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적인 업의 충동에 대한 고찰

파괴적인 업의 충동과 건설적인 업의 충동으로부터 각각 비롯되는 파괴적인 행동과 건설적인 행동에는 셀 수 없이 많이 종류가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행동은 몸과 말과 마음이라는 세 가지 행위의 문을 통해 이루어지지만, 우리가 행하고 말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몇 가지 범주로 깔끔하게 나누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수많은 행동 가운데 다른 많은 행위를 포괄하면서도 특히 삼가야 할 열 가지 파괴적인 행동을 가려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행동을 저지르면 던지는 업의 충동은 성숙하여 우리의 마음의식이 다음 생에서 세 가지 악도 가운데 하나로 태어나도록 이끌고, 또한 그 가운데 어떤 종류의 삶을 받게 될지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파괴적인 행동이 가져올 참담한 결과를 깨닫고 그것을 삼가는 것이 곧 열 가지 건설적인 행동이며, 이는 쎄 가지 선도 가운데 하나에 태어나는 원인이 됩니다.

세친은 『구사론(Abhidharmakośa)』 제4품 제66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전지자께서는 수많은 행동을 넓게 포괄하고 다시 간추려 선한 것과 악한 것ㅅ을 막론하고 열 가지 행위의 길을 설하셨다.

이제 이 가운데 먼저 파괴적인 행동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파괴적인 업의 충동의 실제적인 행위의 길

몸과 말, 마음 가운데 어느 행위의 문을 통해 이루어지든 파괴적인 업의 충동의 행위의 길이 완전하게 성립하려면 반드시 네 가지 요소를 갖추어야 합니다.

  • 행동이 향하거나 행해지는 대상 
  • 동기를 이루는 마음의 틀
  • 행동을 실행하는 방법
  • 행동이 실제로 완결되는 것

또한 동기를 이루는 마음의 틀에는 다음의 세 가지 요소가 포함되어야 합니다.

  • 행동의 대상을 올바르게 분별함
  • 일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 행동을 하려는 의도
  • 어떤 형태의 번뇌나 그릇된 태도 

이 요소들 가운데 하나라도 빠지면 그 파괴적인 행동은 불완전한 파괴적인 행동이 됩니다. 따라서 그 행동으로 인해 생기는 부정적인 힘, 업의 씨앗, 그리고 그 결과 역시 완전한 경우만큼 확정적이거나 강하지 않습니다.

세친은 『구사론』 제4품 제10게에서 동기를 이루는 마음의 틀을 다시 두 단계로 구분합니다.

  • 원인이 되는 동기심은 마음으로 짓는 세 가지 파괴적인 행동과 함께 일어나며, 몸이나 말로 짓는 일곱 가지 파괴적인 행동을 저지르기로 숙고하고 결정하는 마음입니다.
  • 동시적인 동기심은 앞서 마음으로 결정한 몸이나 말의 파괴적인 행동이 실제로 실행되는 순간에 함께 일어나는 마음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의 얼굴을 때리려는 파괴적인 업의 충동의 행위의 길을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때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그 사람을 끝내 찾지 못하거나, 그 사람을 찾았지만 실수로 다른 사람을 때리거나, 원래 의도했던 사람을 때리기는 했지만 고의가 아니라 우연히 그렇게 되었거나, 번뇌 때문이 아닌 정당한 이유에서 행동했거나, 화가 나서 때리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실제로는 때리지 않았거나, 때리려다 중간에 멈추거나, 너무 약하게 때려 아무런 고통도 주지 못했다면, 이 모든 경우에는 그 사람의 얼굴을 때리는 파괴적인 행동은 완전하게 성립하지 않습니다. 이때 쌓이는 부정적인 힘 역시 갖추어진 요소의 수와 정도에 비례하게 됩니다.

따라서 아래에서 설명하는 열 가지 완전한 파괴적인 행동이 어떤 요소들로 이루어지는지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면 이러한 행동을 저지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때, 적어도 그 행동이 완전하게 성립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부정적인 힘과 업의 씨앗, 그리고 그로 인해 뒤따르는 괴로움과 문제를 점차 줄여 나갈 수 있습니다.

몸으로 짓는 세 가지 파괴적인 행동

몸으로 짓는 세 가지 파괴적인 행동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살생: 생명을 빼앗는 것
  2. 도둑질: 주어지지 않은 것을 취하는 것
  3. 부적절한 성적 행위를 하는 것

이 세가지는 앞에서 살펴본 네 가지 요소를 기준으로 분석할 수 있으며 어떤 경우에 그 행동이 완전하게 성립하는지, 그리고 그 결과로 어떤 괴로운 과보가 가장 심각하게 나타나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생명을 빼앗는 것

생명을 끊는 것, 즉 살생에서 행동의 대상은 반드시 자기 자신이 아닌 어떤 살아 있는 존재여야 합니다. 그것은 사람이든 사람이 아닌 존재든 상관없으며, 이미 태어난 존재일 수도 있고, 아직 모태 안에 있는 존재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자살 역시 파괴적인 행동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살해하는 것만큼 무겁지도 않고, 자신에게 그만큼 많은 문제를 초래하지도 않습니다. 이는 행동의 완결이라는 측면에서 특별한 사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살은 행동이 완결되는 순간 곧바로 자신의 죽음이 일어나므로, 살생으로 인해 생긴 업의 씨앗과 부정적인 힘은 이미 다음 생을 받았거나 중음 상태에 들어간 이후의 마음의 연속체에 이어지게 됩니다. 살아 있는 동안 완전히 성립하는 것은 예를 들어 스스로를 칼로 찌르는 행위이지, 생명을 끊는 행위 자체는 아닙니다.

또한 누구를 죽이려는 것인지 대상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실수로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은 의도적으로 죽이는 것보다 훨씬 가볍습니다. 더 나아가 상대의 생명을 완전히 끊겠다는 의도가 분명해야 합니다. 우연히 사고로 사람을 죽인 경우는 미리 계획한 살인과 같은 결과를 낳지 않습니다. 따라서 실수로 개미를 밟아 죽이는 것은 파리나 모기를 일부러 잡아 죽이는 것보다 가볍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곤충을 죽이는 일을 사소하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제14대 달라이 라마 성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파리 한 마리를 잡는 것은 별일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언가가 당신을 성가시게 할 때마다 그것을 죽임으로써 해결한다면, 매우 위험한 마음의 습관이 형성됩니다. 그렇게 되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디까지 죽이고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 경계를 정하기가 점점 어려워질 것입니다.”

살생은 반드시 세 가지 독 가운데 하나에 의해 동기가 부여되고, 그 상태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분노와 적대감 때문에 원수나 곤충, 뱀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탐욕이나 집착 때문에 양을 잡아 고기를 취하거나, 오락과 휴식을 위해 사냥이나 낚시를 할 수도 있습니다. 무지 때문에 지방의 신이나 신령에게 피의 제물을 바치면 복을 받을 것이라고 믿고 동물은 물론 사람의 생명까지 빼앗는 경우도 있습니다.

행동 자체는 독약이나 무기, 자신의 손, 흑마술 등 어떤 수단을 사용해서든 다른 존재의 생명을 끊는 것입니다. 반드시 자신이 직접 실행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에게 돈을 주고 살인을 시켰다면, 그 사람 역시 고용한 살인범과 마찬가지로 강한 부정적인 힘을 쌓게 됩니다. 식탁에 올릴 동물이나 가금류, 물고기를 잡도록 지시하는 경우나, 전쟁에서 군대를 출동시키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장군이 천 명의 병사를 전장에 보내 그들이 천 명을 죽였다면, 그 장군은 마치 자신이 직접 천 명을 죽인 것과 같은 정도의 부정적인 힘을 쌓게 됩니다.

세친은 『구사론』 제4품 제72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전쟁과 같은 경우에는 그것을 일으키거나 지휘한 사람도 목적이 동일하기 때문에 그 행동에 참여한 모든 사람은 같은 과보를 받는다. 

고기를 먹는 행위 자체는 동물을 죽이는 행위나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위해 도살하도록 직접 시키는 행위와는 다릅니다. 물론 육식을 하는 습관으로 인해 장차 육식 동물로 태어나거나 자신의 몸이 다른 존재에게 먹히는 등의 과보를 초래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살생의 업을 직접 지은 것이 아니므로, 살인자가 되거나 다른 사람에게 살해 당하는 과보를 낳는 것은 아닙니다.

