹음했고, 수업이 끝난 뒤에는 린포체와 제가 함께 녹음을 다시 들으며 티베트어로 받아 적었습니다. 그렇게 해야 비로소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린포체에게 다시 설명을 구했고, 그는 언제나 기꺼이 자세히 설명해주었습니다.
환속과 불교변증학원 입학
2008년, 린포체는 승복을 벗고 재가자의 모습으로 달라이 라마 성하와 스피티 사람들을 계속 섬기기로 결정했습니다. 달라이 라마 성하께서는 그에게 다람살라로 옮겨 불교변증학원에서 공부를 이어가라고 지시하셨습니다. 린포체는 이미 간덴 사원에서 젯순파(Jetsunpa) 계열 교재를 사용해 반야바라밀다(Prajnaparamita) 과정을 마친 상태였습니다. 이후 불교변증학원에서는 판첸(Panchen) 계열 교재를 사용해 중관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린포체는 두 전통의 교재 체계를 모두 익히게 되었습니다.
게셰 겐둔 삼둡과 툽텐 셰랍도 린포체와 함께 다람살라로 옮겼고, 얼마 지나지 않아 린포체의 형인 로상 나왕도 세 번째 시자로 합류했습니다.
엘런 터너의 유골을 뿌리다
2009년 5월, 앨런은 쉰네 살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매우 강한 야만티카 수행자였고, 늘 자신을 그 강력한 본존과 동일시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지나치게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야만티카가 해로운 악마들의 살을 먹는다는 상징을 실제처럼 여긴 나머지 지방이 많은 고기나, 심지어 생지방 덩어리를 먹어도 자신은 괜찮을 것이라고 어리석게 믿었습니다. 결국 그것은 그의 죽음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영국에서 화장되었고, 그해 12월 저는 그의 아내 아이린이 명상실을 정리하는 일을 도운 뒤, 그의 유골이 담긴 두 개의 나무 단지를 가지고 인도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린포체, 겐둔 삼둡, 툽텐 셰랍, 로상 나왕과 합류했고, 함께 그 유골 단지를 들고 보드가야와 사르나트 순례를 했습니다. 티베트 전통에 따라 린포체와 저는 한 단지의 유골을 갠지스강에 뿌렸고, 다른 단지는 툽텐 셰랍이 다람살라로 가져가 스피티의 산 정상 근처에 뿌렸습니다.
게셰 텐진 규르메와의 개인 수업
린포체는 2011년 불교변증학원에서 중관철학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달라이 라마 성하께서는 그에게 더 이상 불교변증학원에 남아 아비달마를 공부하거나, 다른 티베트 불교 전통 사원들을 돌며 비겔룩식 논쟁 방식을 체험할 필요는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대신 게셰 텐진 규르메(Geshe Tenzin Gyurmyi)와 개인적으로 공부를 계속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주로 중관철학을 가르쳤고, 이후에는 겔룩과 닝마 두 전통의 관점에서 탄트라까지 가르쳤습니다. 전생의 세르콩 린포체 역시 티베트 불교 네 전통 모두에 밝았으며, 특히 겔룩파 닝마 전통에 깊은 이해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후 린포체의 공식적인 공부는 대부분 개인 수업 형태로 이루어졌지만, 그는 간덴 장체와 불교변증학원 시절의 동급생들과 여전히 매우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많은 고위 라마들이 다른 툴쿠들과만 어울리는 경우가 많지만, 린포체는 자신의 지위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 법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캐나다에서 영어를 공부하고 국제적으로 가르치기 시작하다
2013년, 달라이 라마 성하께서는 린포체에게 캐나다로 가 대학 과정을 통해 영어 실력을 키우라고 지시하셨습니다. 린포체는 캘거리로 가서 마운트로열 대학교에서 세 학기 동안 영어를 외국어로 공부했습니다.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 그는 2014년에 다시 다람살라로 돌아와 게셰 텐진 규르메와의 개인 공부를 이어갔습니다.
2016년이 되자 린포체는 인도 밖에서 가르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전생의 세르콩 린포체처럼, 그가 처음 향한 곳 역시 이탈리아 포마이아의 라마 쫑카파 연구소(Tsong Khapa Institute) 였습니다. 그리고 전생의 린포체처럼, 그는 이제 이탈리아 음식도 매우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린포체는 유럽 약 열 개국을 비롯해 북미, 이스라엘, 베트남, 싱가포르 등 여러 나라에서 가르침을 전하고 있습니다.