살생은 희생자가 자신보다 먼저 죽을 때 비로소 완전하게 성립합니다. 이는 자신의 살해 행위 직후에 일어날 수도 있고, 얼마 뒤에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자신이 먼저 죽거나 희생자와 동시에 죽는다면, 자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 부정적인 힘은 완전하게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살생으로 인한 업의 씨앗과 부정적인 힘이 이미 다른 생을 받은 마음의 연속체 위에 이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살생은 자기방어를 위한 것이든 다른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든 언제나 파괴적인 행동입니다. 다만 그 행동에 번뇌가 전혀 개입하지 않는 경우라면, 우리는 과거생에 배의 선장이었던 부처님께서 오백 명의 승객을 죽음의 위험에 빠뜨린 노 젓는 사람 민약 둠둠을 죽였던 때와 같은 용기를 지녀야 합니다. 또한 그 행동의 동기는 반드시 커다란 자비심이어야 하며, 설령 그 결과로 자신이 악도에 태어나게 되더라도 그 과보를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합니다.

주어지지 않은 것을 취하는 것

주어지지 않은 것을 취하는 것, 즉 도둑질에서 행동의 대상은 다른 사람에게 속한 가치 있는 물건이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자신이 가져갈 권리도, 사용할 권리도, 자신의 것으로 보관할 권리도 없는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빌려 간 물건을 돌려주지 않는 것 역시 여기에 해당하며, 납부해야 할 세금이나 벌금, 통행료, 입장료, 교통요금 등을 내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누군가가 분명히 잃어버린 물건을 길에서 주었다면 그것을 자기 것으로 삼지 않고 정당한 주인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지갑을 잃어버렸는데 누군가가 그것을 찾아 돌려준다면 얼마나 안심이 되고 기쁘겠습니까?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의 몰건을 가지려 할 때에는 무엇을 훔치려는 것인지 대상에 대해 착오가 없어야 합니다. 또한 그 물건을 자신의 것으로 취하려는 의도가 분명해야 하며, 곧바로 처분할 생각이 있는지 여부와는 관계없이 그 의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세 가지 독 가운데 하나가 동기로 작용합니다. 분노와 적대감 때문에 미워하는 원수의 재산을 약탈할 수도 있습니다. 탐욕과 집착 때문에 너무 갖고 싶은 물건을 훔칠 수도 있습니다. 무지 때문에 수행자인 자신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져도 된다고 생각하거나, 스승에게 헌신하는 제자라는 이유로 스승을 위해 도둑질을 해도 된다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또는 정보를 속이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으며, 할 수 있는 만큼 이익을 챙기는 것이 당연하다고 완고하고 어리석은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행동은 실제로 상점에서 물건을 훔치거나, 강도질을 하거나, 가게나 집에 침입하여 절도 행위를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그런 일을 시키거나, 통행료를 내지 않고 유료도로를 지나 가는 것 등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훔친 물건을 이제는 내 것이다라고 받아들이는 마음이 생길 때 그 절도 행위는 완전하게 성립합니다.

부적절한 성적 행위

부적절한 성적 행위는 다음 네 가지 측면에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 부적절한 상대와의 성적 행위
  • 부적절한 방식
  • 부적절한 장소
  • 부적절한 시간

부적절한 상대란 배우자나 연인이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상대가 미혼이라 하더라도 본인이 원하지 않거나, 부모나 보호자가 허락하지 않을 것이 분명한 경우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또한 독신 서원을 받은 사람도 대상이 됩니다. 아울러 미래에 문제를 일으킬 성적 행위, 예를 들어 어린이와의 성관계나 동성과의 성관계,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하는 성적 행위, 동물과의 성적 행위 등은 모두 자신을 해치는 행동이므로 부적절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배우자가 있다면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 성관계를 갖는 것 역시 부적절합니다.

부적절한 방식, 장소, 시간은 배우자의 관계에서도 적용됩니다. 부적절한 방식에는 지나친 욕망과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과도하거나 기이한 성적 행위, 또는 상대에게 고통을 주는 폭력적인 행위가 포함됩니다. 부적절한 장소란 법당이나 기도실, 불탑 옆, 자신의 영적 스승 앞, 부모 앞, 많은 사람이 있는 곳, 또는 부처님의 불상이나 탕카 앞과 같은 장소를 말합니다. 또한 바위가 많은 차갑고 젖은 땅처럼 사진이나 상대에게 통증이나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곳도 부적절합니다. 만약 방이 하나뿐이라면, 사랑을 나누기 전에 탕카 앞에는 커튼을 치고 불상에는 천을 덮어 두는 것이 공경의 표시입니다. 이는 훌륭한 스승과 같은 방에서 자게 될 경우, 특히 다른 사람과 함께 잠을 잘 때라면 스승의 침상과 자신의 침상 사이에 커튼이나 칸막이를 두는 것이 예의인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부적절한 시간이란 자신이나 상대가 하루 계율과 관련하여 독신 서원을 지키고 있는 기간이라거나, 성관계로 인해 병이 악화될 수 있는 질환을 앓고 있거나, 상대에게 전염될 수 있는 질병을 가지고 있는 때를 말합니다.

또한 지나치게 반복해서 성관계를 갖거나, 다른 사람이 엿볼 수 있거나, 예기치 않게 누군가 방에 들어와 모두를 난처하게 만들 수 있는 대낮에 거리낌 없이 성관계를 갖는 것도 부적절합니다. 여성이 월경 중이거나, 임신 말기이거나, 아직 젖먹이 아이에게 수유하고 있는 동안의 성관계 역시 부적절한 시기에 해당합니다. 

앞에서 살펴본 네 가지 요소에 비추어 보면, 예를 들어 간통이라는 부적절한 성적 행위의 경우 그 대상은,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배우자가 아닌 사람이어야 하며, 배우자가 없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의 배우자여야 합니다. 또한 성관계를 가지려는 의도가 생길 때에는 상대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즉, 이 사람이 자신의 배우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과 성적 관계를 맺겠다는 의도 또한 분명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성적 비행은 탐욕과 집착에서 비롯되지만, 분노와 적대감 때문에 적의 아내나 딸을 강간하는 경우도 있으며, 무지 때문에 성적 결합이 고도의 영적 수행이라고 믿거나, 혼외 관계가 세련된 것이며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여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출가 수행자로서 독신 계율을 받은 사람이라면, 어떤 형태의 음행도 모두 부적절한 행위입니다. 이 경우에는 상대에 대한 인식이 정확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쌓이는 부정적인 힘의 정도는 같습니다. 

성적 비행에서 실제 행동은 남녀의 성기가 결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르가즘의 쾌락을 경험할 때 그 행위는 완전히 성립합니다.

말로 짓는 네 가지 파괴적인 행동

말로 짓는 네 가지 파괴적인 행동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거짓말하기
  2. 이간질하기
  3. 거친 말을 하기
  4. 쓸데없는 말을 하기

이 네 가지 말의 파괴적인 행동도 가장 심각한 과보를 낳으려면 앞에서 설명한 모든 요소가 완전히 갖추어져야 합니다.

거짓말

거짓말을 실제로 보거나 들었거나 다른 감각으로 경험했거나 알고 있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일 수도 있고, 반대로 실제로는 보지도, 듣지도, 경험하지도, 알지도 못한 일을 보거나 들었거나 경험했다고 주장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일부러 거짓 정보를 전하여 사람들을 오도하는 것, 고의로 잘못된 조언이나 그릇된 가르침을 전하는 것, 다른 사람의 장점을 부정하거나 없는 허물을 만들어 비방하는 것, 심지어 아무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른바 ‘선의의 거짓말’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특히 부처님을 비방하는 거짓말이나 자신의 영적 스승 또는 부모에게 하는 거짓말은 매우 무거운 업이 됩니다. 또한 출사 수행자에게는 자신이 실제로 이루지 못한 영적 성취를 이루었다고 거짓말하는 것이 중대한 계율 위반에 해당합니다. 특히 부처님을 비방하는 거짓말이나 자신의 영적 스승 또는 부모에게 하는 거짓말은 매우 무거운 업이 됩니다. 또한 출가 수행자에게는 자신이 실제로 이루지 못한 영적 성취를 이루었다고 거짓말하는 것이 중대한 계율 위반에 해당합니다.

거짓말이 성립하려면 먼저 거짓말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그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말을 하거나 몸짓으로 표현하려는 의도가 생길 때에는 자신이 전달하려는 내용이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스스로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무엇이 사실인지를 정확히 인식한 뒤 그것을 의도적으로 바꾸어 말해야 합니다. 만약 사실을 확신하지 못한채 잘못 말했다면, 그것은 완전한 의미의 거짓말은 아닙니다.

또한 거짓말을 하겠다는 분명한 의도가 있어야 하며, 세 가지 독 가운데 하나가 동기로 작용해야 합니다. 탐욕과 집착 때문에 재산이나 명성, 권력을 얻으려고 거짓말 할 수도 있습니다. 분노와 적대감 때문에 원수를 속이거나 미워하는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기 위해 거짓말할 수도 있습니다. 무지 때문에 거짓말을 재미있는 장난 정도로 여기거나, 거짓말이 잘못이라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거짓말헤서 실제 행동은 말로 하거나, 글로 쓰거나, 몸짓이나 고갯짓과 같은 비언어적 표현을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대신 거짓말을 하도록 시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우리에게 “당신은 정말 친절하시네요. 분명 성인(聖人)이시겠지요.”라고 말했을 때, 우리는 그 말을 부정하지 않고 미소만 지으며 침묵한다면 그것 역시 매우 심각한 거짓말이 됩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 봅시다. 우리가 “경전에서 읽었는데 보드가야 외곽의 화장터에서 하룻밤을 무사히 보내면 아라한임이 증명된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이렇게 살아 돌아왔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이것 역시 암시를 통한 거짓말입니다. 우리는 분명 아라한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거짓말은 상대방이 우리의 말을 이해하고 그것을 사실이라고 믿을 때 비로소 완전하게 성립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단지 쓸데없는 말에 그칠 뿐입니다.

비록 거짓말은 파괴적인 행동이지만, 생명을 구하는 것과 같이 더 큰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예외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겁에 질린 사슴 한 마리가 달아나는 것을 본 후에 사냥꾼들이 그 사슴을 쫓으며 “사슴을 보셨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반드시 사실대로 대답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도 방금 와서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거나, “저는 지금 다른 곳으로 가는 길입니다.”라고 둘러댈 수도 있습니다. 또는 그들의 추격을 늦추기 위해 엉뚱하고 긴 이야기를 지어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상황에 맞는 지혜로운 말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누군가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 주었는데 맛이 없다고 한들 솔직하게 말하여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사람은 우리를 기쁘게 해 주려는 마음으로 음식을 준비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별로 배가 고프지 않네요.”, “제가 이런 종류의 음식을 잘 먹지 못합니다.”, “이 음식은 제 체질에 잘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또는 “오늘은 몸이 좀 좋지 않네요.” 그리고 음식을 먹지 않으면 됩니다.

이간질

이간질이란 사이좋게 지내는 사람들을 갈라놓거나, 이미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적대감을 더욱 깊게 만드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들 사이의 불화와 반목을 일으키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이 행동의 대상은 서로 가까운 사이이거나, 혹은 적대적 관계에 있는 두 사람 이상이어야 합니다. 특히 제자와 영적 스승 사이를 갈라놓거나 승가를 분열시키는 행위는 매우 무거운 과보를 가져옵니다. 

이간질하려는 충동이 일어날 때에는, 관련된 사람들과 그들의 관계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 또한 사람들 사이에 분열을 일으키겠다는 의도가 분명해야 하며, 세 가지 독 가운데 하나가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탐욕과 집착 때문에 부부 사이를 갈라놓아 그 가운데 한 사람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려 할 수도 있습니다. 분노와 적대감 때문에 적대 집단 내부의 분열을 조장하거나, 분열을 통해 상대를 약화시키려는 첩보 활동을 벌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무지 때문에 특정 종교의 신도들을 분열시켜 자신이 옳다고 믿는 종교나 사상으로 개종시키려 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 행동은 친구들 사이를 갈라놓거나, 원수들이 화해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위해 사실이든 거짓이든 어떤 말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 그런 말을 대신 하도록 시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말을 매우 신중하게 살펴야 합니다. 어떤 말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누군가에게 다른 사람에 대한 나쁜 감정을 일으킬 것이 분명하다면 굳이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간질은 상대방이 우리의 말을 이해하고 믿은 결과, 실제로 서로 적대감을 품게 될 때 완전하게 성립합니다. 

어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계획을 꾸미고 있는데, 순수한 자비심에서 그들의 계획을 막기 위해 일부러 그들 사이를 갈라놓는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이 경우에도 이간질이라는 행위 자체는 여전히 파괴적인 행동이며 괴로운 과보를 낳습니다. 그러나 그 행동을 하기 이전에 일어난 의도에는 번뇌나 악의가 없었기 때문에 그 결과는 상당히 완화될 것입니다.

거친말을 하기

거친 말을 하는 것에는 비꼬는 말과 모욕, 조롱, 욕설 등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모든 형태의 언어가 포함됩니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이나 몸짓, 표정을 짓는 것이 모두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절름발이”라고 부르거나, 상대를 향해 “돼지 같다”고 말하면 어느 경우든 상대방은 상처를 받습니다. 부드럽게 말하더라도 그 말은 상대를 아프게 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대한 파괴적인 행동입니다. 자신과 상대방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러한 거친 말이 영적 스승이나 부모를 향할 경우 그 업은 더욱 무겁습니다.

이 행동이 성립하려면 먼저 우리의 말로 상처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독한 말을 하려는 마음이 일어날 때는 누구를 상처 입히려 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또한 그런 말을 하겠다는 의도가 분명해야 하며, 세 가지 독 가운데 하나가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탐욕과 집착 때문에 불량 집단에게 인정받고 싶어 거친말을 사용할 숫도 있습니다. 분노와 적대감때문에 적을 자극하거나 자기 편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독설을 퍼부을 수도 있습니다. 무지 때문에 그런 말투가 세련되고 영리해 보인다고 여기거나,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해도 별문제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 행동은 사실이든 아니든 상대의 약점이나 허물을 들추어 상처를 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대신 그런 독설을 하게 하는 것 역시 포함됩니다. 이 행동은 상대방이 우리의 말을 이해하고, 우리가 진심으로 그렇게 말했다고 믿으며, 실제로 마음의 상처를 입을 때 완전하게 성립합니다. 반대로 생명이 없는 물건을 향해 욕설을 퍼붓는 경우에는 상처받는 존재가 없으므로 그 과보는 훨씬 가볍습니다.

쓸데없는 말을 하기

쓸데없는 말에는 크게 세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 흑마술 등의 주문을 외우거나, 다른 사람에게 불행이 닥치기를 바라며 악의적인 기도를 하는 등의 그릇된 말
  • 자신과 아무런 관계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 의미 없이 늘어놓는 세속적인 잡담
  • 공경심도 없고 받아들일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 불교의 가르침을 설명하는 것처럼, 내용은 옳지만 부적절한 대상에게 하는 말

이 가운데 가장 나쁜 것은 명상 중인 사람이나 기도하는 사람을 쓸데없는 말이나 노래로 방해하는 것입니다.

앞의 세 가지 말의 악업과는 달리, 이 경우에는 반드시 듣는 사람이 있을 필요도 없고, 우리가 하는 말을 누군가 이해해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말하고 싶음 마음이 일어날 때에는 자신이 하려는 말이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이라고 스스로 여기고 있어야 합니다. 또한 그런 말을 하겠다는 의도가 분명해야 하며, 세 가지 독 가운데 하나가 동이가 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집착 때문에 단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 쓸데없는 잡담을 계속 할 수도 있습니다. 분노와 적대감 때문에 누군가가 좋은 일을 하지 못하도록 일부러 방해하기 위해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무지로 인해 잡담이나 험담이 잘못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말을 이어갑니다. 실제 행동은 불필요한 잡담을 하는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 대신 그렇게 하도록 시키는 것도 포함됩니다. 그리고 그 말을 실제로 입 밖에 내는 순간 행동은 완전히 성립합니다.

쓸데없는 말은 말의 내용에 따라 다시 일곱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 말다툼을 하거나, 뒤에서 남을 험담하거나, 시비를 걸거나, 상대를 일부러 자극하는 말 
  • 특별한 이유 없이 다른 종교의 의식을 낭송하거나, 정치적·상업적 구호나 광고 문구를 반복하는 말
  • 끊임없이 불평하고, 푸념하고, 투덜거리는 말
  • 특별한 긍정적인 목적 없이 농담을 늘어놓거나, 장난을 치거나, 실없이 행동하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흥얼거리거나, 휘파람을 부는 것
  • 정부 지도자나 유명인, 정치, 전쟁, 범죄 등에 대해 자신이 아무런 영향을 줄 수도 없고 상황을 개선할 수도 없으면서 그저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처럼 이야기하거나 험담하는 것
  • 술 취한 사람이나 정신이 혼란한 사람처럼 횡설수설하거나, 의미 없는 말을 늘어놓거나, 어리석은 말을 하는 것
  • 다섯 가지 그릇된 생계수단과 관련된 말, 예를 들어 아첨하거나, 압박하거나, 윽박지르거나, 협박하거나, 뇌물을 권하거나, 허풍을 떨거나, 자랑하거나, 잘난 체하거나, 위선적으로 말하는 것 등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쓸데없는 말과 불필요한 말을 모두 완전히 끊어내신 분입니다. 따라서 누군가가 우리와 말다툼을 하면서 아무리 설명해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면, 상대가 아무리 터무니없는 말을 하더라도 그저 “그렇군요.” 정도로만 응하는 것이 좋습니다. 거기에 맞서 계속 논쟁하는 것은 말만 낭비하는 것이며, 쓸데없는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반드시 내 주장을 관철해야 한다는 독선적인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됩니다.