린포체는 전생의 세르콩 린포체가 하던 일을 이어간다는 자신의 역할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정말 전생 세르콩 린포체의 환생인지 스스로는 알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인정받은 덕분에 자신의 삶에서 엄청난 기회를 얻었다는 점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달라이 라마 성하의 직접적인 지도, 최고의 스승들에게 받은 교육, 그리고 자신을 돌봐준 훌륭한 시자 공동체까지 - 그는 이 모든 것을 활용해 성하를 섬기고 전생 세르콩 린포체의 일을 이어가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 결심의 일환으로, 그는 전생 린포체의 옛 제자들을 다시 만나고 그 인연을 이어가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전생 린포체에 대해 달라이 라마 성하를 알현하다
전생 세르콩 린포체는 생전에 자서전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완성하지는 못했습니다. 툽텐 셰랍은 이후 그 자서전을 완성하기 위해 여러 자료를 수집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부분 하나가 빠져 있었습니다. 바로 전생 린포체와 달라이 라마 성하의 관계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는 단순히 성하의 ‘논쟁 상대 스승’ 가운데 한 명이었던 것만이 아니라, 사원들이 성하의 방침을 제대로 따르도록 관리하는 이른바 “부관(lieutenant)” 역할도 맡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티베트인들이 인도로 망명한 직후, 달라이 라마 성하께서 티베트 불교 사원과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조직하신 종교위원회의 창립 멤버 가운데 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린포체는 성하를 직접 인터뷰하기에는 너무 수줍어했고, 그래서 성하께서는 저에게 함께 와서 인터뷰를 진행해달라고 요청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다시 다람살라로 갔고, 린포체와 함께 질문 목록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2017년 10월, 우리는 성하를 개인적으로 알현했고, 저는 준비한 질문들을 직접 여쭐 수 있었습니다.
베를린 방문과 Study Buddhism 자료 작업
2019년 유럽 법문 순회의 일환으로, 린포체는 게셰 겐둔 삼둡과 툽텐 셰랍과 함께 3월과 4월 거의 한 달 가량 베를린에 있는 제 집에 머물렀습니다. 그 기간 동안, Study Buddhism 프로젝트의 영상 디렉터인 매트 린덴(Matt Linden)도 핀란드에서 우리와 합류했습니다. 린포체는 이 프로젝트의 영적 자문 역학을 맡기로 했고, 자신의 가르침을 여러 언어로 전 세계에 전하는 플랫폼으로 Study Buddhism을 활용하는 데 동의했습니다. 우리는 함께 웹사이트와 유튜브 채널에 올릴 짧은 글과 영상들을 작업했습니다.
Study Buddhism은 제가 2005년에 설립한 독일 비영리 단체 벌진 아카이브(Berzin Archives e.V.)의 프로젝트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세르콩 계보의 가르침 - 전생의 세르콩 린포체, 저 자신, 그리고 현재의 린포체 - 을 보존하기 위한 디지털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벌진 아카이브는 린포체의 지속적인 가르침 기록을 보관하는 저장소 역할도 맡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법문들을 녹취하고, 티베트어에서 번역한 뒤 편집하여 Study Buddhism 웹사이트에 게시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이후 린포체는 다시 혼자 베를린을 방문하기 시작했고, 2022년 12월과 2024년 7월에도 메트와 함께 추가 영상 촬영을 위해 다시 찾아왔습니다. 특히 마지막 방문 때는 린포체와 매트, 그리고 제가 함께 ‘과도한 생각’이나 ‘미루는 습관’ 같은 주제를 놓고 약 40분 길이의 자유로운 대화를 촬영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SNS 팔로워들에게 질문을 받아 린포체가 답하는 AMA (Ask Me Anything) 시리즈도 시작했습니다. 촬영하는 동안 저는 린포체에게 자신의 의도가 더 잘 전달되도록 답변을 다듬는 방법을 설명해주곤 했습니다. 그 다음 해 강연 순회 중 이루어진 질의응답 녹음을 들었을 때, 저는 정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린포체는 이미 그 능력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든 상태였습니다.