물론 농담이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언제나 쓸데없는 말인 것은 아닙니다. 긴장하거나 마음이 상한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거나, 법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되는 비유를 들기 위해 이야기를 한다면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관심을 끌거나 자신이 얼마나 재치 있는 사람인지를 과시하기 위해 음담패설이나 저속한 농담을 늘어놓는 것은 완전히 쓸데없는 말에 불과합니다. 노래를 부르거나 음악을 연주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우울한 사람을 위로하거나 자신의 마음을 밝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유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서, 혹은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싫어서 시간을 보내려는 것이라면, 그것은 귀중한 인간의 삶을 헛되이 낭비하는 일입니다.

이러한 형태의 쓸데없는 말은 얼핏 보기에는 무해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을 허비하게 만들기 때문에 실제로는 매우 파괴적이며 여러 가지 잘못을 낳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가, 우리가 알지 못한 사이에 상대방이 그 사람의 친한 친구이거나, 영향력이 매우 큰 사람이거나, 심지어 보살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

사캬 판디타는 『명언보배집』(Legs-bshad rin-po-che’i gter) 제6장 제36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말이 많으면 많은 허물을 불러들이는 원인이 되고, 말을 삼가는 것은 허물을 없애는 바탕이 된다. 앵무새는 말을 많이 하기 때문에 새장에 갇히지만, 말 못 하는 샛들은 마음껏 하늘을 누빈다.

또한 우리는 긍정적인 일을 하려고 하면 금새 피곤해져 늦게까지 버티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친구와 잡담을 시작하면 시간이 늦어질수록 오히려 더 생기가 돌고 정신이 또렷해지는 경험을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캽제 트리장 린포체께서는 매우 실용적인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때로는 긍정적이거나 건설적인 일을 전혀 하고 싶지 않고, 괜히 짜증이 나거나 우울한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기분을 달래려고 누군가를 찾아가 시간이나 때우며 잡담을 나누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잠을 자거나 잠깐 낮잠을 자는 편이 낫습니다. 물론 잠을 잔다고 해서 특별한 선한 습관이 길러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적어도 새로운 나쁜 습관을 쌓지는 않습니다. 아무 의미 없이 친구와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무기(無記)의 상태인 잠이 오히려 더 좋은 휴식이 되며, 잠에서 깨어나면 상쾌한 마음으로 다시 긍정적인 일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가르침을 실천할 때에도 광신적이거나 극단적으로 되어서는 안 됩니다. 수행을 시작했다고 해서 항상 엄숙한 얼굴만 하고, 웃지도 않고, 긴장을 풀지도 않는다면 오히려 스스로를 괴롭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나중에는 반발심이 생겨 정반대의 극단으로 치우칠 가능성도 큽니다. 행동 하나하나를 완벽하게 다듬는 일은 수행이 훨씬 깊어진 뒤에 이루어질 문제입니다. 수행의 초보 단계에서는 먼저 가장 거친 형태의 잘못된 행동을 살피고 줄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사람들과 거리를 두거나 지나치게 엄숙하고 성스럽게 보여 주변 사람들이 부담스러워하기보다는, 즐겁고 따뜻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밀라레빠나 쫑카파처럼 집중적인 수행을 할 준비가 되었을 때라면, 하루 종일 무심코 흥얼거리거나 쓸데없이 말하는 습관까지 완전히 없애는 일을 고민해도 늦지 않습니다. 핵심은 행위의 인과 법칙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배려하는 마음으로 삶을 즐기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짓는 세 가지 파괴적인 행동

정말 게으른 사람이라면 몸이나 말로 파괴적인 행동을 저지르는 것조차 귀찮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무기력한 사람이라도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은 매우 쉽습니다. 따라서 법을 수행할 때 가장 먼저 다루어야 할 대상은 바로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태도를 바꾸고, 더 따뜻하고 자비로운 마음을 기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는 외모나 체격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 마음가짐에 달려 있습니다. 몸과 말로 하는 모든 행동은 결국 우리 마음속 생각과 태도가 밖으로 드러난 표현일 뿐입니다.

그래서 아띠샤는 『보살의 보배 화환』제28게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했습니다.

많은 사람들과 있을 때에는 내 말을 살피게 하시고, 홀로 있을 때는 내 마음을 살피게 하소서.

부정적인 생각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으며, 신통력을 지닌 사람이 아닌 이상 그것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오직 자기 자신만이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특히 경계해야 할 마음으로 짓는 세 가지 파괴적인 행동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탐내는 생각
  2. 해치려는 생각
  3. 적대적인 삿된 견해를 품는 생각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것들은 몸이나 말로 하는 파괴적인 행동 가운데 하나를 실제로 저지르기로 마음속에서 숙고하고 결정하는 과정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마음의 파괴적인 행동 역시 완전하게 성립하여 가장 강한 괴로운 과보를 낳기 위해서는, 앞에서 설명한 것과 동일한 여러 요소가 모두 갖추어져야 합니다.

탐내는 생각

탐내는 생각이란 어떤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내 것’으로 소유하고자 하는 강하고 이기적인 욕망입니다. 이러한 생각의 대상은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속한 어떤 외적인 대상이나 내적인 자질이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의 재산이나 명성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것은 상점에서 본 물건일 수도 있고, 심지어 권력이나 명성 등을 얻기 위해 부처님의 공덕을 자신의 것으로 갖고 싶어 하는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장차 자신의 것이 되기로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아직 자신의 차례가 아닌데도 미리 가지고 싶어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유산이나 줄을 서 기다리는 때가그러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탐하는지에 대해 착오가 없어야 합니다. 즉, 바로 그 대상을 탐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대상은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또한 그 대상이 자신의 것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동기가 되어야 하며, 세 가지 번뇌 가운데 하나가 함께해야 합니다. 집착 때문에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거나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온갖 쓸모없는 물건들을 탐낼 수도 있습니다. 분노와 적대감 때문에 미워하는 사람이 먼저 사기 전에 서둘러 물건을 사서 그 즐거움을 빼앗고 싶어 할 수도 있습니다. 또는 경쟁자가 공부에 필요한 책을 빌리지 못하도록 도서관에서 먼저 가져가고 싶어 할 수도 있습니다. 무지 때문에 많은 물건을 소유하려는 것은 좋은 일이며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 행동은 그 대상을 갖고 싶은 마음이 점점 강해져 실제로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 방법을 궁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마음의 악업은 그 집착이 매우 강해져 실제로 그것을 손에 넣으려고 결심하는 순간 완전하게 성립합니다. 따라서 이 마음의 악업에서는 동기, 행동, 완성이 모두 하나의 생각의 흐름 안에서 이어져야 합니다. 다시 말해, 어떤 대상을 자신의 것으로 갖고 싶어 하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방법을 생각한 다음, 마침내 그것을 실현할 방법을 찾기로 결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완전한 탐내는 생각은 단순히 무엇인가를 갖고 싶어 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실제로 그것을 얻기 위해 무엇인가를 하기로 굳게 결심하고, 그것을 손에 넣으려는 단계까지 나아간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결심이 반드시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되거나 실제 행동으로 옮겨질 필요는 없습니다.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그러한 부정적인 마음의 상태와 사고의 흐름입니다. 

또한 탐내는 생각이 완전하게 성립하여 가장 심각한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동기와 함께 다음의 다섯 가지 번뇌도 갖추어져야 합니다.

  • 자신이 사용하고 즐기는 대상에 대한 강한 집착
  • 더 많이 모으고 싶어하는 탐욕
  • 다른 사람의 귀중품처럼 좋은 것은 무엇이든 자세히 살펴보고 직접 사용하거나 착용해 보고 싶어 하는 호기심 어린 탐착
  •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은 무엇이든 반드시 자신도 가져야 한다고 여기는 경쟁심
  • 탐욕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것이 잘못이라는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으며 반드시 버려야겠다는 마음도 없는 고집스러운 우월심

따라서 단순히 “상사가 내 종이 되어 내 시중을 들고, 그의 재산과 권력이 모두 내 것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또는 “사람들이 내가 얼마나 훌륭한 수행자이며, 얼마나 많이 배우고 또 얼마나 베푸는 사람인지, 그리고 그들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애쓰고 있는지를 알아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또는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존경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공상하는 것만으로는 완전히 탐욕스러운 생각은 아닙니다. 우리는 대상에 대한 강한 집착과 탐욕, 호기심 어린 탐착, 경쟁심, 남을 이기려는 마음을 모두 갖춘 상태에서 강렬한 욕망과 반드시 그것을 이루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매우 분명하게 “신의 권력과 부를 내 것으로 만들겠다.” 또는 “세상의 모든 돈을 내 것으로 만들겠다.” 라고 생각해야 비로소 완전히 탐내는 생각이 됩니다. 이 다섯 가지 번뇌 가운데 하나라도 빠져 있다면, 탐내는 생각은 완전하게 성립하지 않습니다.

해치려는 생각

해치려는 생각이란 어떤 사람이나 생명체를 죽이거나, 때리거나, 때려 죽이거나, 또는 그에게 어떤 불쾌한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따라서 이런 부정적인 생각의 대상은, 앞에서 거친 말을 하는 것에서와 마찬가지로 실제로 우리가 그렇게 행동할 경우 상처를 입게 될 살아 있는 존재여야 합니다. 해치려는 생각은 적대감과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존재를 향합니다. 반면 분노와 증오는 살아 있는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어떤 대상에게도 향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장 난 난로나 자동차에도 화를 낼 수 있습니다. 

누구를 해치려 하는지에 대해서는 착오가 없어야 합니다. 또한 동기는 그 사람을 죽이거나 얼굴을 치고 싶다는 마음과 같은 것이어야 합니다. 또는 “나나 다른 누군가가 저 사람이 가진 것을 하루아침에 모두 빼앗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와 같은 생각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그리고 세 가지 번뇌 가운데 하나가 함께해야 합니다. 집착 때문에 아버지가 유산으로 남겨 줄 돈을 빨리 받고 싶어 아버지를 죽이고 싶어 할 수도 있습니다. 분노와 적대감 때문에 자신을 귀찮게 하는 파리를 때려 죽이고 싶어 할 수도 있습니다. 무지 때문에 폭력은 좋은 것이며 남에게 하는 행동은 별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여 사람을 해치려 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 행동은 자신의 바람을 행동으로 옮길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며, 이 마음의 악업은 그 사람이나 생명체를 해치기로 분명하게 결심하는 순간 완전하게 성립합니다. 따라서 완전한 해치려는 생각은 단순히 악의를 품거나 누군가가 불행해지기를 바라는 정도가 아닙니다. 실제로 그 사람에게 해를 끼치기로 굳게 결심하는 단계까지 나아간 것입니다. 

탐내는 생각과 마찬가지로, 해치려는 생각도 완전하게 성립하기 위해서는 동기와 함께 다음의 다섯 가지 번뇌가 갖추어져야 합니다.

  • 상대를 해치려는 이유가 되는 대상에 집착하여 놓지 않는 적대감
  • 해를 끼치지 않고서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느끼는 참을 수 없는 마음
  • 분노와 짜증이 생긴 이유를 그릇되게 되풀이하여 생각하면서 계속 원한을 품는 앙심 
  • 경쟁자를 때리거나 죽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경쟁심 
  • 상대를 해쳐서라도 이기려난 마음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것이 잘못이라는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으며 반드시 버려야겠다는 마음도 없는 고집스러운 우월심

단순한 악의란 단지 자신을 해친 사람에게 어떤 불행이 닥치기를 바라거나, 누군가가 가진 것을 모두 잃거나 지옥에 떨어지기를 기도하는 정도를 말합니다. 반면 완전한 해치려는 생각은 적대감과 참을 수 없는 마음, 깊은 원한, 경쟁심, 상대를 이기려는 마음을 모두 갖춘 상태에서, 상대의 목을 졸라 죽이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을 품고 실제로 그렇게 할 계획까지 세우는 것을 말합니다. 

해치려는 생각은 영적인 성장에 극히 파괴적입니다. 그것은 다른 존재가 괴로움을 겪기를 바라는 마음이며, 모든 존재가 괴로움에서 벗어나기를 바라고, 더 나아가 우리 자신이 그 일을 이루기를 바라는 큰 자비심과는 정반대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부정적인 생각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리면, 그 생각의 흐름이 완전히 전개되기 전에 멈추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무시(無始) 이래 끝없는 윤회를 거치는 동안 우리는 이러한 해로운 사고방식에 너무나 익숙해져 왔습니다. 그러므로 해치려는 생각이 일어났다고 해서 놀랄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그런 생각이 생기더라도 오래 붙잡지 말고, 자애와 자비를 닦는 것과 같은 대치법을 적용하여 곧바로 놓아버려야 합니다.

나가르주나(용수)는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제17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생각은 물 위에 그림 같을 수도 있고, 흙 위에 그린 그림과 같을 수도 있으며, 돌에 새긴 글과 같을 수도 있음을 알라. 번뇌에서 비롯된 생각은 물 위에 그린 그림처럼 곧바로 사라지게 하는 것이 가장 좋고, 법을 향한 마음은 돌에 새긴 글처럼 오래도록 남게 하는 것이 가장 좋다. 

적대적인 삿된 견해를 품는 생각

적대적인 삿된 견해를 품는 생각이란 편협하고 무지한 마음으로 어떤 사실을 완강히 부정하거나 인정하지 않으려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 대상은 반드시 실제로 존재하거나 사실인 어떤 것이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삶의 진리, 어떤 사람의 장점, 실제 상황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대상을 인식하는 방식은, 자신의 부정이 옳다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이는 범죄자가 자신이 한 일이 옳았다고 믿고 법정에서 끝까지 다투려 하는 것과 같습니다. 동기는 실제로 존재하는 어떤 것을 부정하려는 마음이어야 하며, 세 가지 번뇌 가운데 하나가 함께해야 합니다. 집착 때문에 영향력 있는 친구가 그러한 견해를 가지고 있어서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같은 견해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분노와 적대감 때문에 올바른 견해를 가진 사람이 미워서 그의 말에 동의할 수 없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반대로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성향의 사람들은 매우 유치합니다. 옛날 어떤 사람은 미워하는 적이 말을 탈 때 말의 머리를 향해 앉는 것을 보고, 단지 반대로 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말의 꼬리 쪽을 향해 안장에 앉아 말을 탔다고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무지 때문에 적대적인 삿된 견해를 품습니다. 자신이 틀렸으면서도 누구도 자신에게 무엇이 옳은지 가르쳐 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실제 행동은 그러한 부정을 실행하려는 생각입니다. 예를 들어 거짓 선전을 퍼뜨리거나 자신의 견해를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려는 것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 행동은 그 대상을 반드시 부정하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완전하게 성립합니다. 따라서 적대적인 삿된 견해는 단순히 전생의 존재와 같은 어떤 사실을 믿지 않는 정도가 아닙니다. 적극적으로 그것을 부정하고 반박하기로 굳게 결심하는 단계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부정하려는 생각은 원인, 결과, 작용, 또는 실재하는 존재를 부정하는 형태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원인을 부정하는 예는 선한 행동과 악한 행동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어떤 행동은 옳고 어떤 행동은 잘못되었다는 기준 자체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결과를 부정하는 것은 그러한 행동들이 어떤 결과도 낳지 않는다고 냉소적으로 믿는 것입니다. 작용을 부정하는 것은, 예를 들어 씨앗을 심고 돌보는 일이 열매를 맺게 하는 기능을 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모든 일이 아무 이유 없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이는 아이가 부모 없이 생겨난다고 믿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건설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는 가치 자체를 부정하게 됩니다. 또는 오고 감의 작용을 부정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의 마음의 연속체가 매 순간 이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어디에서도 오지 않았으며 죽는 순간 완전히 끝난다고 주장하여 과거생과 미래생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또한 특정한 존재들이 생겨나는 방식을 부정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중음 존재나 악도에 떨어진 존재, 천상 존재들은 모두 이전 순간의 마음의 연속체에 존재하던 업의 충동이 발현되어 한순간에 나타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번뇌장을 완전히 제거한 아라한이라는 존재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 역시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또한 적대적인 삿된 견해가 완전하게 성립하려면 동기와 함께 다음의 다섯 가지 번뇌가 갖추어져야 합니다. 

  • 어떤 사실이 어떻게 존재하는지 알지 못하는 무지
  • 부정적인 태도를 즐기는 논쟁심
  • 잘못된 사유를 반복하여 자신의 왜곡된 견해에 깊이 물들어 있는 마음
  • 보시와 자선, 선행, 수행 등의 가치를 부정하는 극심한 인색함
  • 다른 사람의 믿음을 부정하는 일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것이 잘못이라는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으며 반드시 버려야겠다는 마음도 없는 고집스러운 우월심

적대적인 삿된 견해에도 여러 수준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실에 대해 무지하고, 논쟁을 즐겨하며, 왜곡된 견해에 깊이 물들어 있고, 극도로 인색하며, 상대를 이기려는 마음을 품은 상태에서, 상대의 올바른 주장을 끝까지 부정하기로 결심할 때에만 비로소 완전한 적대적인 삿된 견해라는 마음의 파괴적인 행동이 성립합니다.

이것은 가장 심각한 형태의 삿된 견해입니다. 이렇게 강한 부정적인 마음은 지금까지 쌓아 온 긍정적인 힘이 영적인 성장과 행복의 뿌리가 될 가능성마저 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자기파괴적인 태도가 결코 생기지 않도록 각별히 경계해야 합니다. 