베를린에서의 시간은 비교적 자유롭고 편안합니다. 그곳에서 린포체는 “거룩한 린포체”가 아니라 한 평범한 인간으로 대해지는 시간을 즐길 수 있고, 자신이 좋아하는 축구를 마음껏 볼 수도 있습니다. 2024년 방문 때에는 메트와 함께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수만 명의 사람들과 UEFA 유럽 축구 선수권대회 결승전을 관람하기도 했습니다.
공성에 관한 심화 가르침과 복습/질문 세션 진행
2024년 9월 오스트리아를 시작으로, 2025년 8월 캘리포니아와 워싱턴주의 스라바스티 수도원에 이르기까지, 저는 린포체와 그의 영어 통역사 사이먼 홀턴(Simon Houlton)과 함께 공성에 관한 심화 텍스트 강의를 여러 차례 진행했습니다. 저는 복습 세션과 질의응답 시간을 맡아 진행했고, 청중 대부분이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을 때에는 중간중간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다시 한 번 세르콩 린포체의 가르침을 학생들에게 전하는 일을 곁에서 도울 수 있다는것은 제게 엄청난 영광입니다.
세르콩 연구소와 세르콩 재단
달라이 라마 성하께서는 밀라레빠처럼 전생에서부터 강한 수행의 습기를 지닌 사람이 아니라면,
수행의 길에서 진전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인도 날란다 대사들의 논서를 의지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그 날란다 전통을 제대로 따르기 위해서는 논리와 논쟁을 공부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성하의 가르침은 전생의 세르콩 린포체가 남긴 조언과도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그 가르침에 따라 린포체는 2024년 세르콩 불교학 연구소를 설립했습니다. 처음에는 다람살라에서 시작했고, 이후 비르에도 설립되었습니다. 이곳에서는 매년 3개월씩, 총 4년에 걸쳐 전통적인 논쟁 방식을 통해 불교 철학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과정을 운영합니다. 린포체 외에도 게셰 텐진 규르메, 게셰 켈상 왕모, 아티샤 마루트박사가 강의를 맡고 있습니다. 2025년에는 이 연구소가 인도의 비영리 단체인 세르콩 재단의 프로젝트로 편입되었고, 2026년 6월에는 이탈리아에 분원이 개설될 예정입니다.
위대한 스승으로 성장해가는길에 대한 생각
린포체는 이제 초급, 중급, 고급 수준의 학생 모두에게 법을 명확하게 설명할수 있는 훌륭한 스승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는 가장 어려운 주제도 사람들이 이해하고 공감할수 있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는 전혀 꾸밈이 없고, 유머와 현실적인 예시를 사용해 가르칩니다. 또한 재가자로 살아온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젊은 사람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가 이렇게 훌륭한 스승이 된 것을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린포체와 달라이 라마 성하께서는 언제나 저의 근본 스승으로 남아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세속적인 몇몇 부분에서는 이젠 린포체와 저의 역할이 서로 바뀌었습니다. 제가 이제 여든이 넘으면서, 예전에는 제가 전생의 린포체를 차에 타고 내리시는 것과 같은 육체적인 일을 도왔다면, 이제는 함께 여행할 때마다 린포체가 저를 도와주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지금도 서로를 돌보며 지내고 있습니다. 린포체는 2025년 캘리포니아 법문을 위해 저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가려고 베를린으로 왔습니다. 혹시라도 미국 입국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제가 도와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저는 아직 짧은 거리는 무리 없이 걸을 수 있지만, 비행할 때에는 휠체어 서비스를 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지원 승객 전용 줄을 함께 지나면서 우리는 입국 심사에서도 아무 문제 없이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린포체가 제 곁에 있었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우리 앞에 있던 영어를 전혀 못 하는 연로한 펀자브 신사에게 린포체가 통역을 해드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린포체의 이번 순회 일정은 그렇게 참 따뜻한 방식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두 생에 걸쳐 세르콩 린포체와 가까운 인연을 맺고, 이번 생에서는 그의 성장 과정에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며, 다시 한 번 뛰어난 대라마로 성장하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매우 큰 행운으로 생각합니다. 라마 조파 린포체(Lama Zopa Rinpoche)는 한때 전생 세르콩 린포체에 대해 “진짜 라마의 예를 보고 싶다면 바로 첸샵 세르콩 린포체를 보면 된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 덧붙이고 싶습니다. 만약 “진짜” 툴쿠의 예를 보고 싶다면, 바로 그의 환생인 제2대 첸샵 세르콩 린포체 라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