요약하면, 열 가지 악업은 모두 탐욕·성냄·어리석음이라는 삼독 가운데 어느 하나를 동기로 시작될 수 있지만, 완전한 악업으로 성립될 때에는 각각 특정한 번뇌를 동반합니다. 악의(해치려는 마음)는 반드시 성냄을 동반해야 완전한 악업이 되며, 도둑질, 그릇된 성행위, 탐심은 탐욕 또는 집착을 동반하여 완성됩니다. 반면 삿된 견해(왜곡된 적대적 사고)는 어리석음에 의해서만 완성됩니다. 그러나 거짓말, 이간질, 쓸데없는 말은 탐욕·성냄·어리석음 가운데 어느 하나를 동반해도 완전한 악업이 될 수 있습니다. 

[세친의『구사론』제4품 제68~71게와 무착의 『집론』 257-2-3~6에서 인용.]

몸과 마음의 일곱 가지 악업 가운데 그릇된 성행위를 제외한 모든 악업은 자신이 직접 행하든 다른 사람에게 시켜 행하게 하든 동일한 부정적 업력을 쌓습니다. 그러나 그릇된 성행위는 반드시 자신이 직접 행해야만 완전한 익업이 성립됩니다. 이는 성행위의 완성 조건인 성적 절정의 즐거움을 다른 사람이 대신 경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친의 『구사론』 제4품 제67게에서 인용.]

여러 악업이 동시에 성립하는 경우나, 각 악업이 어떤 존재 세계에서 가능한지 등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세친의『구사론』과 무착의『집론』을 참고하면 됩니다. 이러한 세부 사항을 분별하여 이해할수록 자신의 행동을 더욱 면밀하게 살필 수 있으며, 분별지(分別智)를 길러 악업을 억제하고 날마다 무심코 쌓아가는 부정적인 업력을 점차 줄여 나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파괴적인 행동의 과보를 무겁거나 가볍게 만드는 요인

우리의 파괴적인 행동에서 비롯되는 과보가 얼마나 무겁게 나타나는지는 여섯 가지 요인에 의해 결정됩니다.

  1. 행동 자체의 성격
  2. 마음의 충동
  3. 실제 행동의 방식
  4. 행동의 대상
  5. 반복한 횟수
  6. 대치법의 부재

[1] 몸과 말로 짓는 일곱 가지 파괴적인 행동 가운데 본성상 가장 무거운 과보를 가져오는 것은 살생입니다. 그다음으로 차례차례 무게가 줄어들어, 일곱 번째인 쓸데없는 말이 본성상 가장 가벼운 행동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시간을 가장 많이 낭비하게 만드는 행동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점차 무게가 가벼워지는 이유는 뒤로 갈수록 상대에게 주는 괴로움이 더 적기 때문입니다. 모든 살아 있는 존재는 자신의 소유물보다 생명을 더욱 소중히 여기므로, 본성상 살생은 도둑질보다 더 무거운 악업입니다.

마음으로 짓는 세 가지 파괴적인 행동 가운데서는 탐내는 생각이 가장 가벼운 과보를 가져오며, 적대적인 삿된 견해를 품는 생각이 열 가지 파괴적인 행동 전체 가운데 본성상 가장 무거운 과보를 가져옵니다. 그 이유는 이러한 생각이 지금까지 쌓아 온 긍정적인 힘이 과보를 맺는 능력을 심각하게 훼손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심지어 살생조차도 하지 못하는 일입니다.
[세친의 『구사론』 제4품 제79게에서 인용.]

[2] 파괴적인 행동을 저지르려는마음과 함께 일어나는 특정한 번뇌나 그릇된 태도가 강할수록 그 과보도 더욱 무거워집니다. 물론 본질적으로는 해치려는 생각이 탐욕과 집착이나 무지보다 더 심각한 번뇌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적대감을 품은 사람 자신과 그 대상이 되는 사람 모두에게 해와 괴로움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어떤 번뇌가 본질적으로 더 심각한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파괴적인 행동의 동기가 된 특정 번뇌가 얼마나 강했는가만을 기준으로 합니다. 예를 들어 상대를 습관처럼 "개자식"이라고 부르는 것은 비록 거칠고 모욕적인 말이기는 하지만 비교적 가벼운 악업입니다. 그러나 깊은 적개심을 품고 분노에 차서 같은 말을 고함치듯 내뱉는다면 그 과보는 매우 무거워집니다.

[3] 파괴적인 행동의 과보는 우리가 상대에게 가한 괴로움의 정도에 비례하여 더욱 무거워집니다. 이것은 살생, 도둑질, 강간, 간통, 거짓말, 폭언 등 모든 경우에 해당합니다. 살생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우리가 곤충을 밟아 죽였다면, 그 곤충은 비교적 적은 고통만 겪고 빨리 죽습니다. 그러나 예를 들어 돌을 던져 큰 동물을 죽인다면 죽음은 훨씬 더디게 찾아옵니다. 몸집이 훨씬 크고, 더 오랜 시간 동안 더 큰 고통을 겪기 때문에 우리가 훗날 받아야 할 과보도 훨씬 더 무거워집니다. 우리는 자신이 만들어 낸 괴로움의 정도에 비례하는 괴로움을 결국 경험하게 됩니다. 비록 작은 곤충이라 하더라도, 단순히 한 번에 재빨리 죽이지 않고 먼저 날개와 다리를 하나씩 떼어낸 뒤 불속에 던져 죽인다면 그 과보는 훨씬 더 무거워집니다. 거인이 우리의 다리를 하나씩 떼어낸 뒤 불길 속으로 던지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희생자를 죽이기 전에 오랫동안 괴롭히고 천천히 고문하는 것은 극히 무거운 악업입니다. 우리가 저지르는 신체적인 고통뿐 아니라, 그에 더해 극심한 정신적 고통까지 준다면 그 과보는 더욱 무거워집니다. 예를 들어 처형하기 전에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모두 짓밟고, 극도의 공포를 느끼게 하며, 굶기고, 무릎을 꿇게 하고, 살려 달라고 울부짖으며 애원하게 만드는 경우가 그러합니다. 더 나아가 그러한 고문과 살인을 저지르면서 가학적인 즐거움을 느끼고 기뻐하거나, 그것을 자랑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과시하며, 소름 끼치는 비명을 지르면서 행동한다면 그 과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무거워집니다. 물론 우리 대부분은 강제수용소에서나 볼 법한 정신 이상 살인범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모기나 벼룩, 빈대, 바퀴벌레, 농작물을 해치는 해충 등을 쫓아 죽일 때 우리 마음속에서 어떤 태도가 일어나는지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 자신의 모습에 놀라게 될지도 모릅니다.

[4] 파괴적인 행동의 과보는 그 행동의 대상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우리나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도움과 이익을 줄 수 있는 존재인가에 따라서도 더욱 무거워집니다. 그러므로 영적 스승이나 스승, 보살 승가의 구성원, 부모 등을 향해 단지 못마땅한 눈길을 보내는 것조차도 무거운 과보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살생은 죽이는 대상이 곤충에서 작은 동물, 큰 동물, 태아, 인간, 가까운 친구, 형제자매, 부모, 영적 스승, 보살, 아라한, 부처님으로 갈수록 과보가 더욱 무거워집니다.

도둑질은 훔친 물건의 양이 많거나 매우 귀한 것일수록, 또는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의 재산이거나 교육 자료, 기도서, 법 경전, 영적 스승이나 아라한, 승가, 스투파의 재산인 경우 더욱 무거운 과보를 가져옵니다.

부적절한 성적 행위는 상대가 부모이거나 독신계를 받은 출가 수행자, 또는 가까운 친구의 배우자인 경우 더욱 무거워집니다. 또한 입을 성적 기관이나 도구로 사용하는 방식일 때, 스투파 앞이나 수도원 경내에서 행할 때, 또는 자신이나 상대가 하루 동안의 독신계를 받은 상태이거나 병중이거나 여성이 임신 말기인 경우에도 과보가 더욱 무거워집니다.

거짓말은 진지하게 질문한 사람을 속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잘못된 대답을 하거나, 중요한 일들에 대해 많은 거짓말을 할 때 더욱 무거워집니다. 또한 몸으로 짓는 세 가지 악업과 마찬가지로, 부모나 영적 스승, 승가의 구성원, 부처님 등을 속이거나 그들에 대해 거짓말하는 경우에도 과보는 더욱 무거워집니다. 가장 무거운 거짓말은 승가를 분열시키려는 의도로 하는 거짓말입니다.

이간질은 오랫동안 가까웠던 친구였던 사람들 사이, 가족 사이, 특히 부모와 자녀 사이, 영적 스승과 제자 사이, 또는 승가 공동체 안에서 분열을 일으킬 때 특히 무거운 과보를 가져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 스승에게 그 제자들에 대한 나쁜 말을 결코 해서는안 됩니다. 이것은매우 심각한 악업입니다. 

거친말은 부모나 영적 스승들을 향할 때, 상대에게 상처를 주거나 꾸짖고 협박하려는 목적으로 사용할 때, 또는 존경받아야 할 대상이나 올바른 것들에 대해 거짓되고 모욕적인 말을 할 때 더욱 무거운 과보를 가져옵니다. 

쓸데없는 말은 말다툼을 하거나, 남의 험담을 하거나, 논쟁을 일삼거나, 상대를 자극하는 말을 하거나, 번뇌에 사로잡힌 집착 때문에 다른 종교의 의식문이나 경전을 암송하는 형태일 때 무거운 과보를 가져옵니다. 또한 부모나 영적 스승 등을 향하거나 그들에 대해 비꼬거나 무례하거나 모욕적인 말을 하거나, 부적절한 화제나 전혀 의미 없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탐내는 생각은 승가나 영적 스승, 스투파에 바쳐진 공양물이나 재산을 탐낼 때 더욱 무거워집니다. 또한 교만과 허영심에 사로잡혀 왕이나 청정한 계율을 지닌 학자가 누리는 존경과 특권을 갖고 싶어 하는 경우에도 과보가 더욱 무거워집니다.

해치려는 생각은 부모와 친척, 영적 스승, 아무 잘못이 없는 사람, 가난한 사람, 억눌린 사람, 비참한 사람, 불쌍한 사람,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사과한 사람을 향할 때 특히 무거운 과보를 가져옵니다.

적대적인 삿된 견해를 품는 생각은 부처님이나 모든 괴로움으로부터의 해탈, 또는 행위의 인과 법칙 같은 것이 존재할수 없다고 적극적으로 부정할 때 극도로 무거워집니다. 이러한 생각은 오늘날 세상에 아라한이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선하거나 가치 있는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냉소적으로 부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무거운 과보를 가져옵니다. 

[5] 파괴적인 행동을 자주 반복할수록 그 과보는 더욱 무거워집니다. 같은 행동을 반복할수록 우리는 그것을 계속하려는 습관을 더욱 강하게 쌓게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쓸데없는 말이라 하더라도 끊임없이 반복한다면 무거운 과보를 가져오지만, 한 번만 저지른 악업은 그보다 가볍습니다.

[6] 마지막으로, 많은 파괴적인 행동을 저질러 놓고도 그 과보를 상쇄하거나 그것에 맞서는 건설적인 행동을 전혀 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악업은 더욱 무거워집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여섯 가지 요인은 파봉카 린포체의 『손바닥 위의 해탈』에서 제시한 것입니다. 이에 비해 쫑카파의 『보리도차제대론』에서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요인을 제시합니다.

  • 의도
  • 실제 행동
  • 대치법의 부재
  • 그릇된 강한 충동
  • 대상

여기에서는 반복한 횟수가 실제 행동이라는 항목에 포함되어 있으며, 행동 자체의 성격은 별도로 다루지 않습니다. 또한 그릇된 강한 충동이란, 행동의 배후에 삿된 견해가 작용하고 있는지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행위의인과 법칙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바탕으로 피의 제물을 바친다며 동물을 죽이는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쫑카파는 이어서 아상가의 『섭사분』에 나오는 또 다른 여섯 가지 요인도 소개합니다.

  • 본성
  • 선행 조성력
  • 습관성
  • 대상
  • 부조화로운 요인이 분명히 존재함
  • 부조화로운 요인의 제거

여기에서 선행 조성력은 파봉카와 쫑카파의 분류에서 말하는 의도와 같은 방식으로 설명됩니다. 습관성은 반복한 횟수와 비슷한 의미이며, 부조화로운 요인이 존재하는가 또는 제거되었는가는 대체로 대치법의 부재와 같은 내용을 뜻합니다.

한편 세친의 『구사론』에서는 행동의 과보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구분하는 또 다른 여섯 가지 요인을 제시합니다.

  • 마무리 또는 후속 행동
  • 대상 영역
  • 대상
  • 실제 행동
  • 행동이 완성될 때의 의도
  • 행동이 동기가 된 의도

여기에서 마무리란 그 행동을 앞으로도 계속 반복하는지의 여부를 말합니다. 대상 영역은 아상가, 쫑카파, 파봉카의 분류에서 말하는 대상에 해당하며, 여기에서 말하는 대상은 다른 분류에서 행동 자체의 성격이라고 부르는 것에 해당합니다. [제1대 달라이 라마 겐둔둡의 『도해명석』 275쪽을 인용.]

우리가 부득이하게 어떤 부정적인 행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이러한 과보를 무겁게 만드는 요인들이 모두 갖추어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빈대를 업애기 위해 반드시 훈증을 해야한다면, 가능한 한 번뇌를 적게 일으킨 상태에서, 가능한 한 적은 고통을 주는 방법으로, 가능한 한 드물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는 일이 잘못되었음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즉시 후회하는 마음을 비롯한 대치법을 실천하는 등 건설적인 행동으로 그것을 상쇄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여섯 가지 요인을 모두 갖춘 전형적인 사례와 같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를테면 언제나 악업만 짓고 선행은 전혀 하지 않으며, 극심한 분노 때문에 부모를 가장 끔찍한 아홉 가지 고문으로 살해하는 직접적인 도살자와 같은 사람 말입니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애초에 부정적인 힘에 물들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무거운 과보를 가져오는 파괴적인 행동을 저지른 사람을 업신여기면서, 자기 자신은 악업을 가볍게만 지으면 괜찮다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아리야데바는 『사백론』 제3품 22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만일 그들 중 일부가 나병까지 앓고 있다 하더라도, 오줌을 뒤집어쓴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오줌을 뒤집어썼지만 나병은 없는 사람들이 나병 환자를 보며 코를 막듯이, 그들 역시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는 똑같이 외면당한다.

다시 말해, 오줌을 뒤집어쓴 사람들이 한 무리 있었는데 그 가운데 몇 사람은 나병까지 앓고 있다고 합시다. 나병이 없는 사람들은 끔찍한 병에 걸린 사람들을 보며 경멸하는마음으로 코를 막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여전히 오줌 냄새를 풍기고 있기 때문에, 다른 모든 사람들은 그들을 보며 역시 코를 막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비교적 가벼운 방식으로 악업을 짓고 더 심한 악업을 지은 사람을 경멸한다면, 우리 역시 자신이 저지른 악업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경멸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사소한 파괴적인 행동이라도 결국에는 괴로움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항상 명심해야 합니다.

그 결과를 설명함

모든 파괴적인 행동은 세 가지 종류의 결과를 낳습니다.

  1. 이숙과(異熟果)
  2. 원인과 상응하는 결과
  3. 증상과(增上果)

[1] 일반적으로 이숙과란 유정의 마음의 연속체와 결합되어 있으며 부정적인 행위 또는 번뇌에 물든 선한 행위를 이숙인으로 하여 생겨나는 무기(無記)의 현상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여기에서 이숙과란 이전의 강박적인 행동으로 쌓인 업의 힘이 익어서 나타나는 다음 생의 오온, 즉 몸과 마음, 감각기관 등 경험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오온은 선한 행동에도, 파괴적인 행동에도 사용될 수 있지만, 그 자체는 부처님께서 선도 악도 아니라고 설하신 무기의 성질을 지닌 중립적인 존재입니다.

중대한 파괴적인 행동의 이숙과는, 잉태되는 순간 마음의 의식이 고통의 세계에 태어나는 존재의 오온으로 이끌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 몸과, 그 존재가 보고 경험하는 끔찍한 상황들, 그리고 고통과 공포 등의 느낌을 경험하게 됩니다. 중간 정도의 파괴적인 행동은 아귀의 오온으로 이끌리고, 가벼운 파괴적인 행동은 축생의 오온으로 이끌립니다. 파괴적인 행동이 중대하거나 중간이거나 가벼운 것으로 구분되는 기준은, 그것을 일으키고 실행하며 마무리할 때 동반된 번뇌와 그릇된 태도의 강도이거나, 행동이 모든 요소를 갖추어 완전하게 성립했는지의 여부이거나, 또는 그 행동을 무겁게 만드는 여러 요인들이 얼마나 많이 갖추어졌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악업이든 행동이 완전하게 성립하고 충분히 무거우며 완전히 번뇌에 사로잡힌 마음으로 저질러졌다면, 죽은 뒤 고통의 세계에 태어나는 결과로 익을 수 있습니다.

[2] 어떤 파괴적인 행동의 이숙과로 악도에서의 오온을 경험하는 과보를 모두 다 겪고 난 뒤에도, 그 행동으로 쌓인 업의 힘은 여전히 남은 결과를 계속 가져옵니다. 이후 전생에 쌓은 선업의 힘이 익어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게 되면, 이러한 남은 결과는 원인과상응하는 결과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이것은 그 생애 동안 우리가 경험하는 방식과 행동하는 방식이라는 두 측면에서 원인과 서로 대응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살인을 저질렀다면, 먼저 그 이숙과로 지옥과 같은 고통의 세계에 태어날 수 있습니다. 그 생에서의 업이 모두 소진되고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면, 과거에 다른 사람의 수명을 단축시키고 육체의 건강과 아름다움을 빼앗았던 것에 상응하여, 자신도 수명이 짧고 병이 많으며 여러 불행을 겪는 삶을 살게 됩니다. 또한 과거의 행동에 상응하여 어린 시절부터 본능적으로 동물을 괴롭히거나 곤충을 죽이는 일을 즐기게 되고, 결국 강박적인 업의 충동에 이끌려 다시 살인을 저지르게 됩니다.

전생에 도둑질을 했다면 인간으로 태어나서도 가난하게 살게 되고, 자신 역시 도둑을 맞기 쉬우며, 어렵게 얻은 물건도 결국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거나 여러 사람과 함께 나누어 써야 하는 처지가 됩니다. 또한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남의 물건을 훔치는 습관을 보이게 됩니다.

간통을 했다면 배우자와의 관계가 좋지 않고, 배우자가 부정을 저지르며, 결혼생활이나 친밀한 인간관계가 오래 지속되지 않습니다. 또한 자신 역시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쉽게 끌리게 됩니다.

거짓말을 했다면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누구도 자신의 말을 믿지 않으며, 사람들은 뒤에서 자신을 험담하고 거짓 소문을 퍼뜨립니다. 또한 자신 역시 과장하거나 왜곡하지 않고서는 어떠한 말도 할 수 없게 됩니다.

이간질을 했다면 친구가 거의없고, 친구들이 자신을 떠나거나 버리게 되며, 영적 스승이나 사랑하는 사람들과도 헤어지게 됩니다. 또한 자신도 끊임없이 남의 말을 전하고, 묻지도 않은 의견을 내세우며, 오해를 일으켜 다른 사람들에게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됩니다. 

거친 말을 했다면 늘 비난을 받고, 언제나 다른 사람들의 불쾌한 이야기만 듣게 되며, 귀가 찢어질 듯한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또한 자신 역시 습관적으로 거칠고 상스러운 말을 하며 욕설을 내뱉게 됩니다. 

쓸데없는 말을 했다면 다른 사람들의 비밀을 지켜 주지 못하게 되고, 사람들은 자신을 비웃으며, 누구도 자신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또한 자신 역시 말을 멈추지 못하고 끊임없이 다른 사람의 말을 가로막게 됩니다. 누군가 깊이 명상하고 있더라도 말을 걸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지 못해, 심지어 상대의 옆구리를 찔러가며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만들려고 합니다.

탐내는 생각을 했다면 어떤 일도 끝까지 완수하지 못하게 됩니다. 수없이 많은 일을 시작하지만 시작하자마자 또 다른 일을 하고 싶어집니다. 또한 눈에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 만져 보아야 하고, 모든 물건의 가격을 알아야 직성이 풀리며, 누군가 새 물건을 샀다는 말을 들으면 반드시 직접 가서 보고 사용해 보거나 입어 보아야 합니다.

해치려는 생각을 했다면 늘 죄책감과 의심, 피해망상에 시달리게 됩니다. 또한 사람이나 동물을 잔인하게 괴롭히거나 짓궂은 장난을 치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게 됩니다. 자동차가 망가지도록 길 위에 돌을 놓아두거나, 다른 사람의 부엌에 쥐를 풀어놓기도 하고, 개를 보기만 하면 괴롭히고 못살게 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됩니다.

적대적인 삿된 견해를 품었다면 다르마를 수행하려고 할 때는 마치 머리 위에 큰 항아리가 씌워진 것처럼 답답하고 둔한 느낌이 들지만, 번뇌에 물든 세속적인 일에 몰두할 때는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집니다. 또한 끊임없이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모든 것에서 흠을 찾으며,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은 무엇이든 틀렸거나 가치 없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법 자체도 완전히 잘못 이해하게 됩니다.

원인과 상응하는 결과 가운데서도 우리의 습관적인 행동으로 나타나는 결과가 가장 쓰라린 열매입니다. 과거와 똑같은 파괴적인 행동을 다시 저지르도록 본능적으로 이끌리는 것은 통제할 수 없이 반복되는 문제와 윤회, 즉 삼사라의 악순환을 끊임없이 만들어 냅니다. 이러한 악순환은 법을 실천하는 방법을 받아들일 때에만 끊을 수 있습니다.

[3] 앞에서 설명한 결과들은 우리의 다음 생의 모습, 사회적 환경, 그리고 우리의 행동을 이끌어 가는 업의 충동에 영향을 미칩니다. 반면 증상과는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 뒤 살아가는 환경, 소유물, 그리고 그것들과 맺는 관계의 형태로 익습니다. 또한 이것은 여러 존재에게 집단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에 지배적 결과라고도 불립니다.

살생의 결과로는 훌륭한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비천한 곳에 태어나 낮은 신분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의료 환경은 매우 열악하고, 그 땅에서 구할 수 있는 음식과 약은 효능이 약하고 질도 좋지 않습니다. 설령 이론적으로는 몸에 좋다고 알려진 음식과 약을 얻는다 하더라도 음식은 충분한 영양을 공급하지 못하고, 약도 병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합니다.

도둑질의 결과로는 무엇을 심어도 잘 자라지 않거나 수확이 매우 적습니다. 소를 사더라도 이전보다 우유를 적게 생산하며, 우리가 사는 땅은 홍수와 가뭄, 우박을 자주 겪게 됩니다.

부적절한 성적 행위의 결과로는 우리가 사는 곳이 더럽고 진흙투성이이며 불편하고, 변소 냄새가 나며, 전반적으로 매우 불쾌한 환경이 됩니다.

거짓말의 결과로는 부패하고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이 사는 곳에 태어나게 됩니다. 사업은 실패하고 투자금은 사라지며, 직원들은 우리를 속여 물건을 빼돌리고, 주변 사람들은 끊임없이 우리를 기만하고 이용하려 합니다. 

이간질의 결과로는 우리가 사는 곳이 바위투성이에 울퉁불퉁하며, 땅에는 급격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많아집니다. 이는 과거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의 평화를 깨뜨렸기 때문입니다.

거친 말의 결과로는 우리가 사는 곳에 가시와 날카로운 돌, 깨진 유리가 많아집니다. 또한 메마르고 척박한 땅이 되어 물은 거의 없고, 전갈과 뱀 같은 독 있는 생물이 많으며, 광활한 염전과 같은 황무지가 펼쳐집니다.

쓸데없는 말의 결과로는 과일나무가 제철에는 열매를 맺지 않고 엉뚱한 계절에 꽃을 피우고 자라며, 뿌리가 약해 쉽게 쓰러지거나 베어집니다. 또한 주변의 공원과 숲, 호수는 지나치게 붐비고 훼손됩니다.

탐내는 생각의 결과로는 집과 재산, 소유물이 빠르게 낡고 망가집니다. 새 방으로 이사만 가면 가구가 부서지고, 페인트가 벗겨지며, 얼마 지나지 않아 엉망이 됩니다. 새 셔츠를 사도 처음 입는 날 바로 찢어지거나 구멍이 생깁니다.

해치려는 생각의 결과로는 끊임없이 전쟁과 재난, 전염병을 겪게 됩니다. 또한 우리가 사는 곳에는 독충과 뱀이 들끓고, 위험한 맹수가 돌아다니며, 무서운 귀신과 악령이 출몰하는 환경이 됩니다.

적대적인 삿된 견해를 품는 생각의 결과로는 주변의 천연자원이 고갈되고 샘물이 마르며, 환경이 오염됩니다. 또한 법과 질서는 무너지고, 아무런 보호도 받을 수 없으며, 더 이상 신성하게 여겨지는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됩니다.

[나가르주나(용수)의 『보배로운 화환』 제14~18게와 다르마락시타(법칭)의 『예리한 무기의 수레바퀴』 제10~45게에서 인용.]

이러한 일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일어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다음 생, 삶에서 겪는 경험, 습관적인 행동, 그리고 살아가는 환경은 모두 과거의 행동으로 쌓인 업의 힘의 결과입니다. 물론 지금 이 생에서 한 행동의 결과를 이 생에서 바로 경험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비교적 드뭅니다. 만일 모든 일이 항상 현재 생의 행동 때문이라면, 왜 선량한 사람들이 계속해서 불행을 겪는지 설명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가 이번 생에서 경험하는 대부분의 일은 이전 생의 행동에서 비롯되며, 지금 우리가 하는 행동은 대부분 미래의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다르마락시타는 『예리한 무기의 수레바퀴』 제46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요컨대, 결코 바라지 않았던 재난이 번개처럼 우리 머리 위로 떨어지는 것은, 마치 대장장이가 자신이 만든 칼에 죽는 것처럼, 과거의 악업이 예리한 무기가 되어 우리에게 되돌아온 결과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우리의 악한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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